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식품] 재앙인가 복음인가

09/16(수) 15:47

8월 25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앞.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 회원 수십여명이 “나, 콩 맞아?” “내가 아직 감자로 보여?” 등의 구호를 쓴 플래카드를 들고 나와 유전자 조작 식품 반대시위를 했다.

이날 시위는 국내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에 문제를 제기하는 집회로는 처음이었다.

5일후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중심가의 팬-퍼시픽 소나르가온 호텔 앞. 현지 환경단체 회원들이 침묵시위를 하고 있었다. 플래카드에는 이 호텔에 묶고 있는 “몬샌토사 부사장 호레이쇼 나바레티 물러가라” 고 적혀 있었다. 시위대는 경찰의 저지로 뒷골목으로 밀려나고 말았지만 주변 시민들의 지지를 받는 듯 했다.

나바레티 부사장의 방글라데시 방문은 극비리에 이루어졌다. 목적은 이 회사가 개발한 유전자 조작 식품 수출선을 확보하고 유전자 조작 기법으로 만든 콩 옥수수 등 종자를 농민들에게 보급하려는 것이었다.

유전자 반대시위 세계적으로 확산

5,6년 전부터 런던 파리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 주요도시에서는 그린피스를 비롯한 국제 환경단체 회원들의 유전자 조작 식품 제조·유통 반대 시위가 거세게 일었다. 이들은 유전자 조작 기법으로 만든 동물의 가면을 쓰고 몬샌토사 등의 사옥 앞에서 시위하거나 수퍼마켓에서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의심이 가는 제품을 수거해내기도 했다.

한국과 방글라데시의 이번 시위는 아주 작지만 유럽에 국한됐던 흐름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지금까지 유전자 조작 식품의 문제에 관한 한 완전히 무풍지대였다. ‘외국에서는 문제가 좀 되는 모양이더라’ 수준이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과연 문제인가? 문제라면 무엇이 문제인가?

유전자 조작 식품(Gene-Food)이 처음 식탁에 오른 것은 미국 칼진사가 10여년의 연구·실험 끝에 만들어 9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무르지 않는 토마토’ 였다. 이 토마토는 속살이 쉽게 물러지는 것을 억제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어 유통기간이 그만큼 길었다.

FDA는 이에 앞서 이미 92년에 유전자 조작을 거친 종자도 몇 대를 거친 실험재배 결과 새로운 종이 아닌 또 하나의 진화개체였다는 과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존의 식품과 다를 바 없다고 밝혔다.

유네스코 통계에 따르면 97년 8월 현재 유통과 판매가 허용된 유전자 조작 식품은 콩 옥수수 감자 토마토 사과 파파야 오이 호박 담배 밀 면화 사탕무 등 미국 26개, 일본 17개, 유럽연합 4개 품목이다. 아직 수는 많지 않지만 콩 감자 옥수수 면화 토마토 평지(씨앗에서 식용유를 짜내는 식물) 종자 등 주요곡물이 포함돼 있어 파급효과는 적지 않다.

이들 곡물의 주수출국인 미국의 경우 콩의 30%, 옥수수의 25%, 면화의 40% 정도가 유전자 조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더욱이 유전자 조작 곡물및 식품의 생산과 판매는 앞으로도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생명공학 시장규모 1000억달러에 달해

유전자 조작 식품 제조를 포함해서 생명공학의 세계시장 규모는 2000년까지 연간 1,000억달러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고 자원절약적인 21세기의 대표적 전략산업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그 위해성 여부를 명확히 입증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으나 앞으로 어떤 문제가 야기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우선 찬성론자들의 입장을 들어보자.

유전공학 회사는 물론 대다수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 기술로 인간의 식량위기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충과 잡초에 대한 저항성 등 원하는 특성을 갖는 품종을 단시간내에 만들어냄으로써 식품및 곡물 생산의 효율성과 수확량을 놀라울 정도로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해충에 저항성이 강한 농작물은 해충피해로 식량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폐기되던 작물의 양을 줄여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다. 더구나 경지면적 확대가 거의 불가능한 현실에서 유전자 조작으로 염분이 높거나 기온이 높은 극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는 곡물을 만들거나 곡물 생산시기를 단축할 수도 있다.

이들은 또 식품의 맛과 영양을 폭넓은 범위에서 향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식품에 부족한 영양분을 동식물의 경계를 뛰어넘어 도입할 수 있게 되어 한 가지 식품으로도 영양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유전자 조작 곡물은 제초제와 살충제에 견디는 능력을 높임으로써 제초제와 살충제 사용의 절감을 통해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일부 과학자들과 환경·시민·소비자단체들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의 주장은 현재의 과학기술로 유전자 조작 식품의 문제를 밝혀낼 수 없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독성·알레르기 반응 일으킬 수도” 주장

우선 건강 문제다.

유전자가 다른 종에 도입되는 경우 해당 유기체에 없던 새로운 물질이 생산돼 독성을 나타내거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Bt독소(토양세균의 일종인 바실러스 서린젠시스에서 만들어지는 독소로 해충에 대해 독성을 나타냄) 유전자가 도입된 옥수수는 식품으로 섭취되는 마지막 단계에서도 독소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 독소는 인간에게는 작용하지 않고 쥐 실험에서도 독성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됐다. 그러나 이러한 제초제 저항성, 해충 저항성 유전자를 삽입한 식품을 장기간 사용했을 때의 안전성에 관한 자료는 거의 없다. 과학자들은 바로 이런 점을 우려한다.

