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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 카메라맨 김기배


"죽도록 욕도 먹지만 이만한 직업 없어요"


SBS 아트텍 소속 학구파, 방송 18년 베테

그의 말에 의하면 이건 ‘놀면서 돈 버는 직업’이다. 얼마 전 개구쟁이 아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을 때도 ‘그럼~, 아빠 직업 말고는 잘 없는데…’라고 답변했던 사람이다. 농담을 위장한 진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만 믿고 진짜 놀기 위해 이 직업을 택했다가는 다친다. 카메라맨 김기배(45)씨는 올해로 방송 18년째, SBS 아트텍에 소속된 김씨의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카메라맨으로서는 최초로 박사과정을 수료한 학구파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1985년 MBC 카메라맨으로 입사해 6년 뒤 SBS로 이적, 경희대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으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몇주 전에는 카메라맨 출신으로는 이례적으로 경영지원팀에 긴급 영입됐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다. 수년째 SBS 아카데미와 한양대, 광운대 등에서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교수이자 현장 베테랑으로 지금도 바쁘게 후예들을 양성하고 있다. 드라마 ‘옥이이모’, 시사고발물 ‘그것이 알고싶다’, 현장중계 보도물 ‘5공 청문회’ 등을 비롯해 최근에는 ‘한밤의 TV연예’ 등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김씨와 나눈 이야기중 일부를 옮긴다. 왜 궂은 얘기만 골랐냐고 항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직업이 얼마나 멋져보이는지는 TV에 빠진 여러분이 더 잘 알지 않는가.


드라마 NG 곤혹스러워


- 일만으로도 힘들텐데 어떻게 그 사이 석ㆍ박사 과정을 밟았나?

▲ 우리 직업이 좋은 이유중 하나가 그것이다. 이 일은 현장에서만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면 그걸로 끝이다. 집까지 일을 싸들고 갈 필요도 없고, 스케줄이 안정적이기 때문에 근무외 시간이나 휴일을 잘 활용하면 얼마든지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 내 경우에도 업무에 전연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개인 시간을 쪼개 공부에 투자했다.


- 모든 카메라맨이 다 시간적으로 넉넉하다는 말인가?

▲ 경우에 따라 조금 다르기는 하다. 카메라중에서도 실내에서 일하는 스튜디오 카메라나 중계차팀은 어느 정도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편이고, 반면에 주로 야외촬영 때 직접 카메라를 메고 찍는 야외 ENG카메라쪽은 출장도 잦고 작업시간도 불규칙한데다 체력적으로도 더 힘든 편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는데 대부분 본인의 적성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내 경우 스튜디오쪽에 오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됐다. 그전에는 각 분야를 고루 다 거쳤다.


- 카메라가 꽤 무거워 보인다. 몇 킬로그램쯤 되나?

▲ 18~25Kg 사이다. ENG촬영을 나간다고 하면 대략 20kg짜리 쌀 포대를 계속 어깨에 메고 다닌다고 보면 된다.


- 그 무거운 걸 메고 계속 일하다 보면 근육통도 만만치않겠다. 직업병 같은 건 없나?

▲ 사실 지금도 나는 오른쪽 어깨를 남들처럼 쉽게 돌리지를 못한다. ENG촬영을 안 한지 꽤 오래됐는데도 그렇다. ENG를 할 때 X-레이를 찍어보면 등뼈가 오른쪽으로 굽어 있다.


- 비실비실한 사람 같으면 카메라만으로도 벅차겠다.

▲ 그래서 애초에 면접시험 때부터 키가 너무 작거나 약골인 지원자는 합격하기가 어렵다. 장비도 장비지만 취재현장에서 몸싸움을 벌여야 되는 경우도 많은데 덩치가 작은 사람은 이래저래 불리하기 때문이다. 활동중인 여자 카메라맨, 즉 카메라우먼들만 해도 여리거나 가냘픈 스타일은 아니다.


- 드라마 촬영쪽은 그래도 괜찮지 않은가? 그냥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시켜놓고 찍는거니까.

▲ 드라마라고 쉬운 게 아니다. 한번 촬영에 들어가면 아침 10시부터 시작해서 다음날 새벽 5~6시가 돼야 보통 끝난다. 거의 20시간 가까이 계속 서 있다고 한번 생각해보라. 기차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몇번을 왕복할 시간이다. 새벽에 연기자들이 NG를 내면 카메라맨들이 짜증을 낸다는 게, 세상에 처음부터 짜증을 내는 사람은 없다.

