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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학에게 듣는다] 도정일 경희대교수

행동하는 지성의 표상, 문화와 사회간 괴리에 일갈

1998년 그는 모신문 칼럼에 시간 강사들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대접을 감내하고 있는 지에 대해, 현실적인 강의료는 시간당 6만원은 돼야 한다고 썼다. 당시 그 글을 본 대학 총장들은 그를 가리켜 “미쳤다”며 손가락질 했다.

그리고 5년 뒤. 6월 9일자 ‘교수신문‘을 통해 그는 비슷한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당 1만3,000원~4만원의 강사료로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극빈의 삶을 강요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앞에서 목을 맬 수 밖에 없었던 어떤 시간 강사의 비극을 접했을 때,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한국 대학의 최대 수치’라는 제하의 그 칼럼은 시간 강사란 슬픔과 치욕의 직종이라며 우리 현실을 강한 논조로 비판했다. 자기 전공 분야가 아니면 언급을 삼가는 아카데미의 암묵적 관행으로부터 자유롭다. 예를 들면 이렇다.

“철저하게 할리우드식으로 만들어진 가장 미국적 오락 영화 ‘매트릭스2’를 두고 철학 운운하는 것은 배웠다는 자들의 기만입니다.” 적어도 문화라는 간판을 달고 나온다면 도 교수의 인식망을 피하기는 어렵다. 최근 신문지상을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는 영화 ‘매트릭스2’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매트릭스2’를 두고 그는 “할리우드의 똥” 아니면 “개떡 같은 영화”라고 몰아 부쳤다.

도정일 교수((62ㆍ경희대 영문과)는 그런 사람이다. 그의 명함에는 교수라는 직함 대신,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 운동 상임 대표’라고 씌어 있음을 본다. 그는 행동하는 지성이다. 1999년 문화연대가 돛을 올린 것과 동시에 시민 운동에 적극 참여하면서 문화와 사회의 관계를 모색해 오고 있는 그는 행보는 멈출 줄 모른다.


고전교육에 있어서 한국은 낙제점

5월 18일 그는 시인 이문재 등 문인들과 함께 수원에 내려 가 땀범벅이 된 두 사람을 맞았다. 북한산 관통 도로 건립 반대 농성 이후 교분을 쌓아 온 수경 스님이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며 삼보일배로 북진중이었다.

잠시 앉아 아픈 무릎을 달래고 있던 수경 스님에게 그는 “여기서 그만 두지 않으면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한다. 내일 나와 함께 병원 가자”며 의사로부터 들은 말을 전했다. “스님은 빙긋 웃고 말더군요.” 젊은 다큐 작가들이 작업중인‘삼보일배 다큐멘터리’가 완성되면 미국의 문화일방주의에 맞서 세계에 자랑할 만한 문화 콘텐츠가 되리라 전망한다.

최근, 사회를 첨예한 대립각으로 몰고 가고 있는 네이스(그는 “NEIS”라고 발음한다) 찬반 논란에 대해서도 그는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그 흔한 TV 토론이나 공청회 등을 통해 언제 한 번 ‘공론’이 형성된 적 있느냐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 판단의 합리성을 따르는 절차는 무시된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조중동이 나서서 전교조 대 교육부(또는 교총)의 싸움으로 몰고 가 버렸어요. 이슈는 다 날리고 감정만 부추겼죠.”

그를 사회로 끌어낸 것은 1990년대 들어 우후죽순격으로 한국땅에 범람하기 시작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광풍이었다. 예술, 문화, 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무원칙하게 증식돼 나가던 포스트모더니즘은 ‘좋은 사회’와 ‘좋은 인간’에 대한 굉장gks 위협이라는 믿음이었다. 그를 위해 우리 시대가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은 인프라 구축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두 차례 문민 정부 최대의 실책은 ‘대학경영론’ 등의 이름으로 대학에 시장 원칙을 도입한 것이죠. 얼빠진 총장들이 돈 안되면 그만 두라 하니, 철학과나 수학과는 항상 폐강 위기에 처해 있는 상태입니다.” 기초 학문이 이렇게 황폐화된 것은 현재 한국 중산층이 그들의 성년기를 결핍감 속에서 보내다 보니, 지금은 ‘내 자식만은…’이란 이기심으로 귀결됐다는 지적이다.

