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좀 봅시다] 너도 나도 "盧와 담판"

참여정부 100일, 각종 시위로 몸살 앓는 '시위공화국'

전국이 온통 시위로 들끓고 있다. 이익단체마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이 그 행렬에 합세하면서 시위의 물결은 더욱 파고를 높여가고 있다.

사상 초유의 화물연대 파업으로 인한 물류대란의 위기, 교육부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전교조와 교총, 학부모 단체들로 나뉜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찬반 시위, 새만금 개발 반대 시위 등이 이어지면서 노무현 정권은 출범 3개월만에 시위 몸살을 앓고 있다. 5월 말부터 터지기 시작한 이런 시위들로 최근 경찰의 업무예정표는 서울시내에서 벌어지는 하루 4~5건의 시위대 경호 일정으로 빡빡하게 채워져 있다. 가히 ‘시위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민주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는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시위의 숫자는 오히려 이전 정권에 비해 줄어들었다”고까지 말한다. 한마디로 별 것 아니라는 설명이다. 과연 그럴까.

이익집단들이 벌이는 시위의 양적인 숫자도 중요하고, 그 숫자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니 다행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시위의 질적인 문제가 이전과는 전혀 딴판으로 복잡한 데다 그 해법마저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이전의 노사 갈등으로 인한 시위들은 회사 차원의 문제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정부에 대한 중재를 촉구하는 선으로 귀결됐다. 이에 노사정위원회나 노동부가 직접 나서 문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곤 했다. 지금은 어떤가. 일개 단위 사업장의 시위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노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만이 해결할 수 있다며 청와대만 쳐다보고 있다.

정부 정책으로 인한 시위도 그렇다. 예전에는 한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은 정책의 철회, 또는 보완ㆍ수정을 촉구하기 위해 정부 청사나 국회 앞으로 달려가 진을 쳤다. 새로운 정책으로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집단의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NEIS와 새만금 개발 문제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제는 정부 정책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경쟁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양상이다. 어떤 결정을 하던 간에 반대 편에 서 있는 쪽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세다.

시위의 양적 부분도 마찬가지다. 이전보다 줄어든 것이 아니고 춘투(春鬪)가 하투(夏鬪)로 바뀌어 산별 및 단위 노조의 투쟁이 이전보다 늦게 시동을 걸고 있을 뿐이다. 금속연맹, 금융업계, 보건의료노조, 시내버스, 택시 등 집단적인 자기 주장이 6월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고개를 들 추세다.


계속 되는 시위 시위 또 시위…

일요일인 6월 1일에는 오전10시 연세대 정문 앞에서 벌어진 6ㆍ15 통일대축전 성사 결의대회가, 낮 12시에는 미 8군 용산기지 정문 앞에서 미군기지 반환 이전 비용에 대한 한국 부담반대를 위한 인간 띠 잇기 대회가 벌어졌다.

오후 2시에는 통일연대와 한총련이 함께 6ㆍ15 남북공동선언 이행과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철회를 요구하는 자주 외교 사수 시위가 대학로에서 이어졌고, 오후 4시에는 종묘공원에서 전학투련 및 학생연대회의의 학생운동탄압 분쇄 결의대회가 열렸다.

전날인 5월31일에는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 범국민 대책위원회’가 광화문에서 ‘민족자주, 반전평화 촛불한마당’ 행사를 개최했으며 이 행사에는 제11기 한총련 출범식 행사에 참가했던 학생 5,000여명도 합세했다.

새만금 공사 중단을 촉구하며 ‘3보1배’ 행진을 65일째 벌여온 성직자들과 이에 동참하는 시민 등 5,000여명도 오전 9시 조계사를 출발, 청와대와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거쳐 오후 2시 시청 앞에서 새만금 갯벌 생명평화연대가 주최하는 기도회에 참석했다. 시위 대표들은 새만금사업 중단을 위한 전북 사람들 선언문 전달을 위해 청와대가 있는 신교동 사거리까지 행진을 계속했다.

여기에다 이날 오후 7시부터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ㆍ일 국가대표 축구경기 응원과 월드컵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청앞 광장으로 나온 붉은악마들과 시민 1만여명이 시위대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주말 양일간에만 수만명이 서울 시내로 쏟아져 나왔다. 휴일이면 조용하던 서울 시내가 인산인해를 이뤘다.

시위대의 요구를 보면 정부 부처나 기업 사용자측, 또는 국회의 여당이나 야당을 향한 메시지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이 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청와대를 겨냥한 시위 장소로 새로 자리를 굳힌 청와대앞 신교동 사거리에는 5월26일 같은 시간에 3개 집단의 시위가 동시에 벌어지기도 했다. 새만금 공사 반대 세력과 NEIS를 둘러싼 찬성 및 반대 시위 그룹들이 똑같이 노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장애인이동권연대에서는 노 대통령에 대한 공개서한을 통해 에바다 농아원 문제 해결을 촉구했고 한총련 정재욱 의장 역시 언론을 통한 공개 서한에서 한총련 학생들의 수배 해제를 건의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5월24일에는 신대방 삼거리에서 새만금 사업중단을 촉구하는 3보1배 시위단 옆으로 사업 촉구를 주장하는 새만금추진협 회원들이 몰려 같은 사안을 두고 찬반 시위가 벌어졌고, 화물연대 사태 해결에 자극받은 레미콘 등 건설기계 업계와 버스ㆍ택시업계가 ‘형평의 원칙’을 주장하며 집단적으로 움직일 태세다.