저녁 먹을 때까지는 그래도 견딜만한데 자정이 넘어가면 한계가 오기 시작한다. 연기자들은 번갈아가며 잠깐씩 찍고 바꾸기라도 하지만 우린 그 시간 동안 계속 서서 가는 거다. 그 상황에서 자꾸 NG가 나고 그러면 짜증이 안 날 수가 없다.


- 촬영 중 사고를 당하는 일도 있나?

▲ 심지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전에 MBC 후배였던 김종찬씨는 아이슬란드에 촬영갔다가 암벽에 오르던 중 떨어져서 사망했고, 드라마 ‘제4공화국’을 찍다가 음주운전 차량이 촬영장을 덮쳐서 카메라맨이 죽는 사고도 있었다. 조수현씨라고, 배우 조재현씨의 형이다.

또 수중촬영을 하다가 못 나와서 변을 당한 카메라맨도 있고, 트럭 위에 설치한 크레인을 타고 찍다가 크레인이 흔들리는 바람에 떨어져 팔이 부러진 사람, 디스크에 걸린 사람 등 촬영중 카메라맨이 부상당하는 일은 아주 많다. 내 경우에도 옛날에 철원의 한 송신소 개통 기념행사 때 4단짜리 높이의 아주 높은 받침대 위에서 촬영을 하다가 인파에 받침대가 흔들려 추락사고를 당할 뻔한 적이 있다. 다른 촬영 때 실제로 떨어진 일도 있다.


- 경력을 보니까 좀 의아한 게 있다. 뉴스에도 참여를 했던데 뉴스 제작은 보도 카메라기자가 하는 일 아닌가?

▲ 그게 흔히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중 하나다. 보도카메라는 녹화 개념밖에 없다. 뉴스에 나가는 거라도 일단 생방송, 생중계라는 말이 붙어있는 건 전부 영상제작쪽의 카메라맨들이 나가서 맡는다. 내 경우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 재판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 생방송 등에 나갔었다.


- 생방송으로 나오는 참사 현장 뉴스도 그럼 카메라맨들이 찍은 것인가? 사실 그런 방송을 볼 때면 뭣보다 비통한 유가족들에게 마이크랑 카메라를 대는 모습이 인간적으로 잔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실제로 촬영하는 입장이란 어떤건가? ▲ 우리도 그 일이 가장 괴롭고 곤란하다. 어떨 땐 유족들로부터 나가라는 고함을 듣기도 하고, 취재하는 입장에서도 참 힘들고 우울하다. 이런 촬영만은 더 안 맡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시청률이라는 발목, 또 보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좋은 일로 가면 우리도 신나는 거고, 나쁜 일로 가면 우리도 같이 우울한 거다.


가슴 찡한 보람


- 좋은 일이라면?

▲ 예를 들면 똑같은 중계방송이라도 수재민돕기 방송이라든가 특히 몇해 전 사이비 종교를 믿는 부모님 때문에 치료를 못 받고 사경을 헤매던 신애라는 아이를 살리기 위한 현지 모금방송을 할 때는 나도 이 생명을 살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구나, 가슴 찡한 보람을 느꼈다. 그럴 때가 참 보람 있다.


- 현장마다 언론사간의 취재경쟁도 상당히 치열할텐데, 그 사이를 뚫고 원하는 그림을 잡아내는 비결이 따로 있나?

▲ 요즘은 워낙 방송사가 많아서 아예 포토라인같이 어느 정도 교통정리가 돼 있지만, 옛날에 MBC와 KBS밖에 없을 때는 양 방송사가 ‘피 튀기는’ 전쟁을 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럴 때 제일 중요한 건 가장 포인트가 되는 자리를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것이다. 이것도 요령인데, 1990년 서울에서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린 적이 있다.

중계방송을 하러 그 현장에 갔는데 방송사, 신문사 할 것 없이 취재진이 잔뜩 몰려서 처음에는 다들 한쪽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는 남북한 대표들을 찍고 있었다. 나도 그걸 찍으면서 한편으로는 카메라 보조원을 시켜 미리 단상쪽에 가서 단상 앞 중간 자리에 삼각대를 뻗쳐놓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얼른 찍고 나서 단상 앞으로 뛰어갔더니 남북한 대표들이 악수를 마치고 곧 단상위로 올라오는 거였다.

