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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가 사는법] 김정명신

육아교육 18년 프로젝트 피말리는 자식농사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아이를 기르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시작했다. 혹자는 얼굴을 붉히며 여전히 육아(교육을 포함한)는 백년지대계이며 엄숙하기까지 하다고 할 것이고 누구도 이 말에 내놓고 딴죽 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과 효율 중심의 가치관에 경제력으로 환원되지 않는 일은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 속에서 유독 가정 내의 육아만 무임금의 인내와 희생을 기초로 존재해왔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가치와 판이한 가치를 살아야 하는 고립된 섬이 ‘엄마’라는 이름의 자리 값이다. 그런데 이 ‘엄마’라는 이름 하나를 들고 세상에 나온 이가 있다. 김정명신(48).

현재 전형적인 모범생과 올 초 고등학교를 자퇴한 문제아(?)를 함께 기르는 엄마이면서 동시에 서초강남시민모임의 대표. WTO교육개방 반대를 위한 범국민 33인의 대표 등의 자격으로 공적인 일에 깊숙하게 관여하며 사회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기도 한 김씨는 “‘엄마로 살기’는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긴장의 연속”이라고 털어놓는다.


육아는 내 삶이 가진 여러 기획 중 하나다!

1982년 동갑인 남자와 결혼을 하면서 이전의 모든 사회적인 관계와 철저하게 단절된 채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 들어간 김씨의 심경은 지금 막 그 시기를 거치는 20,30대 신부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결혼할 땐 분명 남편과 내가 동등한 사회적인 위치를 갖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계속 사회적 영역을 확대해가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에 비해 나는 가정 안에서 자기 자리를 못 찾고 육아를 통해 삶의 만족을 느끼지도 못한 채 항상 밖으로 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부르는 사람은 없는데, 나는 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 시간을 참 많이 보냈어요. 항상 남들 하는 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삶의 고민이 끊이지 않았어요.”

안정된 중산층의 주부로 사는 그의 힘겨움에 화답하고 맞들어줄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혼자 동분서주 할 수밖에.

‘또 하나의 문화’ 동인이 되면서 그는 몇 십 년 후, 혹은 이전의 자기 삶에 대한 밑그림을 자주 그릴 기회를 가졌고, 자주 결혼 전후와 18년 육아 전후의 자화상을 그리곤 했다. 이는 인생을 시기별로 나누어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저는 가족이라는 걸 철저하게 기획으로 생각한 것 같아요. 저의 방법이 별로 바람직하다고는 여기진 않지만 각자의 스타일대로 살아야 하니까 받아들이는 거죠. 제 삶을 시기구분해서 보면 결혼도, 가족도 하나의 기획인 거예요.

그러니 가족에서의 육아도 의무와 권리의 부분으로 다가오는 거죠. 그래서 아이를 물고 빠는 사람이 제가 부러워하는 부모상의 하나예요. 저는 그렇게 못 했거든요. 항상 내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떻게 해줘야 하고, 도를 넘지 말아야 하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말아야 하는 어떤 기획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죠.”

한편 이렇다 할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 중에도 매 순간 끝없이 자신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놓으려는 노력을 놓치지 않음으로서 적어도 획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것들로부터는 자신을 떼어놓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 역시 남매를 둔 가장 한국적인 주부이다. 자신의 일을 정리하는 것처럼 아이들 문제가 명쾌하게 결정된다면 세상의 모든 육아에 관한 논의나 책들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그 역시 아이에 대한 남다른 욕구와 기대가 있었을 것이고, 거기에 부응하기 위해 이미 나와 있는 정답(다분히 권위적일 수밖에 없는)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 역시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런 저런 사교육을 많이 시켰어요. 열손가락, 발가락이 모자랄 정도로요. 그러다 어느 순간 때가 되면 결국 아이들은 내 곁을 떠나는 존재라는데 생각이 미쳤어요. 아,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떠나겠구나 싶었죠.

당시 저는 아이 키우는 일을 시한부로 생각하지 않으면 도저히 그 긴장감을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어요. 마치 오늘 살고 내일 죽는다면 오늘 어떻게 할 건가 하는 식의 긴장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육아는 18년이라고 정한 거예요.”

무조건적인 인내와 희생이 강요되는 모성과 한 인간으로 자기 삶을 사회와 연결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가 뒤섞이는 속에서 그는 아이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렸다. 육아담당자이며 동시에 사회구성원이라는 균형감이 필요했던 것.

18년 프로젝트를 실천하는 동시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찾은 그녀는 바쁜 엄마와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하고 있다.


