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 집] 강진 명동식당

남도의 산해진미가 한 상 가득

맛의 고장 남도를 여행할 때면 명소를 찾는 시간보다 식사가 더 기다려진다. 맛난 먹거리가 많고 손맛 알아주는 남도. 그 중에서도 강진은 산과 들, 바다와 갯벌이 골고루 어우러져 질 좋은 재료를 제공한다.

한정식은 남도 맛의 결정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온갖 맛있는 음식들을 한 상에 모두 모았으니 어찌 흐뭇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한정식을 먹으러 갈 때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가짓수를 채우기 위해 그다지 젓가락이 가지 않는 접시를 상에 올리기도 하는 서울의 일부 간판만 그럴듯한 한정식과는 전혀 딴판인 제대로 된 한정식이기 때문이다.

두세 명 가지고는 시도를 않는 것이 좋다. 대부분 한정식 식당이 최소 인원을 네 명으로 잡고 있다. 식당이 정한 최소 인원이 세 명이라 하더라도 음식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최소 네 명이 되야 엄두를 낼 수 있다. 음식을, 그것도 하나같이 맛있는 음식을 남기는 것은 낭비이고, 정성 들여 차린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척 안타까운 일일 테니까.

강진읍내에만 대여섯 군데의 한정식 집이 있다. 작은 읍내 규모에 비하면 많아 보이는데 대부분 저녁시간이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주중에는 강진 사람들, 주말에는 주로 외지에서 여행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강진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는 로터리 근처에 자리한 명동식당은 20여년 넘게 한정식만 만들어오는 집이다. 매체나 방송을 탄 식당들이 손님접대에 소홀하게 되기 쉬운 편인데 명동식당은 꽤 유명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정성으로 손님을 맞는다. 맛도 맛이지만 뜨거워야 할 것은 뜨겁게, 시원해야 할 것은 시원하게 상에 올리는 것은 미리 준비하기 보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그때그때 만드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남도에서 한정식을 처음 먹었을 때의 에피소드 하나. 상도 없는, 달랑 방석만 깔린 빈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30여분이 지난 뒤 커다란 상을 종업원 두 명이 낑낑거리며 들고 들어와 놓고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일일이 접시를 들고 와 상위에 놓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한 상 가득 차려서 들고 들어오는 것이 남도 한정식의 기본이었던 것이다.

명동식당에도 그때처럼 여러 개로 방이 나눠져 있고 방에는 방석과 옷걸이가 전부. 상이 들어온 다음에는 여닫이로 된 방문을 닫아준다. 마치 안방에서 잘 차려진 상을 받는 느낌. 우선 상을 받으면 얼마의 시간이 걸리거나 맛을 즐기며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서양에서 풀코스로 음식을 즐길 때 두시간도 더 걸린다고 한다. 그러고보면 한정식도 주문에서 식사를 끝내기까지 최소한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은 걸리는 듯하다.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동료가 있다면 두시간도 짧을 것이다.

상위에는 바다음식, 육지음식이 조화롭다. 생선회와 전복회, 대합탕, 장어구이는 바다, 떡갈비와 육회, 더덕구이는 육지를 대표한다. 전라도에서 잔치를 할 때 빠지면 안된다는 삭힌 홍어와 담백한 돼지 수육, 묵힌 김장김치가 삼합을 이룬다. 돼지 수육을 토하젓에 찍어 먹는 맛도 각별하다.

매일 새벽, 그날 만들 음식 재료를 장만하기 때문에 철에 따라, 시기에 따라 재료가 바뀌고 따라서 상에 오르는 음식도 변한다. 하지만 삼합이나 떡갈비, 육회 같은 기본적인 것들은 빠지지 않는다. 음식 솜씨도 중요하지만 좋은 재료를 구하는 게 맛을 좌우하는 기본이라고 믿는 김정훈 사장(50). 신선한 재료를 쓰기 위해 매일 장을 보는 것은 이같은 김씨의 장인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접 담은 토하젓이나 게장 같은 기본 반찬이나 여름에도 먹기 좋도록 시원하게 식힌 호박죽을 먹어보면 이 집의 깊은 손맛을 느낄 수 있다. 전통적인 남도 맛과 함께 표고 탕수육 같은 독특한 맛을 시도하는 점도 새롭다.

▲ 메뉴 : 한정식 1인당 20,000원(기본), 25,000원(특). 최소 3인 이상. 주말에는 예약을 하는 게 좋다. 061-434-2147

▲ 찾아가기 : 강진 시외버스터미널 옆 로터리에서 모란모텔 골목으로 들어가면 바로 옆에 명동식당이 있다. 강진으로 가려면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목포까지 간 다음, 영산강하구언을 지나 2번 국도를 타고 강진으로 가면 된다. 목포에서 강진까지 40분 가량 소요.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6/2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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