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전쟁을 지배한 과학, 그 어두운 공생관계


■ 전쟁과 과학, 그 야합의 역사

어니스트 볼크먼 지음/석기용 옮김/이마고 펴냄.

르네상스 시대의 대화가이면서 천재 과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몇 세기 뒤에나 나올 법한 각종 신무기들을 스케치하면서 그 내용을 거꾸로 적었다. 자신이 생각해 낸 무기가 사람들에게 알려져 실용화할 것을 두려워 한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의지만으로 전쟁과 과학의 결탁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실제 전쟁과 과학은 그가 살았던 때 보다 훨씬 이전의 시대부터 야합했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둘의 공생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사실을 지은이는 풍부한 역사적 지식과 인문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설득력있게 주장하고 있다. 지은이는 고대문명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주요한 전쟁에서의 과학자의 역할, 지배자의 과학 정책, 전쟁에 사용된 무기 등이 전쟁의 승패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하고있다.

로마 군단은 유대인 열심당원들이 농성하던 난공불락의 요새 마사다를 그리스 수학자들의 머리를 빌려 함락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과학자들의 군사연구 및 개발을 후원, 군함에 설치한 함상 파성퇴, 돌멩이를 속사로 발사하는 파라볼리스 등 신병기를 개발해 세계를 정복했다. 나폴레옹은 파리 공과대학을 설립해 군사공학자들이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해 무기를 개발하도록 독려했다.

20세기 초 세균학을 비롯한 의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전염병이나 각종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인성을 저버린 나치와 일본군의 생체실험이 결과적으로 크게 기여한 게 사실이다.

우주여행 시대를 연 로케트 개발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은 바로 나치 전범이요, 미국은 종전 후 그 전범을 빼돌려 우주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오늘날 인류가 누리고 있는 과학문명은 전쟁과 과학이 야합해 낳은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과연 과학이 일방적으로 전쟁에 봉사해 왔는가. 지은이는 아니라고 말한다. 전쟁이 과학의 힘을 빌려 흉포화했을 뿐 아니라, 과학 자체도 전쟁에 힘입어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지은이의 주장은 군사기술 개발에 종사하는 현대의 과학과 뿐 아니라 비군사적이고 평화적인 목적으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과학자라 할 지라도 자신들이 하고 있는 연구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2003/06/24 14:39


최성욱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