‘엄마로 살기’의 어려움과 기쁨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를 때가 제일 힘들죠, 나도 처음 닥치는 상황을 아이가 들고 왔을 때, 내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이 보기엔 어른이지만 나도 별로 그렇게 성숙한 인간이 아닌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그는 그의 책 ‘나도 아이와 통하고 싶다’에서 자주 엄마의 모자람과 잘못을 고백한다. 비교적 권위를 탈피한 부모들도 아이 앞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부모로서의 책임과 권리를 한시도 잊은 적 없는 그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크면 다 눈치를 채게 되요. 성숙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엄마가 이럴 수가 있나 하는 저항이 오죠. 그럼 별 수 없이 ‘내가 그때 실수했다’해요. 가족은 서로가 서로를 성숙하게 하는 존재. 어린 아이는 아이의 순수함으로 부모가 뒤돌아볼 수 있게 하고, 부모는 성인으로 행동하는 성숙함을 주는 거죠. 아이들이 나보다 백배, 천배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함께 커나가는 과정에서 그런 순간들을 포착하면서 아이들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인정하는 지점들을 만나는 거죠.”

또한 아무리 부모가 애를 써도 아이의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져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자신을 잘 책임지면서 소통하는 거, 엄마 스스로 잘 살면서 아이들과 잘 소통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쉽지만 엄마가 할 수 있는 전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물론 저 역시 다른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수없이 이 길로 그냥 집을 나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때마다 인내하고 더 깊이 그 문제에 천착하는 것, 나와 아이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갈 것인가, 공부가 거대한 산처럼 관계를 가로막고 있지만, 그걸 빼고 아이와 내가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어요. 그리고 지금도 엄마로서 양육하면서 받는 즐거움에 만족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한편 분명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의 주요인물이지만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답 역시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가정일 자체를 너무 경시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이런 외적조건으로만 보면 주부의 삶에 만족하고 살기 참 어렵잖아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육아란 자기 삶의 한 과업이지 전 생애를 거는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따라서 육아라는 엄청난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 중에도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 사회와의 유기적인 소통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육아도 건강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들도 영화 ‘디 아우어스’처럼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찾아 떠나야 하는데, 엄마들이 다 아이의 ‘로드매니저’가 되어 저녁마다 길거리에 애들 끌고 다녀요. 그 엄마들이 얼마나 똑똑한 엄마들인데요, 그런 사람들이 자기 역할을 거기에 한정짓는 거예요.

나만의 만족-내 아이를 명문학교에 보내는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을 만들고, 자기 자신이 만족하는 사람으로 기르는 일은 한 사회의 시민노릇과 학부모노릇을 동시에 할 수 있을 때 가능성이 보이는 거죠.”

엄마의 업무는 가정이라는 테두리에 한정되어있으되, 엄마의 사고는 전 세계를 향해 열려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작게는 가족의 일원이고, 크게는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 성장할 아이들과의 소통은 결코 만만찮은 과업인 셈이다.

“저희 아이도 둘째가 기존의 질서와 타협하지 않고, 그래도 자기 생긴 대로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을 치는 거잖아요. 저는 그게 좋은 거라 생각해요. 나는 못 그래봤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 강한 에너지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지, 키움을 당하는지(웃음)아무튼 그 아이를 옆에서 돌볼 수 있다는 거, 그런 것들이 참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아이가 앞으로 사회적으로 할 일들에 대한 기대를 갖는 즐거움을 이제 좀 가지려고 그래요. 원래 모범생이었고 모범생으로 주는 즐거움도 있었지만 이젠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거잖아요.”

지난 2,3년 간 권위적인 학교에 적응 못하는 둘째와 매일 줄타기를 하는 심정으로 살아오며 그가 내린 결론은 ‘모범생과 문제아(?)는 그야말로 한 끗 차이도 되지 않는다.’는 것. “저도 그 과정을 통해서 참 많이 단련되는 것 같아요. 2,3년 전만 해도 남이라고 다 다니는데, 왜 너만 못 다녀. 너무 똑똑해서 탈이야, 하는 식으로 비하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지금은 그 과정을 벗어나고 있어요.”

그의 말대로 반올림해서 50이 되는 나이에도 아직 그의 18년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다. 많이 노력했지만 여전히 기존의 교육시스템과 그것이 처한 환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세상의 어떤 부모가 10명 중에 1명만이 인정하는 길 위에 아이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양은주 자유기고가 wayfar@hanmail.net

입력시간 2003/06/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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