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국민 거짓말' 심야 대책회의

14일 오후11시 고건 국무총리가 비상 소집한 화물연대 관계장관 회의가 끝났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정부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 놓았다. 정부는 “공권력 투입이나 경유가 인하 논의는 아예 없었고, 비상수송대책 집행 상황만 점검했다”며 “아무 일이 없으니 돌아가라”고 바람을 잡았다.

이날 장관회의는 ‘협상이냐 진압이냐’가 결정되는 중요한 회의였다. 부산 화물연대 조합원이 이날 부산대에 재 집결한데다, 경유가 인하 등 쟁점에 대한 정부의 불가 입장도 여전해 참여정부 들어 첫 노동현장 경찰력 투입 결정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부분 기자들은 “정부가 제 정신이냐” “한 밤중에 왜 모였냐”고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정부의 발표를 믿고 자리를 떴다.

회의를 이미 끝냈다던 고 총리와 장관들은 기자들을 따돌리고 총리 집무실에 모였다. 권기홍 노동장관과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 3개 비공식 대화 채널이 긴박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자정을 넘겨 청사를 나오던 고 총리와 장관들은 낌새를 눈치챈 한국일보 등 4개 신문 기자들에게 덜미를 잡혔다. 그럼에도 강금실 법무장관 등은 “결정된 것이 없다”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물꼬를 튼 것은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 그는 공권력 투입이 결정됐느냐는 질문에 “새벽까지 기다리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며 “(경유가 인하도)해결을 기대할 만한 제안을 할 것”이라고도 했다. 고 총리는 “실무협의를 한다”며 협상 재개를 인정했고, 권기홍 노동장관은 문 수석의 발언을 들이대자 “해결될 것을 기대한다”고 대폭 양보를 시인했다.

정부 관계자는 “장관회의 이전에 대폭 양보가 결정됐고, 화물연대도 이를 알고 협상에 응했다”며 “하루 밤새 경유가 등에 대한 원칙을 뒤엎었다는 비난을 피하려다 대국민 거짓말을 한 셈”이라고 곤혹스러워 했다.

정부의 14일 밤 눈속임은 긴박한 파업 타결 뉴스에 가려졌다. 지금도 파업 타결의 뒷얘기 정도로 봐 주었으면 하는 기색이다. 파업 타결도 좋지만 국민의 눈을 속이고 비밀 작전하듯 협상을 하는 행태가 거듭된다면 현 정부의 ‘참여 정부’도 헛된 구호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안준현 기자

입력시간 2003/05/20 16:13


안준현 dejavu@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