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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원 진실게임] 150억원 어느 주머니로?

비자금 태풍, 정치권 유입 확인땐 엄청난 파장 예고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박지원 청와대 전 비서실장도 결국 낙엽이 돼 떨어졌다. 지난 정권시절 ‘대통령(代統領)’이란 별칭 까지 얻으며 당정 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그였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 수의(囚衣)로 옷을 갈아입게 됐다.

그의 구속 사유는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현대 측으로부터 150억원을 받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대북 송금 의혹사건을 수사 중인 송두환 특별검사팀에 따르면 박 전 실장이 정몽헌 현대 아산이사회 회장의 지시를 받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서 2000년 4월 중순경 금강산 여객선 카지노 및 면세점 설치와 대북사업 전반에 대한 협조 명목 등으로 1억원 권 양도성 예금증서(CD) 150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물론 박 전 실장은 혐의 내용을 완강히 부인하며 이 전 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놓은 상태. 박 전 실장은 여전히 “돈을 요구했다면 정 회장에게 직접 하지 왜 제3자를 통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은밀한 돈을 잘 알지도 못하는 이 전 회장에게 받는다는 것도 상식 밖의 일”이라고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누구 지시인데 다른 짓을 했겠느냐”고 맞서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특검이나 검찰이 150억원의 향방에 대한 정확한 경로를 밝혀내는 게 가장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특검연장 거부로 정국 급랭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6월23일 대북송금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팀의 수사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했다. 대북 의혹사건과 관련해 거의 수사가 완결된 상황에서 새롭게 불거진 150억원 수수 의혹사건은 법률적, 정치적으로 별개사건이라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는 것.

노 대통령은 150억원 관련 사안은 검찰에서 수사할지 따로 특검을 도입해 수사할 지 국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여야 협의 과정을 지켜본 뒤 비자금 150억원 수수 의혹에 대해 검찰이나 별도 특검에 맡기겠다는 뜻을 피력한 것이다.

이 같은 소식에 민주당은 쌍수를 들어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한나라당은 당연히 펄펄 뛰었다. 박희태 대표는 “현 정부의 단 하나 업적이라면 특검제를 실현한 것인데 노 대통령이 이마저 허물어뜨려 독선과 독주, 반민주의 길로 들어섰다”면서 “당력을 결집해 총체적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특검수사는 이제 막 본체에 접근하고 있는 상태인데 이를 중단시키는 것이 정치인 이전에 ‘법률가 노무현’의 법적 양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면서 발로는 국민을 짓밟는 것이 노 대통령의 실체인지 대답하라”고 강하게 압박했다.

노 대통령의 특검연장 거부로 여야는 또다시 극도의 긴장관계로 되돌아갔다. 한나라당은 새로운 대표체제가 출범하면 강성 야당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재차 특검을 단단히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신ㆍ구 주류의 갈등에 휩싸인 민주당이 과연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치자금? 대북로비자금? 개인 착복?

박 전 실장에게 건너갔다는 150억원은 1만원권 지폐 150만장이고 100만원 묶음으로만 세어도 1만5,000다발이다. 사과박스에 담으면 1상자당 3억원 가량이 들어간다고 할 때 박스 50개가 필요하고 이는 2.5톤 트럭 1대분의 양이다.

이 많은 금액이 과연 어떻게 쓰여졌을까 하는 점에 의문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등 정계로 흘러 들어간 사실이 밝혀질 경우 엄청난 사정 칼바람이 일 수도 있고, 자칫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과의 연관성이 드러난다면 상상을 초월한 후폭풍이 불어 올 수도 있다.

한나라당 이규택 총무는 “그 큰 거액이 박지원 전 문광부 장관에게 건네진 뒤 정치권으로 왔는지 하늘로 증발했는지 땅속에 묻혔는지 조사하기 위해서는 한달도 모자란다”고 특검 기한의 연장을 주장하기도 했다. 박종희 대변인도 “언젠가 노무현 대통령도 ‘원도 한도 없이 썼다’고 고백한 총선 자금이 이런 식으로 부도덕하게 모은 돈임이 드러날 까봐 청와대와 민주당이 특검 수사를 덮으려고 한다”고 압박했다.

박 전 실장에게 돈이 들어 왔다면 일단 크게 세 종류로 나뉘어 생각할 수 있다.

먼저 통상적인 집권 여당을 위한 정치자금에 무게를 두어보자. 민주당 등 정계로 흘러 들어갔다고 할 때 총선이 2000년 4월이었고 문제의 150억원이 인출된 시점은 그 이후이기 때문에 총선자금이라고 보기에는 아귀가 맞지 않는다.

