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노루오줌

왜 하필 그 많은 이름 중에 노루오줌이 되었을까? 그리 고운 모습을 하고 말이다. 노루가 살아 갈만큼 깊은 산골에 피는 식물이며 식물체에 약간 찝찝한 냄새가 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노루오줌에 한번 눈길을 주고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이름을 두고 마음 쓰지 않는다. 보는 일 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좋으니 말이다.

노루오줌은 범의귀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아주 크게 자라면 꽃대의 높이까지 모두 합쳐서 70㎝정도 자란다. 곧게 올라간 줄기는 두 세 번 갈라져 작은 잎들이 모여 이루어진 잎새를 달고 있고, 줄기 끝에는 지름이 3㎜나 될까 싶은 작은 꽃들이 모여 길이가 30㎝에 달하는 고깔모양의 커다란 꽃차례를 이룬다.

비록 아주 작은 꽃들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기 위해 서로 조화롭게 달리는 노루오줌 꽃의 슬기가 참으로 부럽다. 더욱이 진분홍빛 꽃잎은 그 때깔이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 모른다. 노루오줌 가운데는 잎이 달리는 각도가 아주 큰 진퍼리노루오줌, 꽃차례가 축축 늘어져 달리며 꽃의 빛깔도 다소 연한 홍색인 숙은노루오줌 등이 있으며 얼마 전 오대산에서는 아주 흰 노루오줌을 구경하기도 했다.

예전에 노루오줌의 가장 중요한 쓰임새는 약용식물이었다. 유명한 약제 승마와 유사한 생김새 탓인지 생약명으로 소승마(小升麻) 또는 구활(求活)이라고 부르거나 뿌리를 특별히 적승마(赤升麻)라고 하여 약으로 썼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채취한 꽃이나, 잎, 줄기를 말려두었다가 잘게 썰어 쓰는데 확실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이 약재에는 베르기닌과 탄닌이라는 성분이 있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보통 소승마라고 부르는 땅 위에서 자라는 부분은 해열, 진해 작용이 있으므로 감기로 인한 열, 기침, 두통과 몸살 기운이 있을 때 처방하고 적승마 즉 뿌리 부분은 진통작용이 있으며 혈액순환을 돕기 때문에 관절이나 근육통, 타박상에 의해 멍이 들었을 때 처방한다.

요즈음 사람들이 노루오줌에 관심을 주는 이유는 관상적인 가치 때문이다. 이 노루오줌과 형제가 되는 서양의 노루오줌속 식물들을 잘 개량하여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품종을 만들어 화단에 모아 심거나 화분에 모양을 만들어 키운다고 한다. 절화로 쓰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여러 종류가 자생하고 있고 또 같은 종이라고 하더라도 꽃의 모양이나 빛깔이 다양하여 최근에는 이를 상품화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노루오줌은 특히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강하고 한번 심어 놓으면 아주 심하게 건조하지 않는 한 특별한 관리가 없어도 몇 년 정도는 매년 꽃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봄에 화려했던 꽃들이 다 져버리고 꽃을 보는 식물이 뜸해질 즈음에 꽃을 피기 시작하여 여름내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해도 노루오줌을 만나지 않고 산행을 한 해는 없지만 몇 해 전 오대산 자락에서 만난 노루오줌 무리들이 유난히 눈에 밟힌다.

함께 무리지어 살면서도 때론 하얀 꽃을, 때론 진한 분홍꽃을 피우기도 하고 늘어진 꽃차례가 아름다운 모습을 했던 그 조화로움에 떠오른다. 여름이 오고 있으니 산행, 그 곳으로의 산행을 한번 계획해 보아야겠다.

입력시간 2003/06/12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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