[어제와 오늘] 부시는 브레즈네프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걱정은 벗고, 희망은 가지고” 17일 미국에서 돌아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5일 정상회담 후 노 대통령을 “대화하기 편안한 상대(easy man)”, “아버지(부시 41대 대통령)가 전한대로 ‘잘 맞는 상대’”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 대해 “대범하게 대화를 이끄는 스타일”, “선이 굵고, 사람을 배려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느낌을 말했다.

뉴욕 타임스의 백악관 출입기자 데이빗 생거는 이번 만남의 특이한 점을 이렇게 썼다.

“부시는 올해 이라크를 공격 하기 전에 찾은 여러 정상들에게 이라크와 사담 후세인을 들먹였다. 이번 회담에는 수 십년 동안 긴장된 지역인 한반도를 말하며 ‘김정일’이라는 이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또 “생애 처음으로 미국에 왔으며, 그에게는 중요한 정치적 의미가 있는 노 대통령의 방문을 부시가 사려있게 처리했다”고 보도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에 대한 책을 쓴 노 대통령을 직접 ‘링컨 룸’으로 안내해 노예해방 선언문의 사본, 기타 유품을 보여 준 점 등이 이례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노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말씀 안 한 게 있다. 한ㆍ미동맹 관계는 지난 50년 동안 그야말로 돈독하게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50년 이상 더욱 돈독하게 발전 할 것이라는 점을 합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튿날 서울의 반응은 희망보다 걱정쪽이었다. “남북 관계에 그림자 드리우나”, “대통령 대북관 바뀌었다” 등이 주류신문의 제목이었다. 또 이날 의사당을 예방한 노 대통령에게 비교적 친한파인 리차드 루가 상원 외교위원장마저 걱정스런 질문을 했다. “부시와의 합의를 한국 젊은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 대통령은 에둘러 답했다. “이곳에 와 한국전 참전기념비와 알링턴 국립묘지를 보면서 한국이 미국의 도움으로 건국되고 유지되어왔음을 확인했다. 한국은 미국의 이상과 제도, 협력이 가장 성공적으로 꽃핀 나라다.”

노 대통령의 이런 대미의식이 서울에서 희망스럽게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그에게 88년 13대 총선에 나갈 것을 권유했고, 85년에 그들 부부에게 ‘유스토’와 ‘아델라’의 세례명을 내리기도 했던 부산 교회사 연구소장 송기인신부는 이렇게 비판했다.

“한미관계를 생각해 보면, 옛날 카츠라-태프트 밀약(1905년 러ㆍ일전쟁의 중재에 나선 미국이 일본의 한국의 보호국화를 용인한 비밀조약) 같은걸 보면 미국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대해 왔는가가 여실히 드러나지 않는가. 6ㆍ25때 많은 미군이 희생을 했다지만 38선을 미국이 가른 것이다”고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판했다.

스스로를 그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는 송신부는 스승의 날인 15일 “노 대통령이 정말 생각을 바꾼 것은 아닐 것이다. 주위 보좌관들의 건의를 받아 들였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일관성 없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하고 걱정했다.

물론 노 대통령이나 송 신부나 그의 보좌관들은 미국의 ‘소위 자유주의 언론’(so called liberal media)의 대표적인 주간지 네이션에 실린 ‘브레즈네프, 부시와 바그다드’(5월5일자)라는 충격적인 칼럼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칼럼을 쓴 이가 소련의 레닌 이후 네 번째 수령인 흐루시초프의 증손녀 니나인 것도 모를 것이다.

“‘우리’는 매일 부시의 열성적인 TV 출연에서 브레즈네프의 기계음 같은 목소리에 빨려 들어가는 처럼 느낀다. 부시는 ‘악마’, ‘온정적 보수주의’, ‘테러이즘’, ‘국가안보’, ‘해방’, ‘민주주의 추구’를 외친다. 소련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 캐치프레이즈는 브레즈네프 시대와 그 이전, 이후에 용어는 다르지만 똑 같은 코드로 전파에 실렸음을 안다. 브레즈네프는 ‘제국주의’, ‘사회주의’, ‘세계평등’, ‘평화와 안보’로 말을 바꾸었을 뿐이다.”

“ ‘모든 선전은 진실을 말해도 거짓이다’는 조지 오웰(‘동물 농장’, ‘1984년’의 작가)의 말은 브레즈네프 시대의 크레믈린이나 부시의 백악관에서는 맞는 말이다. 두 사람의 말은 공중의 토론을 거치지 않은, 위에서 쏟아 내는 선전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미국에 ‘자유스럽게 말하기 위해’ 소련과 동구권에서 미국에 이민이나 망명을 해 온 지식인들. 이들 중 뉴욕에서 ‘러시안 사모르바’라는 식당을 경영하는 로만 카프란, 무용인 미하일 바리쉬니코프 등이 속해 있다. 니나는 91년 미국에 와 프린스턴대학에서 비교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얻고, 세계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있다.

이런 ‘우리’들이 이라크 전쟁 이후 고민하고 있는 점을 니나는 썼다. 언론자유가 있다는 미국이 브레즈네프 시대(1964~1982년)의 반개혁, 스탈린주의로의 회귀와 같다고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제 어느 나라로 가야하지”를 되묻고 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자유를 찾아 미국에 온 이방인’들의 존재와 이라크 전 이후 미국 지식인들의 방황을 모르고 있다. 이번 방문이 ‘노사모’ 였다가 떠나는 또 다른 ‘우리’를 만드는 동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5/20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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