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즐겁다] 인제 방태산 적가리골

맑은 계류에 열목어 노니는 비경의 유토피아

이 산하에 꽃불을 지폈던 철쭉이 지고 나면 계절은 이미 여름의 문턱을 넘어선 것이다. 이럴 때 도시의 회색빌딩 숲 사이를 거닐다 보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식혀줄 초 여름의 신록이 더욱 그리워진다.

뻐꾸기 노랫소리 울려퍼지는 숲 그늘에서 파란 하늘에 떠가는 흰 구름을 바라보며 초여름의 한가함을 즐기고 싶다. 맑은 계루에 두 발 담그고 하루쯤 원시의 숲 드리워진 자연에 온 몸을 맡기면 바로 그곳이 유토피아 아닌가.

인제 방태산과 개인산 둘레로는 예전부터 '삼둔 오가리'라 불리는 한국적인 이상향이 있었다. 살둔, 달둔, 월둔의 삼둔과 아침가리, 명지가리, 적가리, 곁가리, 연가리 이렇게 오가리는 옛부터 흉년, 전염병, 전쟁 등을 피할 수 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대부분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형세로, 입구가 속세와 단절되어 있어 접근이 매우 어려운 곳이었다.


운석 떨어진 자리에 생긴 적가리골

삼둔 오가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한나절로도 접근이 어려울 정도로 오지였으나 이젠 대부분 큰 길이 뚫렸고, 화전민들이 하나 둘 빠져나가 거의 빈터만 남았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건조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쉬면서 원기를 충전하는 곳으로 애용되고 있으니, 삼둔 오가리는 자신의 임무를 아직 잊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 중 강원도 인제 방태산(1,444m)에서 흘러내리는 적가리골은 초여름 환상의 휴식처. 1997년 계곡 깊숙한 곳에 자연휴양림이 생기면서 찾기가 수월해졌지만, 그 이전만 해도 인근 주민들이나 여행 마니아들만 소시 소문 없이 찾던 곳이다.

방태산 자연휴양림은 전국에 산재한 80여개의 휴양림 가운데 여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지닌 휴양림중 하나로 손꼽힌다.

산막시설로는 매표소에서 1.5km 상류에 있는 산림휴양관이 전부. 따라서 한여름 성수기엔 예약하기가 어렵다. 이럴땐 숲속에 자리한 가족야영장이나 오토캠핑장을 잉요해보자. 야영데크와 취사시설이 갖춰져 있어 야외생활에도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자연의 숨소리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어 좋다.

지세가 마치 넓적한 그릇을 닮은 적가리골은 아주 오랜 옛날 운석이 떨어져 생긴 운석분지라고 한다. 원시의 짙은 숲이 품고 있는 계곡은 푹포와 바위들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계류는 그냥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그곳엔 1급수의 차가운 물에서만 서식하는 열목어도 노닐고 있다.

적가리골 경관의 핵심은 산림휴양관앞의 계단폭포, 주민들은 '이 폭포 저 폭포'라는 소박한 이름으로 부른다. 위쪽에 있는 높이 15m쯤의 '이 폭포'는 아래에 널찍한 소(沼)를 이루었다가 다시 '저 폭포'라는 이름의 짤막한 폭포로 떨어진다. 계단폭포 아래의 널따란 마당 바위도 더위를 식히기에 아주 좋은 곳.

적가리골을 품은 방태산은 초여름이면 온갖 들꽃들이 피어나 천상의 화원을 이룬다. 계곡가 돌 틈엔 바위취가 앙증맞은 흰꽃을 피우고, 새하얀 함박꽃도 화사하다. 구상나무 가득한 능선에선 군락을 이룬 자줏빛 범꼬리가 초여름 바람에 한들 거린다. 코끝을 자극하는 짙은 내음은 정향나무 꽃향기다. 고지대서만 자라는 곰취나 참나물도 지천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적가리골의 경관도 경이롭다. 계곡에 묻혀있을 땐 알 수 없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운석분지라는 전설을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은 계곡임을 깨닫는다. 휴양림~적가리골~지당골~주억봉(정상)~적가리골~휴양림 왕복코스가 총 5시간 소요된다.


삼산 캔 자리서 샘솟는 방동약수

적가리골 들머리엔 산삼 캔 자리에서 솟는다는 방동약수가 있다. 전설은 이렇다. 1670년경 인제의 한 심마니가 산삼을 캐려는 일념으로 오랜 세월 산속을 헤맸지만 매번 허탕만 쳤다. 그러던 어느날 심마니는 꿈에 나타난 백발노인의 계시를 받고 적가리골 아래께서 꿈에 그리던 산삼을 발견했다.

그것도 삼대 위에 가지가 여섯 개 있고, 종자가 만 개 달렸다는 '육구만달'이었다. 이는 800년에서 1천년쯤 묵어야 되는 천종삼(天種參). 방동약수는 심마니가 육구만달을 캐어낸 바로 그 자리서 샘솟는다.

300살쯤 된 엄나무 아래의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방동약수는 위장병과 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약수를 한 모금만 들이켜도 도시에서 쌓인 피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근처 어딘가에 자라고 있을지도 모를 산삼의 뿌리를 적시고 나온 약수가 아닌가. 이 물로 밥을 하면 푸른 기운이 도는 찰진 밥이된다.


▲ 교통

서울→6번 국도→양평→44번 국도→홍천→인제→31번 국도→현리→현리교(건너기 직전 좌회전)→418번 지방도→8km→방동교(우회전)→4km→방태산자연휴양림.

또 서울서 양평, 홍천을 지난 뒤 철정검문소 삼거리(우회전)→451번 지방도→내촌→상남→31번 국도→현리를 거쳐도 된다. 서울 기준 3시간30분 소요.


▲ 숙식

방태산자연휴양림(033-463-8590)은 보통 한 달 전부터 예약을 받으므로 여행 계획이 서자마자 예약부터 하느게 좋다. 가게가 전혀 없으므로 식료품은 현리 등에서 미리 구입해야 한다. 적가리골 입구에 꽃피는 산골(033-463-7397). 홍남복민박(033-463-5488)등 깔끔한 분위기의 민박집이 여럿 있다. 방태천 주변의 아침가리민박(033-463-9975). 나무꾼과 선녀(033-463-5757)등도 깨끗하다.

입력시간 2003/06/13 14:03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