그는 편협한, 그러나 당연시되고 있는 이기심을 제어할 방책이 바로 고전 읽기에 있다고 본다. 고전은 이 첨단 문명에 영감을 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지론이다. 도 교수는 “고전 교육이 한국처럼 안 된 데는 없다”며 현재의 미국과 영국 문화에 고전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지를 예로 들었다.

미국 부시 정권의 신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이념이 도태한 곳이 시카고대 정치학과의 정치철학교수 레오 스트로스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 고대 철학자에서 시작해 홉스, 로크, 루소, 마키아벨리로 이어지는 강고한 보수주의가 스트로스 교수에 의해 부시 정권의 정치철학과 세계전략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학과가 저런 고전을 읽힙니까?”

또 21세기를 해리 포터의 시대로 만든 영국의 작가 조앤 롤링에게 도서관이 없었다면 과연 가능했겠느냐며 묻는다. 매우 가난했던 롤링에게 영국이란 국가가 제공하는 방대한 도서 콘텐츠가 공짜로 제공하는 사유의 공간이 없었다면 애초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이후 속속 등장한 세계적 판타지물은 그처럼 자국의 문학적 전통에 굳건히 뿌리 박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겐 무엇이 있나며 그는 추궁하듯 물었다.

“우리가 영감을 취하는 고전이라곤 ‘춘향전’이나 ‘바리공주’ 정도 아닙니까?” 이것은 우리의 고전이 박약해서가 아니라, 고전을 갖고 구축한 자료(archive)가 턱도 없이 빈약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임의의 한국인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를 물었을 때, 9할 이상이 대답을 못 하고 쩔쩔맬 것”이라며, 이를 고전 홀대의 대가로 보았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인에겐 자신들을 존재하게 한 힘, 가치, 약속이 뭔가를 잊어 버렸다는 점입니다.”


책읽는 사회 만들기운동에 전력

우리가 잃어버린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MBC TV의 ‘!(느낌표)’와 함께 어린이 도서관 짓기 운동(‘기적의 도서관’)을 펼쳐 오고 있다. 순천, 금산, 달서(대구), 서귀포, 청주, 태백, 울산. 진해, 제천 등 9곳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는 일이다.

정부의 관여 없이, 지난해 기부 받은 액수가 60억이다. “올해는 불경기라 40~50억 정도로 그칠 것 같아요.” 여기에 해당 지자체가 건립비의 30~50%를 제공하는, 전례 없는 민간 주도의 사회 간접 자본 확충 방식이다.


“책쓰기로 빨리 돌아가야 할텐데”

인터뷰는 이틀 걸쳐 진행돼야 했다. 첫째날인 6월 18일 대담에 열기가 한참 올라 가던 순간, 그의 핸드폰이 울렸다. 통화를 나누던 그는 다음날을 기약하고는 자신을 부르는 곳으로 달려 갔다. 다음날 가졌던 인터뷰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마친 선생은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곧 바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달려 갔다.

요즘 그가 힘을 쏟고 있는 어린이 도서관 건립과 관련한 실무적인 질문이 첫날 인터뷰를 막았던 것. “공공 어린이 도서관에 들일 물품들의 준비와 관련한 실제적인 일입니다.” 어린이용 가구, 아동 도서관 사서용 데스크 등의 준비에 관한 매우 구체적인 사안들이었다.

현재 한국에는 어린이 개개인을 위한 가구만 있지, 도서관용으로는 사실 하나도 없는 상태다. 고도산업사회로 진입한 21세기의 한국에서 어린이들은 가족 이기주의의 총아 또는 이윤 창출의 계기로서만 의미있을 뿐이라 해도다.