또 부산에서는 선물시장 통합 저지를 위한 규탄대회, 전주에서는 전주권 그린벨트 해제를 촉구하는 삭발 결의대회, 인천에서는 공무원 노조 조합원들의 시 감사 거부를 위한 도로 연좌시위, 인천공항 신도시에서는 통행료 인하를 요구하는 차량 시위, 서울에서는 청계천 복원반대를 위한 청계천 상인들의 집회가 잇달아 개최됐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니 경북 청송 제2보호감호소에서도 피감호자 400여명이 보호감호제 철폐와 가출소 확대 등을 요구하며 관식(官食) 거부 등의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노 대통령 만이 해결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청와대 보좌관 회의에서 “데모로 문제를 풀어나가려는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서는 원칙을 갖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NEIS 문제와 관련 “전교조가 대화로 문제를 풀지 않고 국가제도 폐지를 주장하면서 정부의 굴복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들어줄 수 없다”며 “자신들의 주장으로 국가의 의사결정 절차 등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시도엔 단호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불법 시위에는 ‘법대로’의 원칙을 지키되 문제 해결에는 대화와 타협을 통하라는 메시지이다.

이것은 원론적으로 참여정부가 지향해야 할 금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는 늘 현실과 이상에서의 괴리에서 발생한다.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종 현안에 직접 나서는 경우가 빈번했다. 전국검사와의 대화를 시작으로, KBS 사장 인선 문제에서는 국회에서 해명하다가 노조 간부를 청와대로 불러 담판을 짓기도 했다. (물론 성공하지도 못했다)

전교조와 한총련 문제에서도 노 대통령은 선봉에 섰다. 특유의 단정적인 어법을 통해 문제 해결의 방침을 천명하고 나서면서 정부 스스로 타협과 협상의 여지를 없애 버린 셈이 됐다. 얼마 전 타결된 화물연대 사태에서도 타협이라기 보다는 정부가 대폭 양보하는 선에서 마무리돼 향후 노사문제에서 불리한 선례를 남겼다.

그런데도 청와대 측은 “해묵은 문제가 이 정권 들어 터져 나왔을 뿐이다. 10년 넘게 지속해온 문제를 이전 정권은 힘으로 누르려고만 했지 문제 해결에 대한 진정한 노력의 자세가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신호탄에 불과할 수도 있는 화물연대 파업을 단순히 이전 정권부터 지속됐던 문제로 치부한다면 앞으로 연달아 터져 나올 사회 각계의 밀어붙이기식 요구에는 어떤 해법으로 접근하고 타결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전문가들은 참여정부의 이런 정국대처 시스템이 우리 사회의 모든 이익집단을 강경투쟁 일변도로 몰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박원순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단순화한 사회에서는 독재정부의 강력한 통제력으로도 문제 해결이 가능했지만 지금의 복잡다단화한 상황에서는 여러 이해가 얽힌 유기적인 집단간의 상호이해와 견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가령 이익단체가 너무 제 주장만 내세울 경우 언론이나 시민단체를 동원한 우회적인 견제 효과를 통해 압박해 가며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야 훨씬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훈수를 두었다.


시위에도 정부 일관성 유지만이 해법

계속되는 시위정국의 해법은 없는가. 한마디로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도, 정권을 겨냥한 이익집단들의 칼날이 아무리 거세더라도 정부가 종합적인 분석 끝에 내놓은 장기적 정책에 대해서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길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즉 아무리 목소리를 높이더라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식의 인식이 퍼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래도 불법 집단행동으로 나서면 노 대통령 언급대로 단호히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정책 방향이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 파악되는 시점에서는 국민에게 납득할 만한 해명과 사과를 한 뒤 ‘일몰정책(정책이 완료되기 전 진행하던 사업을 중단하는 방법)’을 과감히 펴 나가야 한다는 점도 전문가들은 덧붙이고 있다.

실제 미국 대기업들은 수시로 구조조정 차원에서 감원과 해고를 단행하지만 이들의 시위로 해당 업체가 몸살을 앓거나 미국 경제가 흔들린다는 얘기는 없다. 1980년대 이후 정부가 불법 시위나 파업에 대해 엄격한 법 집행을 해온 부분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등이 이 같은 비효율적 요소를 원천적으로 차단시켰다는 것이다.

최근 장관급 회의에서 한 장관이 “불법파업이라 하더라도 비폭력적일 경우엔 공권력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참석자들과 논란을 벌였다. 이 장관은 “불법파업이긴 하지만 비폭력적인 형태로 진행돼 온 병원파업에 대해서는 국가가 공권력을 투입한 적이 없지 않느냐”고 예시하면서 이같이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다른 참석자들은 “설사 병원파업 등의 예가 있다 하더라도 공권력 배제를 명시할 경우 국가기강이 바로 서지 않는다”고 즉각 반박했다. 한국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많은 오해가 발생할 수 있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투자를 꺼리게 되는 부작용도 초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논란을 잠재웠다고 한다.

북핵 위기에 대해 노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평화원칙만을 강조하다 미국방문 이후 추가조치 부분에 합의하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각종 방법을 동원해야 가능하다”고 부연 설명했다. 이익단체들의 ‘님비’적 행태에서도 원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6/03 15:27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