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 '라면왕국' 부활선언

맏사위에 경영권 인계, 경영혁신 통한 활로모색 승부수

‘라면의 역사를 다시 쓴다.’

우리나라 라면업계의 대부로 꼽히는 삼양식품 전중윤(84) 회장이 ‘라면 왕국’재건을 위해 팔을 걷어 올렸다. 전 회장은 6년째 대표 자리를 맡겼던 장남 전인장(40) 사장을 전격 퇴진시키고, 식품업계에서 33년간 잔뼈가 굵은 전문 경영인이자 맏사위인 삼양베이커탱크터미널의 서정호(60) 부회장을 선임키로 했다.

1961년 이 땅에 ‘라면의 역사’를 쓰기 시작한 전 회장은 일생을 건 라면사업이 최근 오뚜기에게 업계 2위 자리까지 위협 받자 결단을 내린 것이다.


비장한 제2창업 선언

삼양식품은 5월29일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를 열어 서 부회장을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이번 인사를 통해 경영 혁신과 새로운 활로 모색을 통해 제2의 창업을 이루겠다는 전 회장의 일생일대 마지막 승부수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삼양식품의 제2창업 선언은 우선 확고한 업계 2위라는 자존심 회복과 함께 최근 라면사업에서 손을 뗀 빙그레의 시장 선점을 겨냥한 것이다. 빙그레의 몫이 전체 시장의 3% 정도에 불과하지만 선두인 농심을 제외하면 시장점유율 8~10% 대에서 박빙의 승부를 벌이는 오뚜기와 한국야쿠르트 등을 뒤로 밀어내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 앞선 마케팅 전략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후계자였던 전 사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은 삼양식품을 맡은 후 뚜렷한 업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98년 초 법정화의 이후 전 회장이 장남에게 경영권을 승계해 침체된 분위기를 쇄신하려 했지만,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데 따른 문책성 인사인 셈이다.

전 사장은 그 동안 화의 탈피와 라면시장 선두자리 탈환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는 평가다. 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골프장 사업과 부동산 매각 부진, 라면사업 부진 등 구조 조정과 경영 부진이 심화되면서 기업 회생의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지적도 받아왔다.

전 회장과 전 사장, 부자간의 이견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신구 경영 스타일이 갈등을 부추긴 것으로 알려졌다. 보수적인 경영스타일의 전 회장과 유학에서 돌아온 전 사장은 경영 방식에서 많은 대조를 보여 왔다.

최근에는 갈등이 심해지면서 전 사장이 회사에 정상 출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소문마저 나돌 정도다. 전 사장의 경영 방식은 ‘이상추구형’으로 현실감이 크게 떨어져 전 회장 주변에서는 꾸준히 사장 교체를 진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자간의 갈등 사이에서 삼양식품의 구원투수로 나선 서정호 부회장은 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팜유 유통업체인 삼양베이커탱크터미널을 맡고 있다.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삼양식품 창업주인 전 회장의 맏사위로 89년 ‘우지라면 파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한 달 가량 구속된 뒤 스스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비운의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그러나 ‘우지라면 파동’에 대한 법정 투쟁에 나서 97년 8월 무려 7년9개월만에 대법원으로부터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이를 계기로 전 회장으로부터 신임을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부회장 강력한 리더십에 기대

서 부회장은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 치밀한 기획성 등으로 일찌감치 차세대 최고 경영인으로 꼽혀왔으나 전 사장측의 견제에 밀려 식품회사 경영 일선에는 들어오지 못했던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전 회장이 장남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사위인 서 부회장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80년대 말까지 회사가 업계의 선두기업으로 위상을 다지는데 일조했고, 그를 통해 ‘삼양식품 재건’의 전기를 마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서 부회장이 6월 초부터 삼양식품의 경영 전면에 나설 경우 삼양식품은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2세 경영체제에서 벗어난 삼양식품은 우선 침체된 분위기 쇄신을 위해 공격적인 경영과 함께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의기업인 삼양식품으로서는 관련 계열사 및 유휴부동산 매각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할 수밖에 없다.

이미 강원레저골프장과 삼양유지사료, 서울 수송동 종로사옥부지 등을 매각했지만 아직도 남아 있는 부산의 공장부지 등 소위 ‘돈 되는’ 부동산을 올해 중에 매각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라면사업도 신제품 개발과 유통망 정비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선두 농심과의 격차를 좁힐 작정이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2,12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자산 2,080억원, 부채 2,712억원으로 자본금이 완전히 잠식당한 상태다.

40년 역사의 원조 한국라면
   

삼양라면의 탄생은 1960년대 초 전중윤 삼양식품 회장이 우연히 남대문 시장을 지나다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 죽을 사먹기 위해 줄 선 것을 보고 식량 문제의 해결이 시급하다고 판단한데서 비롯됐다.

일본에서 라면을 시식했던 전 회장은 라면이야 말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해 5만 달러를 정부로부터 빌려 일본 명성식품의 라면 제조 기술 및 기계를 도입했다. 그렇게 1963년 9월15일 삼양라면이 탄생했다. 당시 가격은 10원. 커피 한잔 35원, 된장ㆍ김치찌게가 30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러나 라면의 ‘면’을 무슨 섬유나 실의 명칭으로 오인하는 등 반응은 차가웠다. 무료시식회 등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65년 정부의 혼분식 장려 정책이 나오면서 간편하게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주요 식품으로 자리잡았다.

66년 연 240만개 판매에 불과했던 라면은 69년 1,500만개로 늘었고 몇 년 만에 매출액이 무려 300배에 이르는 경이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70년대에 들어 베트남을 비롯, 동남아, 미국 등지로 수출하면서 삼양라면은 국경 없는 세계적인 식품으로 인식됐다. 베트남전 당시 우리나라의 총 수출액이 3,000만 달러 였는데, 이중 9%에 이르는 270만 달러가 삼양라면을 판 것이었다.

89년 발생한 ‘우지사건’은 삼양라면측에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주었다. 라면의 판매와 공장 가동이 중단되고 1,000여명의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100억원 이상의 제품을 수거, 폐기했으나 세계적인 수출상품인 삼양라면은 일순간 불량식품으로 전락했다.

라면시장에서 퇴출된 위기에 처한 삼양라면은 그러나 94년 초 육수의 진하고 얼큰한 맛을 보강하고 면발 개선 등을 통해 시장에 다시 진입했다. 이어 99년 ‘수타면’ 등 기존 제품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는 한편 다단계 시장을 겨냥해 다양한 신제품을 내놓아 농심에 이어 라면업계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2003/05/20 16:11


장학만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