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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선 돈 냄새가 풀풀 났다"

'제2신창원'행세 전문절도범, 부촌을 제집 드나들 듯

“어릴 때부터 조세형, 신창원의 신출귀몰한 범행을 따라 해보고 싶었다. 내가 범행대상으로 삼았던 동네는 신창원이 활개를 치고 다녔던 서울 강남 일대와 용산구 한남동, 이촌동 일대의 부촌이었다.”

2003년 5월 중순께 서울 청량리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은 경찰청 과학수사반으로부터 관내 아파트에서 발생한 절도사건 용의자의 지문이 확인됐다는 긴급연락을 받았다. 용의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한 경찰은 즉시 예상 은신처 2곳에 검거반을 급파, 잠복수사에 들어갔다. 잠복수사 14일째인 6월10일 오후 6시께 중구 남대문로 5가 노상에서 용의자 김모(26)씨를 검거했다.

자신의 주장처럼 ‘제2의 신창원’이 나타난 것일까? 김씨는 처음부터 단순 절도범들과 달랐다. 추가 범행사실을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는 게 단순 절도범들의 행태인데, 그는 다른 범행사실도 술술 털어놓기 시작했다.

애초 김씨를 가스배관을 통해 고층아파트에 침입하는 단순털이범 쯤으로 여겼던 형사들이 긴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게다가 김씨로부터 압수한 물품 중에는 강남 일대와 이촌동 소재 은행지점의 고무인이 찍힌 고액권 수표들도 포함돼 있는 게 아닌가. 조사가 거듭될수록 김씨의 행각은 당초 예상을 뛰어넘었다. 범행대상을 부촌으로 소문난 강남지역과 한남동, 이촌동 일대의 고급아파트로 고른 것도 그렇고, 대담한 범행수법도 혀를 내둘리게 만들었다.

그가 털어놓는 부유층 아파트의 살림살이는 보통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신창원이 그랬던 것 처럼 그도 들어가 본 한남동, 이촌동 일대 고급아파트의 내부풍경을 자세히 묘사했다.


“고가의 미술품 가득, 귀찮아서 현금만”

“그 일대 웬만한 부잣집에는 대부분 벽금고가 설치돼 있었다. 어떤 집은 값비싼 그림으로, 어떤 집은 액자로 가려놓았지만 내 눈을 속이지는 못했다. 대형 벽금고를 열지는 못했지만 바깥에만 있어도 돈 냄새가 풀풀 풍겨났다.동부이촌동의 H아파트 한 곳에 들어가니 아파트 거실을 자연산 돌과 나무 등으로 인공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첫 눈에도 화려해 보였다. 또 장롱 속을 뒤지니 빳빳한 현금과 달러 뭉치가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고위 관료의 집으로 보이는 한 아파트에서는 고가의 그림과 미술품이 가득했지만 훔치기도 힘들고 처분도 귀찮아 현금과 귀금속만 갖고 나왔다. 어느 집을 가도 이탈리아제 대리석과 외제 가구로 집안을 장식해 놓는 것이 기본이었다.”

김씨는 현장검증 도중 일부 언론에 유명연예인들의 집도 털었다고 진술해 관심을 끌었다. 현장검증 도중 모 기자가 “범행 대상 중에 유명인사의 집도 있느냐”고 끈질지게 묻자 김씨는 불쑥 “2001년 6월 쯤 동부이촌동에 사는 인기탤런트 L씨의 집을 털었다”고 말한 것. 그는 2시간쯤 뒤에는 “영화배우 S, J씨의 집도 털었다”고 추가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처음부터 연예인의 집을 노리고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면서 “L씨의 경우 거실에 L씨의 대형사진이 걸려 있었고 잠든 L씨를 보고 나왔다”고 떠벌렸다. 김씨는 “S씨와 J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는 모습까지 봤다”며 “이들외에도 연예인들 집 여러 곳을 털었지만 더 이상 말할 수 없다”고 말문을 닫았다.

김씨는 그러나 경찰이 연예인 관련 사실에 대한 확인 심문에 나서자 “영웅심리에서 기자들에게 (연예인 집을 털었다고) 그랬지만…”이라고 범행사실을 발뺌하고 나섰다.

청량리경찰서 형사과 강력1반측은 “김씨가 11일 ‘톱스타 L,S,J씨의 집을 털었다’고 주장해 이 부분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며 “같이 현장에 가보자고 했더니 갑자기 ‘그런 일 없다’고 말을 바꿨다”고 밝혔다. 그는 검거 7일째인 15일까지도 톱스타의 집에 침입한 부분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창원은 나의 우상”

김씨는 오랫동안 ‘제2의 신창원’을 꿈꿔왔다고 한다. 그가 신창원을 얼마나 흠모(?)해 왔는지는 김씨가 “신창원이 털었던 한남동 일대 부촌지역을 ‘답사’하는 심정으로 돌아다녔다”고 진술한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고아원 출신인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릴 때부터 한때 ‘의적’으로까지 미화(美化)됐던 신창원을 동경해 왔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는 다행히 신의 신출귀몰했던 절도 기술을 모방하는 수준에서 그쳤을 뿐, 인질강도와 같은 악랄한 범죄 수법은 피했던 것으로 경찰조사 결과 드러났다.

신창원은 2년 8개월에 걸친 도피기간 동안 전국을 무대로 상습적으로 140여건의 강ㆍ절도 행각을 벌였으며 흉기와 쇠사슬 등 범행도구를 배낭에 넣어 다니며 피해자의 손발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자물쇠로 채운 뒤 칼로 위협, 돈을 빼앗는 등 범죄수법이 잔인하고 악랄했었다. 게다가 부잣집들만 털었다는 진술과 달리 돈이 떨어지면 서민층 주거지역에서도 서슴없이 절도행각을 벌였었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신창원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책이나 그를 소재로 한 소설책들을 빠짐없이 구해다 읽었으며, 이를 통해 신창원의 범죄수법을 A~Z까지 모조리 따라 배웠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장취재를 나온 기자들에게 “고층아파트일수록 보안이 허술하다. 맨손으로 가스배관 타는 기술만 있으면 창문을 활짝 열어 놓은 고층아파트에 침입하기는 식은 죽 먹기다. 아파트 27층쯤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배관에 올라탄 채 집안을 쓱 한번 훑어보면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고 범죄기술을 자랑스레 설명하기도 했다.

그가 공범 없이 늘 혼자 범행을 한 것도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혼자 일을 해야 한다는 신창원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사람만 해치지 않으면 큰 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없다고 판단해 집안에 들어가서도 인기척이 나면 곧바로 빠져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신창원 처럼 신출귀몰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신고 꺼리는 부자들 범행대상 삼아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부자들은 도둑을 맞아도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신고를 기피하기 때문에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며 부유층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었고 “도둑을 맞아도 어떤 물품이 없어진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에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며 태연해 했다.

올해까지만 화려한 절도행각을 벌인 뒤 착실하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는 김씨는 3년간 100여차례에 걸친 절도 혐의로 쇠고랑을 찬 채 ‘신창원’과 마찬가지로 감방신세를 지게 됐다.

김명수 기자 lecero@hk.co.kr

입력시간 2003/06/19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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