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재경부 수장 사면초가

NEIS·경제정책 혼란, 잇단 설화·말바꾸기 신뢰잃어

인터넷을 뒤지다 재미있는 질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왜 교육부는 다른 부처와 달리 장관이라는 칭호를 쓰지 않고 총리라고 합니까?” 이 순진한(?) 네티즌은 ‘교육 부총리’를 ‘교육부 총리’로 잘못 알아 들은 것이다. 아마도 총리와 장관의 개념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을 듯하다.

그리고 교육인적자원부(교육부)의 수장이 다른 부처의 장관과는 ‘격’이 다르다는 점도.

재정경제부와 교육인적자원부. 국가 경제 정책과 교육 정책을 총괄적으로 책임지지는 두 부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요한 현안을 떠맡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부처와 달리 ‘부총리 부처’로 대접 받는다(한 때는 교육부 대신 통일부가 부총리 부처였다).

이들 부처의 장관은 국무총리로부터 특정 사무를 위임 받는 부총리를 겸임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국무총리가 공석이 되거나 자리를 비우면 재경부장관과 교육부장관이 차례로 역할을 대행한다.

그런 막강한 ‘부총리 부처’가 요즘 총체적 시련을 겪고 있다. 온통 잿빛 투성인 경제 지표는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혹은 일본식 장기 불황의 우려를 가중시키고 있고, 교육행정정보화시스템(NEIS) 논쟁에 휘말린 교육계는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참여정부 첫 내각 출범 당시 여론의 이목이 집중됐던 법무부, 행정자치부, 문화관광부 등 문제의 ‘장관 부처’들이 비교적 순탄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두 부처에 대한 비난 여론은 곧 두 부총리에 대한 비난 여론과 맥을 같이한다. 둘의 행보는 아주 닮아 있다. 취임 초기의 설화(舌禍), 갈수록 한계가 보이는 조직 장악력, 그리고 숱한 말 바꾸기까지. 더 이상 시장은, 또 교육계는 이들 두 부총리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리고 내각 입성 100여일 만에 거센 퇴진 압력에 부딪혔다.


외곬 세제통, 3분의 1쪽 부총리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애초부터 경제 부총리로서 두 가지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외곬 세제 전문가’라는 꼬리표다. 그의 이력을 살펴 보자. ‘행시 13회 합격-국세청에서 관료 생활 시작-재무부 세제실 요직 섭렵-준비기획단 사업추진본부장(1급)-재경부 세제실장-재경부 차관-국무조정실장.’ 30년 공직 생활 중 세제 분야를 벗어나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다. 그 덕분일까. 현직 관료 중 최고의 세제통으로 그를 꼽는 데 주저할 이는 별로 없다.

하지만 경제 부총리로서는 그것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그가 장관직을 맡고 있는 재경부 조직만 보더라도 이 같은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재경부를 움직이는 핵심 국ㆍ실은 경제정책국, 금융정책국, 국제금융국, 그리고 세제실이다.

재경부의 핵심 업무가 거시 정책(경제정책국), 금융(금융정책국, 국제금융국), 세제(세제실)인 탓이다. 이는 김 부총리가 기껏해야 ‘3분의 1 쪽 부총리’에 불과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재경부 한 관계자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세제실은 전통적으로 다른 국들과는 일정 정도 거리를 둔 독립 기구의 성격이 강하다”며 “세제통 부총리는 절름발이 부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 부총리가 받아 든 중간 성적표가 너무 초라한 것도 이와 무관치는 않을 듯 싶다. 분명 김진표 경제팀은 경기 하강 곡선에서 출발해 다소의 핸디캡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 해도 현재까지의 실적은 예상보다도 더 나빴다. 올 1분기 성장률이 3.7%에 그친 데 이어 출범 후 본격적인 성적표라 할 2분기 성장률은 1~2%대로 주저앉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숱한 투기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 진정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도 ‘부총리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두더지 잡기 식 뒷북 정책만 내놓아서야 부동산 투기 붐을 잡을 수 없다는 심리가 팽배하다”며 “결국 현 경제팀이 시장에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盧와 다른 코드, 조기교체론 대두

김 부총리가 지닌 또 다른 한계는 ‘코드’(최근 고 건 총리의 표현을 빌자면 주파수)의 이질성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 시절, 그는 다른 경제 분과 인수위원들과 ‘1 대 다(多)’의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이정우 경제1분과위원장(현 청와대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뭉친 개혁파 인수위원들은 노골적으로 그의 보수성을 경계했다. 대립 구도가 공개적으로 표출된 것은 출자총액제한제를 둘러싼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

“증권 집단소송제를 조기 도입하면 출자총액제한을 완화할 수 있다”는 그의 발언에 대해 한 인수위원이 “인수위가 논의하거나 결정하지도 않은 내용을 멋대로 발표하고 있다. 이 같은 발언은 월권이며 이를 정식으로 문제 삼고 당선자에게 건의하겠다”고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던 것이다.

정부 출범 이후에도 사정은 달라질 것은 없었다. 여전히 청와대를 비롯한 경제팀 핵심 요직에는 이정우 실장을 비롯한 인수위 개혁파 멤버들이 줄줄이 포진해 있는 탓이다. 취임 초부터 코드의 이질성은 노출됐다.

