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 음식이야기] '프렌치 키스'의 치즈와 와인

치즈, 와인 그리고 사랑은 발효돼야 '진정한 맛'

젊은 남녀가 우연히 만나 티격태격 싸운다. 싸우는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한 차례의 위기를 겪고 나서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에게 달려간다는 것이 보편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이다. 비슷비슷한 줄거리에 특징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두 남녀가 사랑을 엮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흥미있고 기발한지가 관건이 된다.

맥 라이언과 케빈 클라인이 주연한 ‘프렌치 키스’는 바로 이 과정에 충실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 여인에게 넘어간 약혼자를 찾아 파리로 날아간 케이트(맥 라이언). 가뜩이나 마음이 상해 있는데 옆자리에선 건달같은 프랑스 남자가 집적거려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그런데 이 남자, 뤼크(케빈 클라인)가 접근한 목적은 훔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세관에서 들키지 않는 데 있었다.

그는 케이트의 가방에 몰래 목걸이를 넣었다가 되찾으려 했으나 공항에서 두 사람은 엇갈리고, 일은 자꾸 꼬여만 간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영화의 진짜 재미는 북미 대륙을 벗어나본 적이 없는 케이트가 겪는 문화적 충돌에 있다.


기차식당에서 맛본 치즈에 감탄

약혼자가 새로운 애인과 칸느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케이트는 그를 뒤쫓아 기차를 탄다. 목걸이를 찾아 헤매던 뤼크도 그녀와 동행하게 된다. 그제서야 조금 여유가 생긴 케이트는 창밖으로 보이는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고, 기차 식당에서 처음 맛보는 프랑스 치즈에 또 한번 감탄한다. 약혼자를 되찾는다는 목적을 잠시 잊은 채 여행에서 만나는 새로운 문화에 도취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도취가 너무 지나쳤던 탓일까? 케이트는 갑작스러운 생리현상(?) 때문에 하필이면 뤼크의 고향인 프로방스의 시골 마을에 내리게 된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뤼크의 고향집에 가게 된 두 사람. 뤼크는 이 곳에서 케이트에게 그 고장의 와인 한잔을 권하는데….

와인 맛을 잘 모른다는 케이트에게 그는 “와인도 사람과 같다”며 여러 가지 향신료를 보여주며 향을 맡아 보라고 한다. 케이트는 마침내 다시 와인 맛을 보고는 “건포도 맛이고… 라벤더 맛이 나요” 라고 말한다. 그리고 와인을 계기로 두 사람 사이에는 조금씩 사랑이 싹튼다.

프랑스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치즈와 와인이지만 처음부터 맛있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치즈는 냄새가 너무 강하고 와인은 떨떠름해서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단시간에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케이트가 치즈와 와인 맛을 금방 배우는 것으로 나왔지만 사실 그 맛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프랑스의 치즈와 와인은 종류가 워낙 방대한데다 지역마다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어 하나하나 설명하기가 불가능하지만 대표적인 몇 종류만 살펴본다면 다음과 같다.

치즈의 경우 부드럽고 냄새가 적은 크림치즈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우리나라 수입 식품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보르생(Boursin)’치즈는 마늘, 후추, 연어향 등이 가미되어 빵에 발라 먹기에 적당하다.

염소젖으로 만든 ‘스와뇽 블랑(Soignon Blanc)’처럼 시큼한 맛이 나는 프레시 치즈도 추천할 만 하다. 스위스의 에멘탈 치즈와 비슷한 ‘콩테(Comte)’나 ‘보포르(Beaufort)’도 비교적 무난하다. 고무 지우개를 씹는 듯한 딱딱한 질감이지만 자극적이지 않고 호두향이 나면서 달콤한 뒷맛이 감돈다.

그러나 진정한 치즈 맛을 알고 싶다면 ‘카망베르(Camembert)’를 먹어 보아야 한다. 흰 곰팡이가 덮여 있는 외피 밑으로 상아색의 부드러운 속살이 나온다. 버섯향과 비슷한 독특한 향이 나는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한두번 맛을 들이면 이것만 찾게 된다. 실온에서 10분이상 지나 속이 걸죽하게 녹아내릴 때 먹는 것이 맛있다.

이보다 더 강한 맛으로는 푸른 곰팡이가 대리석 무늬를 이루고 있는 ‘록포르’가 있다. 처음 먹을 때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풍미가 강하지만 치즈 매니아라면 곧 중독되는 치즈이다.


다양한 와인의 맛, 화이트와인부터 음미

‘포도주’라는 번역 때문인지 와인 하면 가정에서 담그는 ‘포도 리큐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와인에는 포도 향 이외에도 여러가지 복잡한 향이 어우러져 있다. 영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와인 맛을 결정짓는 것은 그 지방의 토양과 공기에만 있는 독특한 향이다. 같은 방법으로 담근 와인인데도 어느 지방산이냐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붉은 빛이 아름다운 레드와인은 정작 마셔보면 그 떨떠름한 맛에 실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포도 껍질의 탄닌 성분 때문이다. 가볍고 단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부터 맛보는 것이 와인 맛을 배워가는 요령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한 화이트 와인으로는 드라이한 맛의 ‘샤블리(Chablis)’, 반 건조된 포도로 만드는 달콤한 ‘소테른(Sauternes)’이 있다. 11월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는 김치로 따지자면 겉절이와 같은 것으로 과일 향이 살아 있어 산뜻한 풍미를 준다.

가벼운 와인 맛에 익숙해지면 이제 본격적으로 레드와인 맛을 즐길 차례이다. 보르도 산의 ‘뱅 보르도 루주(Vin Bordeaux Rouge: 보르도산 레드 와인)’는 비교적 담백하며, 버건디 와인으로 알려져 있는 ‘부르고뉴(Bourgogne)’산 레드와인은 색감과 맛 모두 진하고 감칠맛이 난다.

레스토랑이나 주류매장에서 와인을 고를 때는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처음부터 무작정 비싸거나 유명한 와인을 찾지 말라는 것. 값을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진귀한 와인은 소수의 매니아들을 위해 생산되는 것이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와인은 즐기기 위해 마시는 것이지 세련되어 보이기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값싼 테이블 와인이라도 본인에게 맞으면 얼마든지 좋은 와인이 될 수 있다.


사랑도 길들여져야 깊은 맛

치즈와 와인의 공통점은? 둘 다 발효식품이라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발효식품은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사랑을 받지만 외국인은 거부감을 쉽게 일으킨다.

그러나 외국인도 몇 번 먹어보다 그 묘미를 알게 되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빠지게 되는 것이 발효식품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케이트가 치즈와 와인 맛에 이끌리는 동시에 뤼크라는 남자에게 끌리는 것처럼 한 나라의 발효 식품에 맛을 들인다는 것은 곧 그 나라의 문화에 매력을 느낀다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인간관계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고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두 사람이 이질감 때문에 충돌하다가 결국은 상대방의 삶의 방식에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뻔한 스토리’의 로맨틱 코미디에 많은 이들이 가슴 설레는 이유도 ‘사랑이 발효되는’ 과정이 주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 때문이 아닐까?

정세진 맛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6/1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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