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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원 진실게임] CD에 거액 뇌물을 담아?…

양도성 예금증서… 돈세탁 용이한 무기명 상품, 검은돈으로 애용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현대측으로부터 받았다는 150억원은 액수에서부터 파격적이다. 정치인에게 건네지는 뇌물이 통상 1억~2억원, 많아야 10억원을 넘지 않는데 한번에 150억원을 뇌물로 줬다니 입이 떡 벌어질 일이다. 그렇다면 150억원이라는 거액이 어떻게 오고 갈 수 있었을까.

뇌물이라면 수표로 건넬 수도, 대형 트럭에 현금을 가득 실어 건넬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택한 수단이 양도성 예금증서(CD).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그런 거액의 뇌물을 주고 받기에는 CD가 가장 제 격이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과 상자에서 BW까지

뇌물 수단의 고전은 사과 상자다. 1997년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이 애용했다고 밝히면서 ‘히트 상품’ 반열에 올랐다. 사과 상자의 가장 큰 장점은 1만원 짜리 지폐가 2억원까지 들어간다는 점.

쌍용그룹도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돈세탁해 수십 개의 사과 상장에 담아 회사 창고에 보관했다가 압류되기도 했다. 하지만 상자에 돈을 가득 채울 경우 25㎏이 넘는 무게가 만만찮은 데다 주변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쉽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

액수는 절반(1억원 가량)에 불과하지만 007 가방이나 골프 가방 등 세련된 수단이 이후에 더 각광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5,000만원 미만의 소액 뇌물을 전달할 때는 케이크 상자나 양주 상자 등도 종종 이용됐다.

현금 뇌물은 가장 안전한 동시에 가장 무식한(?) 방식이다. 거액 뇌물일 경우 엄두를 내기조차 힘들다. 최근엔 그래서 차명 계좌를 활용해 돈을 건네거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 등을 싸게 배정해 준 뒤 차익을 챙기도록 해주는 수법 등이 자주 눈에 띈다.


왜 CD를 택했을까

이번에 사용됐다는 양도성 CD는 ‘무기명 상품’이라는 점에서 뇌물 수단으로 종종 선호된다. 양도성 CD는 은행 정기예금으로 해당 증서를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한 상품. 금융기관이 처음 발행한 것을 사거나 만기에 돈을 찾을 때는 투자자의 실명을 밝혀야 하지만 중간 유통 과정에서는 배서를 하지 않아도 된다.

즉,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사채 시장에서 CD를 사들여 뇌물로 건네고 뇌물 수수자는 이를 다시 사채 시장에서 팔아 현금화할 경우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액면도 최저 한도(500만원)만 있을 뿐 최고 한도는 없어 거액 거래가 가능하다.

그래서 멀게는 전두환ㆍ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부터 가깝게는 월드컵 휘장사업권 로비 의혹 사건까지 거액의 검은 돈이 있는 곳에 CD는 빠짐없이 등장한다. 탈주범 신창원은 99년 검거 당시 “한 강남 갑부의 빌라에 들어갔더니 금고 안에 5,000만원 짜리 CD 160장, 80억원 어치가 있더라”고 밝혀 충격을 주기도 했다.

박 전 실장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간에 오고 갔다는 양도성 CD도 비슷한 방식. 특검은 박 전 실장이 1억원 짜리 CD 150장을 받아 10여명의 사채 업자를 통해 현금화했다고 밝혔다.

명동 한 사채업자는 “거액의 뇌물을 전달하는데 최고의 수단은 증권금융채 등 이른바 ‘묻지마 채권’이지만 물량을 잡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통상 돈 세탁에 이용되는 CD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5,000만원권이나 1억원권이 이용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채업자는 “선거철이나 연말이 되면 조그만 중소기업들도 분식 회계를 위해 30억~40억원씩 CD를 사고 팔기 때문에 소리 소문없이 주고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CD라고 허점이 없을 리 없다. 묻지마 채권이나 현금 등과는 달리 만기 배서인에서부터 역추적해 들어가면 중간 유통자들을 대부분 파악할 수 있다. 박 전 실장은 구속되는 순간까지 뇌물 수수 사실을 부인했다. 뇌물을 줬다는 이 전 회장의 말이 맞는지, 아니면 박 전 실장의 말이 맞는지 조만간 드러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3/06/2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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