또 당시 민주당은 서영훈 대표-김옥두 총장-권노갑 고문-김봉호 당 후원회장 식의 라인으로 짜여져 있었다. 굳이 박 전 실장이 당의 선거 문제에까지 끼어 들어 자금을 쓰면서 감놔라 배놔라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또 다음 선거는 2002년 6월 지방선거가 있었지만 시기적으로 기간이 너무 멀다.

두번째는 ‘대통령(代統領)’이란 닉 네임에 걸맞도록 DJ를 대신한 통치자금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국내 문제보다는 대북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과 제 3세계 등을 오가며 뿌린 로비자금으로 쓰였을 수 있다.

DJ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실무 총책은 임동원 국정원장과 박 전 실장 등 ‘투톱 체제’였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진 박 전 실장 입장에서 볼 때 북측의 고위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빈손’으로 만나고 헤어졌을 리가 없다.

만날 때 마다 큼직한 ‘선물’을 안겨줬어야 했고, 그래야 김 위원장에게 한마디라도 거들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대개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큰 일이 성사되려면 공식 금액에 준하는 ‘뒷돈’도 필요하다는 건 상식이다. 특히 상대가 아직도 구 소비예트 체제를 따르고 있는 북한 아닌가? 따라서 북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두번째 추측이다.

마지막으로는 개인 착복 가능성이다. 박 전 실장은 2000년 총선 불출마 이후 2002년 지방선거에서 전남지사 출마설이 한때 유력하게 거론됐었다. 지역구인 경기 부천은 96년 15대 총선의 낙선이후 관리가 어려워진 상황에서 진도가 고향인 점을 감안하면 전남지사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비단 선거자금 비축을 위한 금액이 아니더라도 ‘정계의 마당발’인 박 전 실장의 활동 반경을 감안한다면 그만한 금액은 각종 경비로도 활용될 수 있다.

물론 세가지 추론이 모두 한 데 어우러진 상태에서 큰 금액이 쪼개져 사용됐을 수 있고 일부 남아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박 전 실장이나 김씨의 가ㆍ차명 계좌에 고스란히 숨쉬고 있을 가능성도 상존한다. 박 전 실장 입장에서 보면 DJ정권 이후 ‘홀로서기’를 통해 내일을 기약해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또는 박 전 실장 이상의 선에서 모종의 용도를 위해 은닉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요청 금액이 100억도, 200억도 아닌 150억?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일개 정치인에 대한 후원금을 낼 때 10만원이나 20만원, 많으면 50만원이나 100만원을 내지 굳이 150만원을 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번에 제기된 금액이 150억원이다.

물론 양측의 협상 과정에서 조정됐을 수는 있지만 ‘150’이란 숫자가 걸린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했듯이 150억원 이외에 추가로 수백억원이 오갔다면 모를까 단위가 딱 떨어지지 않는 금액만 보면 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그리고 통상 기업들이 커다란 프로젝트를 위해 제공되는 뇌물 수준은 많아야 10억~20억원 대이다. 아무리 ‘대통령(代統領)’이라고 해도 금액이 너무 큰 편이다. 물론 규모가 어마어마한 대북사업이 걸려 있고 전체 그룹의 명운이 좌우되는 상황이었으니 그 정도는 ‘새발의 피’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번에 오가는 뇌물치곤 상상을 초월한 금액이다.

그렇다면 박 전 실장의 주장대로 이 전 회장의 배달사고 가능성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이 경우 이 전 회장과 김씨가 정 회장의 돈을 가로챈 것이 되는데 정 회장이 박 전 실장과 어떤 석상이라도 접촉할 기회가 많았을 것을 감안하면 금방 탄로날 일을 과연 했겠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한마디로 150억원의 미스터리라 할만하다

특검은 이 미스터리에 대해 명확한 답변은 주지 못한 채 수사를 마무리하게 됐다. 송두환 특별검사팀은 “150억원이 쪼개져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검찰이 할일”이라고 공을 넘겼다. 하지만 강금실 법무장관 등 현 검찰은 이 문제에 대한 수사에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검찰이 또다시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릴 뿐 아니라 어떤 결과물을 내놓더라도 국민이 액면 그대로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에서다.

박 전 실장 측은 “150억원이든 200억원이든 우리와 전혀 상관없다. 돈이 왔는가. 아니지 않는가. 왜 우리 말은 안 믿나.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오직 이익치씨 진술 하나뿐 아닌가”라고 강하게 나오고 있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2003/06/2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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