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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문화읽기] 기차의 추억과 상징성

지난 주에는 포항에 다녀왔다. 포항은 국내에서 비행기 결항이 가장 잦은 곳 가운데 하나이고, 날씨를 예측할 수 없는 터라 출도착 시간이 안정적인 기차를 선택했다. 얼마 만에 타보는 기차인가. 어렸을 때 외조부를 뵙기 위해 방학마다 경부선을 이용하곤 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7살 때 침대차를 탔던 일이다.

잠이 많은 어린 자식을 위한 부모의 배려였을 텐데, 누워서 기차를 타고 가는 경험은 참으로 즐겁고 인상적이었다. 이런저런 공상을 하다가 덜컹거리는 기차소리를 자장가 삼아서 잠이 들었을 때의 그 느낌들이, 내 몸 어딘가에 짙은 무의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박천홍의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을 읽었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씌어진 책으로, 철도에 대한 문화사적 연구로는 국내 최초의 저작이다. 철도 위를 미끄러져 가면서 철도의 역사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경험이, 무척이나 기분 좋은 흥분을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여행을 하면서 책을 읽는다는 일 자체가 기차가 등장하면서 가능해진 경험의 양식이다. 전근대적인 교통수단인 마차나 가마는 멀미와 구토를 일으킬 정도로 심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그 위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묘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여행 중의 독서는 기차여행이 일상화되면서 나타나게 된 문화적 현상이자, 역사적으로는 근대가 가져다 준 경험의 양식인 셈이다.

기차는 근대적 과학기술 또는 테크놀로지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근대(현대)라고 한다면, 근대의 역사적 기원 가운데 하나는 산업혁명이며, 산업혁명의 핵심에 증기기관이 놓여져 있음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상식일 것이다. 피스톤의 폭발적인 왕복운동과 기차의 기적(汽笛) 소리는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팡파르와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기차의 역사적인 의미는 근대적인 산업 발달이라는 측면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기차는 근대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최초의 테크놀로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와 관련된 기억 하나쯤은 가질 수 있었던 데에도, 기차가 우리의 일상생활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에 기차가 들어온 것은 1899년에 부설된 경인선이 처음이다. 당시 경인선의 2등칸 요금은 80전이었고, 계란 100개에 맞먹는 요금이었다. 경인선이 개통되었을 당시 ‘독립신문’에 기재된 시승기를 잠시 살펴보자.

“화륜거(기차) 구르는 소리는 우레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달리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진실로 대한사람의 눈을 놀래더라.”

기차에 대한 태도는 계층에 따라 확연하게 나뉘어진다. 유학을 다녀왔거나 서양문물에 익숙한 지식인 계층들은 기차를 문명개화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반면에 철도부설 명목으로 농지를 수탈당하고 노동력까지 징발당해야 했던 일반 백성들에게 기차는 삶의 근거를 뒤흔들어 놓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기차를 두고 도깨비와 악력이 붙은 물건이라고 보았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기차는 서구의 지식과 문물을 실어 나르는 문명의 통로였던 동시에 기층 민중들의 피와 땀을 수탈하는 통로였던 것이다.

기차는 근대성의 상징이자 동시에 식민성의 상징이다. 한 인간의 운명이 손바닥의 손금으로 나타나는 것이라면, 기차의 선로는 한국의 근현대사에 드리워진 운명의 표정(근대성과 식민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동시에 기차는 책의 저자인 박천홍에게 주어진 운명의 표정이기도 하다.

“기차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서랍에 들어 있다. 고향 마을의 맨 끝에 위치한 집에서 바라보면 멀리 기찻길이 보인다. 아버지는 철도 공무원이었다. 깊은 밤에 어슴푸레 눈을 뜨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가 있었다. 아버지였다. 그에게는 유랑민의 흔적 같은 바람냄새가 묻어 있었다. 아버지의 서늘한 품에 안기면 왠지 모를 서러움이 돋아났다.”(저자 서문에서 부분 발췌.)

유년기의 체험 한 가운데에 놓여져 있던 기차를 역사적인 인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저자의 노력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이제 우리는 근대를 더 이상 풍문이나 구경거리로서가 아니라 ‘몸의 언어’로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 참으로 좋은 책을 읽었다. 조만간 저자를 다시 만나 유쾌한 술자리를 갖게 된다면, 그의 손금이 철도와 얼마만큼 닮았는지 확인하게 될 것 같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

입력시간 2003/06/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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