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야, 네가 총대를 메다오"


김세옥 청와대 경호실장 동생 김옥전 전남경찰청장
5·18 기념식장 한총련 기습시위로 직위해제

5월 21일 경찰청은 5ㆍ18기념식장에서의 한총련 기습시위로 노무현 대통령이 뒷문으로 입ㆍ퇴장한 사태의 책임을 물어 전남지방경찰청장인 김옥전(56)치안감을 직위해제했다.

경찰에서 치안감 이상 고위급이 비리와 연루되지 않고 단순히 직무와 관련해 직위해제를 당하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대통령 경호 업무와 관련 지방경찰청장이 직위해제되기는 1974년 육영수여사 피격 사건 때 이후 처음이다. 당시에는 서울경찰청장이 직위해제됐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와 관련, 징계 수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사안은 대통령 경호와 관련된 문제로 처음부터 대통령 경호실도 문책 대상에 올라있었다. 그런데도 오로지 경찰만 책임을 지는 것으로 문책이 마무리 된 것에 적잖은 불만이 흘러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김세옥(61) 경호실장이 김 치안감의 친형인 데 빗대어 ‘동생이 총대를 메고 형이 살았다’는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 전 청장의 직위해제로 전남경찰청은 초상집 분위기다. 직원들은 지난 3월29일 취임하자마자 사뭇 개혁적인 행보로 기대를 모았던 김 전 청장의 불운한 낙마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 전 청장은 취임 이후 대부분의 식사를 고급 식당 대신 허름한 식당에서 해결하는가 하면 밥값도 자신이 직접 계산하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이며 직원들과의 거리를 좁히려 애썼던 터라 직원들의 실망감은 더욱 컸다.


경호책임인가, 경비책임인가

이번 사단은 18일 광주 5ㆍ18묘역에서 열린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장에서 비롯됐다. 공중파 TV 3개사의 생중계로 기념식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11시에 열리기로 한 기념식이 18분씩이나 지연되자 ‘행사진행에 다소 차질이 빚어지나 보다’고 무심히 넘겨버렸다.

그러나 이 18분 동안 한총련 시위대 1,000여명이 묘역 정문을 막아 서며 대통령이 탄 차량의 진입을 방해하는 바람에 대통령이 후문으로 입장해야만 하는 있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 것. 식이 끝나고도 정문쪽의 소란이 정리되지 않아 대통령은 퇴장을 할 때도 후문을 이용해야 했다.

이 초유의 사태를 두고 책임 논란이 불거졌다. 식장의 외곽 경비를 담당한 경찰이 우선 도마에 올랐다.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경찰이 다소 안이하게 대응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경찰청 정보국 관계자는 “당시 수집된 경찰정보에는 한총련이 피켓시위 정도에서 그치는 것으로 돼 있었다”며 “정문봉쇄로 이어진 것은 현장에 있던 과격파 학생들의 선동에 일시적으로 분위기가 돌변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학생들의 시위방침과 태도가 변해 미처 막을 틈이 없었다는 설명이다.

반면 경찰 내부를 비롯, 일각에서는 ‘경찰만 뒤집어 쓸 일은 아니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 경호의 최고ㆍ최종 책임은 대통령 경호실에 있으며 경찰은 경호작전의 보조자라는 것이 그 이유다. 더욱이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열린 경호를 선호하는 대통령의 취향에 따라 청와대가 경호방식을 바꾸는 와중에 이번 사태가 발생한 만큼 경호실의 책임이 더 크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문책의 가닥은 논란과 상관없이 신속하게 잡혔다. 경찰청은 한총련의 움직임에 대한 경찰의 정보가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었는지, 또 경비와 관련한 대응이 미숙하지는 않았는지의 여부를 가리기 위해 곧바로 감사관실 산하 감찰팀 8명을 현장에 급파했다. 문책 방향이 경찰에게로 향하게 될 것임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도 “경찰의 경비에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며 “현지 대응이 미흡한 점이 드러나면 문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만 봉인가

당초 문책 강도는 그리 세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노 대통령이 직접 “경호 경비에 대한 과중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언급했고, 최기문 경찰청장도 사건 발생 직후 “감찰 조사를 본 후 징계와 관련한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최 청장은 심지어 일부 언론에 전남청장 직위해제 보도가 나간 것에 대해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말했다. 초기만 해도 징계를 고려치 않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나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자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는 책임자 문책이 불가피했다. 당국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을 마무리 할 수는 없는 노릇.

결국 경찰 경호경비의 잘못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김옥전 치안감이 직위해제되고 당시 경비를 맡았던 순천 경찰서장 등 전남경찰청 소속 총경 5명이 서면징계를 당했다. 대통령 경호실은 현장 경호 책임자인 경호부장이 경고를 받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이를 두고 경찰청 고위관계자는 “경찰 경비작전에 문제가 있었다면 애초에 물리력을 사용하더라도 학생들을 강제해산 시키지 못한 것 뿐”이라며 “5ㆍ18기념식장에서 또다시 불상사가 나타나는 것을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과연 용인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예 대놓고 “책임이 있다면 대통령 경호의 총책임자인 경호실장이 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동생이 형님 몫을 떠안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호실 창설이래 첫 경찰출신 책임자로 간 김 실장에 대한 섭섭함이 가득 담긴 한마디다.


동생의 총대로 형이 살았다

이번 사태로 직위해제된 김옥전 치안감과 김세옥 경호실장은 경찰 내부에서 갖가지 기록으로 화제에 올랐던 형제. 지난해 김 치안감의 승진으로 형제 치안감이 처음으로 나왔고 올해 3월 김 치안감이 전남청장으로 임명된 뒤에는 형제가 잇따라 같은 지방청장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김 실장은 94년 1년 동안 전남청장직을 맡은 바 있다).

형의 길을 꾸준히 따라가던 동생이 의외의 복병을 만나기 까지는 막후 조율이 없지 않았다. 먼저 노 대통령의 ‘중징계 자제 방침’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민정수석이 나서 ‘경찰 책임론’을 강하게 들고 나왔다. 왕수석으로 통하는 문수석의 강경입장에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사건 다음날인 19일 김세옥 경호실장에 전화를 걸어 동생의 경질방침을 전하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20일 국무회의 직전에는 최기문 경찰청장에게 후임인사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형과 동생의 운명은 일찌감치 결정돼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김세옥 경호실장도 그제서야 “경찰의 정보판단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고 쐐기를 박았다. 동생의 섭섭함과 오해는 사라진 뒤였을 터였다.

김정곤 사회부 기자

입력시간 2003/05/29 14:47


김정곤 사회부 kimj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