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년… 명과 암] 재미없믄 K리그, 깨진 부활 꿈

수비축구·스타부재·고질적 판정시비 등으로 팬 등돌려

2002 프로축구 K리그 올스타전이 성대하게 거행된 지난해 8월 15일을 앞두고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은 ‘배부른’ 하소연을 해댔다.

“작년에는 올스타전 입장권을 거져 줘도 시큰둥했는데 지금은 표를 구해달라고 난리”라는 게 골자였다. 축구 담당 기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축구를 맡은 뒤 ‘입장권 청탁’을 받기는 처음”이라는 행복한 고민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6만5,000여 관중이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운 가운데 진행된 식전 행사도 한일월드컵 열기를 실감케 하기에 충분했다. 터키와의 3,4위전서 붉은악마가 선보인 ‘CU@K리그’ 캠페인을 본격 시작하는 퍼포먼스가 스탠드를 뜨겁게 달구는가 하면 당시 전남과 부산 소속인 김남일(엑셀시오르)과 송종국(페예노르트) 등 월드컵 태극전사들이 등장할 때마다 경기장은 환호성으로 메아리쳤다.

‘오! 필승 코리아’와 ‘대~한민국’ 함성이 들끓은 건 말할 필요도 없다. 특급용병 샤샤(성남)가 4골을 뽑아낸 중부팀이 남부팀을 6_1로 대파한 이날 올스타전을 지켜본 팬들은 “축구의 참 맛을 느끼게 한 멋진 경기였다”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가을바람과 함께 사라진 열풍

그러나 팬들이 “너무 재미 있다”고 감탄한 건 경기 내용이 아니라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회사원 김모(39)씨는 “아이들과 함께 폭죽을 즐기는 게 너무 신이 났고 (김)남일이와 (이)천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이름을 외쳐대느라 목이 쉴 정도 였다”며 일상에서 벗어난 ‘해방된 공간’의 짜릿한 추억을 떠올렸다.

그러나 축제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7월 7일 개막전 4경기에 모두 12만3,189명이 입장, 평균 3만797명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던 K리그는 8월말을 고비로 거짓말처럼 썰렁해졌다. 한동안 매진 사례를 이뤄 축구인들을 들뜨게 한 ‘프로축구 관중 300만명 돌파’라는 장밋빛 꿈도 일장춘몽이 돼 버렸다.

“K리그도 박진감 넘치고 흥미진진 해졌다”는 찬사는 온데 간데 없이 9월 들어서는 오심에 따른 잇따른 판정시비,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로 팬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월드컵 전과 달라진 게 뭐냐”는 비아냥도 스멀스멀 삐져 나왔다. 지난해는 그나마 총 관중수 265만명을 기록, 역대 두번째를 차지했지만 송종국(페예노르트)과 이을용(트라브존스포르)을 비롯한 특급 스타들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등 프로축구에 대한 매력이 크게 줄어든 탓에 미래에 대한 전망은 더욱 어두워졌다.


로마는 1년 만에 이뤄지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도 K리그는 5월21일 포항과 전북 경기에 고작 1,320명이 입장하는 등 한일월드컵의 열기와 감동을 되살리기엔 역부족이다. 꼴찌 반란의 주역이자 올 시즌 돌풍의 핵인 대전과 대구의 경기도 8,540명이 찾았을 뿐이다.

지난해 최고의 스타덤을 구가하던 김남일과 송종국 차두리(빌레펠트) 등에 열광했던 소녀팬은 이제 찾아 보기 힘들다. 축구계 일각에선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전형적인 ‘냄비근성’이라고 한탄하지만 문제와 해법을 축구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왜 프로축구에 관중이 없는 지를 따져 보자. 우선 월드컵을 통해 수준높은 경기를 접한 팬들의 눈높이는 높아졌지만 K리그는 기술적인 면에서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새로운 스타 탄생도 찾기 힘들고 잦은 반칙과 고질적인 판정시비는 여전하다. 승부에만 연연한 채 빗장을 깊게 채우는 수비축구도 흥미를 떨어뜨리고 있다.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채 유럽행에만 매달려 기량 쌓기에 소홀한 선수들이 적지 않은 것도 문제다.

그렇다면 유소년 축구진흥과 잔디구장 건설 등 장기적인 축구 인프라 구축을 논하기에 앞서 단기적인 해법은 무엇일까. “0_0으로 비기는 것 보다 0_3으로 지는 게 낫다”며 재미 있는 축구를 강조하는 대전 최윤겸 감독의 ‘신조’는 하나의 답안이 될 수 있다.

스포츠도 쇼인 만큼 재미가 있어야 관중이 몰리기 때문이다.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유소년과 프로리그 등 풀뿌리 축구 발전을 위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은 물론 월드컵 열풍을 잇기 위한 단기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축구계의 다짐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쳤다”며 “이제라도 월드컵 4강 신화의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제대로 짚어내고 적절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수 체육부 기자

입력시간 2003/05/29 10:34


이종수 체육부 j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