“내가 알고 있는 관료 중 최고는 김진표다”라고 누누이 말해왔던 노무현 대통령은 법인세 인하, 가계부채 대응 방안 등에 대해 그를 호되게 질책했다. 추경 편성 등 경기 부양책 필요성, 출자총액제한 제도 완화, 접대비 사용 한도 등을 둘러싸고도 정책 혼선은 계속됐다. 경제 정책을 장악해야 할 부총리가 리더십을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스스로 화를 자초하기도 했다.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과 함께 검찰총장을 찾아가 SK그룹 수사 결과 발표 연기를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고, 한 인터넷 매체 기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미국이 북한 영변의 핵 시설을 기습 폭격하는 방안을 우리 정부에 타진해 왔다”고 말했다가 홍역을 치렀다.

요즘 재경부 홈페이지는 부동산 정책 실패 등을 문제 삼으며 김 부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들이 빗발치고 있다.

“무능한 부총리가 지금까지 한 유일한 일은 1가구 1주택에도 양도세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 현안이 얼마나 많은데 서민들 돈 뜯어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는 것인지. 적어도 부총리라면 매크로(거시)를 봐야지.” “솔직히 부총리에는 적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를 종합적으로 봐야 하는데 세제 전문가가 거시와 미시를 모두 보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 합니다.” ….

경제계 내부에서도 현 경제팀 조기 교체론이 서서히 대두되는 분위기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경제 부총리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든지, 그렇지 않다면 조속히 교체하는 것만이 나락에 빠진 경제를 살리고 시장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했다.


장고 끝에 둔 악수, 혼란 자초

‘전성은(거창 샛별중학교 교장) →윤덕홍(대구대 총장) →오 명(아주대 총장) →김우식(연세대 총장) →전성은 →윤덕홍’ 교육 부총리 자리에 까지 오르는 과정은 험난했다. 번번이 내정을 알리는 기사가 일간지 1면을 장식했지만 그 때마다 교육계나 시민 단체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2.27 조각’에서 보류됐던 교육 부총리 인선은 1주일 뒤인 3월6일에야 돌고 돌아 윤덕홍 카드로 마무리됐다. 그는 고교 교사(8년), 전문대 교수(11년), 대구대 교수 및 총장(14년) 등 중등과 대학 교육에 두루 경험을 갖고 있는 흔치 않은 인물.

특히 민주화교수협의회 공동 의장을 역임하는 등 개혁성이 두드러진 동시에, 한국사회교육학회장에 선출되는 등 주류 학계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계의 갈등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장고 끝에 악수라고 했던가. 윤 부총리는 취임 첫 날부터 돌출 행보를 거듭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자격 고사로 전환하겠다는 말을 시작으로 서울대 공익 법인화, 대학 기여입학제 반대 등 민감한 현안에 대해 자신의 정책 방향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결정타는 취임 둘째 날 NEIS와 관련한 언급이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NEIS에 대한 질문을 받고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유보해야 할 것 같다”고 발언을 한 것. “지금 일부 시행에 들어간 곳도 있는데 그런 곳은 중단시키느냐”는 물음에는 “그럴 생각이다”고까지 했다. 물론 부처 공무원들로부터 업무 보고도 받기 전이었다.

이후 윤 부총리의 NEIS 관련 발언은 냉온탕을 거듭 오갔다. “취임 전 생각했던 것 만큼 심각하지 않은 것 같다. 정보 유출도 쉽게 이뤄질 것 같지 않다.”(3월12일) “NEIS 문제점을 보완해 추진하겠다.”(3월13일)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과 NEIS 중 하나를 택한다면 NEIS를 해야 한다.”(5월19일) 급기야 5월26일에는 전교조와의 합의를 거쳐 교육부가 공식 입장으로 교무ㆍ학사, 보건, 입ㆍ진학 등 3개 영역에 대해 NEIS 시행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밝혔지만, 이틀 뒤에는 다시 윤 부총리가 “NEIS는 시대적인 추세다. 6개월간 잠시 중단한다는 것이지 내년부터 CS로 돌아간다는 것은 아니다”고 다시 말을 바꾸며 파문은 다시 확대됐다.


교육계도 등 돌린 교육부총리

윤 부총리 취임 이후 3개월간 교육 현장에는 대형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서울 시내 고교생 집단 식중독 사태, 충남 천안초등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참사, 그리고 충남 예산 보성초등학교 서승목 교장 자살 사건까지.

그리고 서 교장 자살 사건으로 촉발됐던 교단 내 갈등은 NEIS 문제를 둘러싼 윤 부총리의 오락가락 발언으로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최악의 분열상을 빚고 있다.

NEIS를 강행하겠다는 발언이 나오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연가 투쟁에 나서겠다고 별렀고, 유보하겠다는 언급이 나올 때는 시도교육감과 교장단이 들고 일어섰다. 심지어 6급 이하 교육부 공무원까지 가세하는 등 파국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다.

새와 동물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던 박쥐의 우화에 비유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걸까. 잦은 말 바꾸기에 이제는 교육계 어느 누구도 윤 부총리 편에 서 있지 않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교단 양측이 모두 “윤 부총리 퇴진”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양상이다.

야당인 한나라당도 윤 부총리에 대한 국회 해임건의안 제출을 적극 논의중이다. 정치권에 파다한 개각설에 불을 지핀 당사자도 물론 윤 부총리였다. 교육 정책의 수장인 그가 이번 ‘교육 대란’의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어쩌면 참여 정부 첫 내각 낙마 1호의 불명예를 안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지도 모른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6/11 14:53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