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청와대, 100일만의 권력투쟁?

'땅' 둘러싼 정권 이너서클 내부 불협화음 감지

노무현 대통령 측근의 부동산 거래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이너서클’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솔솔 새어 나오고 있다. 그간 청와대 내에서 보좌진들 간에 주요 정책 결정을 놓고 이런저런 이견이 노출되기도 했지만 ‘권력투쟁’으로 부를 만한 양상까지로는 비화되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문제점을 해소한 측면도 있었고 정권 전체를 뒤흔들만한 급박한 상황도 아니어서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개입된 용인 땅 문제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강금원 부산 창신섬유 회장이 용인땅 의혹 해명 과정에서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을 공개 비판하자 노 대통령의 386 측근인 안희정씨의 문 수석에 대한 우회적인 역공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 더욱이 노 대통령의 용인술과 맞물려 최측근 실세들간의 미묘한 권력이동 양상까지 조금씩 감지되고 있다.

물론 당사자들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권력투쟁은 완전한 소설(小說)”이라고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웬지 돌아가는 움직임이 예사롭게 넘길만한 상황은 아닌 듯 하다. 역대 정권에서 보아 왔듯이 정권의 세력다툼은 최측근과 핵심 실세들간의 원인 모를 잡음과 대립에서부터 시작돼왔기 때문이다.


PK인맥 vs 386 보좌진의 정면 충돌?

민정ㆍ사정 라인에 주로 포진된 PK인맥과 청와대 비서진 전반에 분포돼 있는 386인맥 사이에서 제기된 청와대 권력투쟁설은 강금원 회장의 문 수석 비판에 안희정씨가 영향을 미쳤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나라종금 사건 수사과정에서 두어차례 검찰에 소환된 안씨가 문 수석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다가 이번 부동산 사건을 계기로 정치적 역공을 가했다는 시나리오다.

이같은 가설은 강 회장이 5월 경에 노 대통령을 만나 문 수석의 안씨 검찰 수사 처리 문제를 비판한 점과 안씨가 강 회장의 기자회견 전 부산으로 내려가 회동했다는 데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강 회장이 청와대 책임론을 거론하면서 문 수석과 담당 비서진들의 사퇴까지 언급한 것은 경쟁 세력과의 갈등 기류가 없다면 좀체 나오기 힘든 강력한 압박카드라는 점도 이 같은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갈등설은 노 대통령이 어렵던 시절 ‘노 캠프’의 궂은 일을 도맡았던 안씨가 나라종금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고 있을 때 문 수석을 포함한 청와대 내의 PK 인맥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데 대한 불만에서 촉발했다고 한다.

실제로 안씨 문제 외에도 이광재 국정상황실장을 비롯한 노 대통령 보좌진의 한 축인 386인맥들은 문 수석을 비롯한 PK인맥에 밀려 국정의 현안마다 좀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386 측근들의 불만이 쌓일 법도 하다.

문 수석과 이호철 민정비서관 등 PK 인맥들도 불만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안씨가 검찰조사 과정에서 나라종금 돈의 사용처와 관련해 “대통령에게 물어보라”며 버텼다는 점에 대해 편치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자신들은 안씨에 대해 나름대로 신경을 썼는데도 책임을 돌리려 한다는 입장에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일소에 부치고 있다.

안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산에서 강 회장을 만난 것은 “지금 나서면 시끄러우니 상황을 보면서 (회견을) 하라고 만류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한 뒤 “대통령에게 구명을 시도했다는 보도도 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얘기이며 나에 대한 ‘이지메’에 불과하다”고 극구 부인했다.

또 문 수석에 대한 정치적 역공 부분과 관련, “나와 존경하는 선배인 문 수석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며 펄쩍 뛰었다.

문 수석의 반응도 비슷했다. 그는 “희정이 하고야 강 회장보다 내가 더 친하지”라며 안씨의 강 회장 사주설을 일축했다.


“긴장관계 사실, 주도권 다툼은 아니다”

양 세력간의 권력투쟁설 갈등 관계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도 한결같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손을 내젓고 있다. 다만 PK인맥이 민정ㆍ사정라인에 주로 포진돼 있다 보니 업무 자체가 대통령 측근들에 대한 감시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일정한 긴장관계가 형성될 뿐이라고 설명했다.

문 수석 등이 조준해야 하는 업무상 과녁이 당연히 청와대 측근들을 겨냥하는 일이고, 여기에 386 인맥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란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안씨가 오랜 기간 노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어렵게 살아왔는데 생수회사 문제에서 혼자 몰리게 된 데 따른 섭섭함이야 당연히 들지 않겠느냐”며 “이런 푸념을 늘어놓다가 말이 와전되면서 발언 수위가 증폭돼 권력투쟁설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깐깐한 성품의 문 수석이 측근이고 뭐건 간에 무조건 ‘법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점이 적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문 수석이 조흥은행 매각문제와 스크린 쿼터 축소 문제 등을 이정우 정책실장에게 넘기게 된 배경도 이 같은 갈등설에 기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참여정부 출범후 일방적으로 몰려오던 386세력들이 부산 중심의 PK인맥에 맞서 제 목소리를 키우게 될 지 아직은 미지수다. 권력암투인지 단순한 업무상 이견인지는 향후 이들의 행보에서 감지될 것이다.

노 대통령을 보좌하는 PK인맥과 서울 중심의 386인맥. 부산파는 문 수석과 이호철 민정비서관, 송기인 신부, 조성래 변호사 등 재야출신들이 주축이며, 서울파는 이광재 국정상황실장과 안희정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 등으로 분류된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6/11 14:43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