89년 보조식품으로 개발된 L_트립토판은 미국에서만 37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유전자 조작 세균으로 만든 트립토판이 백혈구 수가 증가하고 심한 근육통 증상을 보이는 새로운 병을 일으킨 것이다. 환자만 만 명 이상 발생했다. 원인은 트립토판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독성을 갖는 중간산물의 농도가 증가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또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회 보고서를 작성한 대리 메이서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알레르기 유발은 브라질 땅콩의 유전자를 도입한 콩의 사례에서도 밝혀졌다.

미국 파이오니어 하이_브래드 인터내셔널사가 개발한 이 콩은 브라질 땅콩의 유전자를 넣어 영양분을 증가시킨 것. 그러나 시험 결과 브라질 땅콩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에게 양성반응이 나타났다. 브라질 땅콩에서 전달된 유전자가 알레르기를 일으킨 것이다. 이 콩은 가축 사료용으로 개발됐으나 결국 사람이 이 사료로 키운 가축의 고기를 먹게 되므로 상품화를 포기했다.

또 최근 영국 로웨트연구소는 병충해에 견딜 수 있도록 유전자 조작 처리를 한 감자를 실험용 쥐에게 먹인 결과 쥐의 면역체계가 파괴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이 사람에게도 일어날 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불안을 가중시키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와 함께 사람이 먹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항생제 저항성이 있는 단백질이 남아 있다면 인체의 항생제 저항성이 증가하여 보건의료 측면에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다른 식물, 미생물에 전달, 생태계 혼란 초래

다음은 환경문제다.

그린피스를 비롯한 환경단체들은 특히 유전자 조작에 주로 사용되는 제초제·해충 저항성 유전자가 환경에 끼칠 영향을 우려한다.

몬샌토의 글라이포세이트 저항성 대두(콩)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기존의 제초제는 잡초의 종류에 따라 달리 사용되었다. 반면에 글라이포세이트는 모든 식물을 죽이는 제초제. 글라이포세이트 저항성 유전자가 도입된 농작물을 재배할 경우 글라이포세이트를 사용해도 이 농작물에는 피해가 전혀 없다.

일부 과학자들은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를 지닌 작물을 야외에서 재배할 때 다른 식물이나 미생물에 이 유전자가 전달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에 의해 종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고 수평적 유전자 전달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유전자의 수평적 전달에 의해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던 신종 수퍼잡초(어떤 제초제에도 죽지 않는 잡초)가 생길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미 호주의 호밀풀은 글라이포세이트 저항성을 가지게 되어 글라이포세이트를 사용해도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을 증명했다. 또 Bt독소를 만드는 해충 저항성 유전자의 사용으로 독성에 저항성을 갖는 곤충들이 증가하여 살충제 사용량이 늘어날 것을 우려한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이 독소에 저항성을 지닌 곤충을 처음 발견한 바 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다. 유전자 조작 식품은 몬샌토, 듀퐁, 아메리칸 사이나미드, 칼진 등 유전자 조작식품과 종자를 생산하는 거대기업에 식품과 종자를 동시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농민들의 종속성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저런 문제 때문에 환경론자들은 유전자 조작 식품을 ‘프랑켄푸드(프랑켄슈타인이나 먹는 식품)’ 라고 부르며 그 안전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유전자조작식품 문제예방에 관심 기울여야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규제는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과 일본은 유전자 곡물및 식품을 일반 기존 곡물및 식품과 다르게 취급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유전자 조작식품임을 표시하는 딱지 같은 것을 붙이도록 하지 않고 있다.

반면 유럽연합(EU)은 ‘신개발 식품규정(258/97EC)’ 에 따라 유전자 조작 곡물과 식품의 시장 출하 여부를 규제하고 있다. 특히 EU내에서 판매하는 경우 유전자 조작 유기체로 구성됐거나 이를 함유하는 곡물 종자, 식품 등 모든 제품에 대한 표시를 시장출하의 전제조건으로 의무화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미국과 EU간의 무역마찰로까지 비화되고 있다.

한편 국제사회에서도 유전자 조작 식품 등의 문제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체결된 생물다양성 협약에 따라 유전자 조작 유기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GMOs)의 이전·취급·사용에 관한 규제를 시도하는 ‘생명공학 안전성 의정서(Biosafety Protocol)’ 를 마련중이다.

95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5차례 회의를 통해 생물다양성 협약에 가입한 30여개국이 문안절충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의정서는 내년 2월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마지막 6차 회의에서 최종 문안이 확정되고 당사국들의 비준을 거쳐 이르면 1∼2년 내에 발효된다.

내용은 유전자 조작 곡물이 자연환경에 방출됐을 때 인간, 동식물, 생태계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박용하 정책연구위원은 “유전자 조작 사과처럼 바로 먹는 농산물이나 콩 옥수수처럼 환경에 방출됐을 때 자기증식을 통해 확산될 수 있는 곡물은 이 의정서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며 “그러나 쌀처럼 껍질을 벗겨 자연상태에서 확산이 불가능한 가공식품은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추정된다” 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국제적 논란에 대해 큰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 느낌이다. 유전공학을 과학기술 발전 차원에서 접근하든 건강·환경 차원에서 접근하든 관심과 연구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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