일복이 많고 벌려 놓은 일도 많은 그이지만 요즘은 자신이 꼭 필요한 일에만 집중하려 한다. 그것은 교수 정년이 3년밖에 남았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지난해 5월 암수술을 받은 그는 아직 회복기다.

최근 정부의 입각 제의를 받고 “능력 없다”며 정중히 거절했던 것은 이제 진정한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내밀한 요구의 발현이었던 셈이다. DJ 정권때는 고려대 최장집 교수의 부탁으로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회에 참여했고, 앞서 YS 정권때는 정부의 문화 정책 자문에 응했던 그다.

그는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문화 정책이란 게 없었다”며 “있었다면 관공 문화, 부패 문화, 청탁 문화뿐”이라고 말했다. 도 교수가 “시민운동가가 특정 정부의 관료로 들어 간다는 일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라면 칼자르듯 문화관광부만의 소관으로 치부하는 정부의 태도를 가까이서 지켜 본 세월이 물씬 묻어 난다. 최근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호주제 폐지 문제 역시 법과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주의와 남성중심주의의 서열 주의에 대한 거부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은 인식의 문제입니다.” 그가 책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에 진력하는 것은 원천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는 강력한 믿음의 표현이라는 말이다. 그가 투혼을 불태우고 있는 책읽는 사회 만들기 운동은 교육ㆍ저술ㆍ출판 집단에 대한 강력한 항의다. 강력한 메시지를 보냈건만,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 하는 그들의 태도는 그를 가장 실망시킨다. 순수 시민 단체를 표방했으므로 정부의 지원은 애초 바라지도 않았다.

현재 도서관 건립 운동에 참여를 약속한 단체는 9개 단체에 1,000여명의 회원이 속해 있다. 전교조, 학교도서관살리기 국민연대, 한국 도서관 협회, 대한 출판문화협회, 어린이 도서관 연구회 등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념적 스펙트럼의 단체들이 한 가지 사업을 위해 힘을 모아 계속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예로는 현재로선 유일무이한 실정이다.

도 교수는 쉴틈이 없다. 관여하고 있는 사업들 때문은 아니다. “건강에 위기가 온 다음부터 체지방과의 싸움에 들어갔어요.” 적어도 1주일에 두 번은 동네 헬스 클럽에 가서 뛴다. 지난해 집도의로부터 체지방이 많다는 경고를 받고는 석달째 지켜 오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어차피 몸무게는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어린이 도서관 부지를 답사하러 지방을 돌아다닐 때부터, 너무 무거워진 몸 때문에 곤욕을 치렀어요.” 이래저래 몸무게는 줄일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인터뷰는 둘째날에도 아쉬움을 남겨야 했다. 명동 모처에서 열리는 어린이 도서관 운영 프로그램 소위원회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까닭이다. 공간위원회, 도서선정위원회 등 어린이 도서관 운영 프로그램 소위원회가 시내의 한 찻집에서 갖는 회의였다.

그의 컴퓨터 안에는 24권 분량의 원고가 햇볕 볼 날을 기다리며 대기중이다. 학문 바깥일에 정성을 들이는 틈틈이 학술지 등을 통해 발표한 글이다. 이 중 ‘신화론’, ‘생물학과 인문학의 대화(가제)’, ‘만인의 시학’ 등은 문학동네 등 출판사에서 가을중 단행본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인문학 교수는 60을 넘겨야 철 든다는데, 머잖아 정년이라니….” 그가 시민 운동에 이토록 깊이 관여하게 된 것을 후회한다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은 다 안다. 본연의 책쓰기로 빨리 돌아가야 하겠다고 작심한 지 벌써 7년을 넘겼다는 사실도 다 안다. 또 그가 영원한 청년으로 강단과 현장을 지킬 것이라는 사실 또한.

장병욱 차장 aje@hk.co.kr

입력시간 2003/06/2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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