다른 촬영팀들은 다시 자리를 옮기느라 난리법석이었지만, 나는 아주 쉽게 촬영을 했다. 그것도 단상의 정면 중앙에서. 방송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왔더니 ‘너 진짜 잘 했다’고 들어서자마자 칭찬이 마구 쏟아졌다. 그외에도 운이 좋아선지 내 경우 그동안 실수하거나 실패한 일이 거의 없다.


- 성공하면 영웅대접이겠지만, 만약 실패하고 오면 어떻게 되나? 즉 남들은 다 찍었는데 혼자 못 찍고 회사로 돌아왔을 때 결과가 어떻게 다른가?

▲ 한마디로 바보되는 거다. 제일 심한 욕? ‘야이~ 병신아!’ 소리도 마구 날라온다. 일단 현장에 보내지면 이유가 없다. 무조건 임무를 완성하고 와야 한다. 1986년 도재승 서기관이 베이루트에서 피랍됐다가 돌아왔을 때, 김포공항에서 KBS팀은 제대로 알고 도 서기관이 들어오는 장면을 찍었는데 MBC팀은 엉뚱한 출구에서 기다리다가 놓친 일이 있다. 그 일로 해당 카메라맨은 죽도록 욕을 얻어먹고 시말서까지 써야 했다. 한번 잘못했다가 혼 난 사람들이 여럿 있다.


PD와는 서로 전문성 인정해줘


- PD와 호흡을 맞추는 부분은 어떤가? 촬영을 하면서 서로 의견이 달라 충돌이 생기거나 하는 경우는 없나? ▲ 그럴 때도 있다. 특히 야외 ENG 촬영에서는 PD와 카메라맨이 심하게 싸우는 경우도 가끔 있다. 하지만 의견충돌이 생기더라도 대부분 PD의 생각을 존중해서 하자는 대로 해준다. 어차피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을 PD가 져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지난 경험으로 보면, 사실 카메라맨들과 충돌하면 결국은 PD가 손해인 것 같다. 어떤 카메라맨은 PD가 너무 일방적으로 나갈 경우 ‘알았다. 그럼 해달라는 대로만 해주겠다’ 하고서는 정말 요구하는 대로만 찍어주는 경우도 있다. 풀샷(전체 화면) 잡아달라면 딱 풀샷만 찍고 가만히 있고, 이것 찍어 달라면 그것 찍고 또 가만히 있고…. 그렇게 시키는 대로만 해주면 결국 답답한 건 PD다.

물론 그건 아주 예외적인 일이고, 요즘은 PD들도 카메라맨의 전문성을 인정해 주기 때문에 서로가 조화롭게 잘 맞춰가며 일하는 편이다. 내가 보기엔 일 때문이라기보다 개개인의 성격 차이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 공중파 3사중에 가장 봉급이 높다던데, 실제로 수입은 얼마나 되나?

▲ 우리 경우, 경력 20년 가까이 되는 차장급 이상 카메라맨들은 연봉 1억은 다 넘는다고 보면 된다. 나도 그 안에 포함된다. 다만 SBS의 현행 급여체계는 타사와 조금 다르게 돼 있다.

예를 들면 기본 보너스를 낮추는 대신 거기에다 회사가 벌어들인 수익을 일정비율로 배당하는 방식으로 바꾼 거다. 지난해 월드컵도 있었고 다행히 흑자가 났기 때문에 현재 수입이 높은 거지 만약 경기가 나빠진다면 우리가 타사보다 더 적게 받을 수도 있다.

밖에서는 사뭇 환상적인 이 직업도 마다하고 다른 사업을 해보겠다며 자진하차했던 카메라맨들도 김씨의 과거 동료들 중에 몇몇 있었다. 하지만 얼마 뒤 다 돌아왔다. ‘나가 보니 카메라맨만한 직업이 없더라’는 꼬리말을 달고서.

SBS의 경우 거의 6년째 신입 카메라맨을 뽑지 않고 있다. 평균 연령이 비교적 낮아 정년퇴직자가 없는 이유도 있지만, 일단 들어오면 아무도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왜? 보기에 따라서는 스트레스일 수도, 유희일 수도 있는 김씨의 대답 곳곳에 이미 답이 있을테니 그 대답은 생략한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n@ddanmail.net

입력시간 2003/06/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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