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조작식품] "한국은 과연 안전무풍지대인가"

09/16(수) 15:48

“우리나라도 95년부터 미국산 유전자 조작 식품을 수입하고 있었지만 시민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어야 했습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겉으로 구별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없습니다. 어떤 이상이 있느냐는 질문을 이어 받습니다. 몇 가지 사례로 드러난 알레르기 현상 이외에 몸서리칠 만한 증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요. 그러면 안심해도 좋을까요? 후손에게 어떤 증상이 나타날 지 현 과학기술로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을 먹어 나타나는 알레르기는 시원하게 긁거나 항히스타민 약품을 사먹으면 산뜻하게 끝나는 간단한 문제일까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일종의 면역 이상현상인 알레르기가 앞으로 심각한 면역이상으로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미국에서 안전하다는 식품이므로 한국에서도 당연히 안전할 수밖에 더 있겠느냐’ 는 논리의 우산 속에 숨어 한 발도 앞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 우리 식품안전당국에 비애를 느낍니다. 식품은 의약품과 분명히 다릅니다. 다양한 상품으로 생산된 약품은 골라 먹을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 먹지 않고 버틸 수도 있지요. 그러나 식품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유럽의 경우 시민들이 반대하자 오스트리아와 룩셈부르크 등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판매와 재배를 금지시켰고 유럽연합 차원에서는 올해말부터 유전자 조작 여부를 딱지를 붙여 표시하도록 의무화할 예정입니다.

생명공학은 식량을 위한, 의학을 위한 미래의 복음이 아닙니다. 건강한 생태계를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파괴되는 자연을 그대로 두고, 그래서 부족해지는 식량을 생명공학으로 해결하려는 환상은 접어야 합니다. 환경오염으로 인해 발생한 질병을 생명공학으로 해결하려고 생태계를 더욱 어지럽히는 모순을 저질러서는 안됩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사항은 인간의 건강한 생명을 담보하는 생태계의 보전이요, 오염된 환경을 회복시키는 일일 것입니다. 이 참에 생명공학 정책에 대한 공정한 시민 참여를 강력히 촉구합니다.”

정부 무관심 속 시민단체가 나서

생명안전·윤리 시민사회단체 연대모임 박병상 대표(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는 지난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생명공학 육성법 개정 관련 시민단체 연대모임 토론회’ 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그린피스같은 국제환경운동단체 회원들의 데모 현장을 전하는 외신을 통해서나 들을 수 있는 얘기였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는 ‘생명윤리의 법리적 측면’ ‘환경·소비자 권익 측면에서 본 생명공학 육성법의 문제’ ‘외국의 입법사례’ 등이 우리의 목소리로 제기됐다.

이날 토론회는 ‘생명…연대모임’ 발족식을 겸한 행사였다. 식품을 포함해서 유전자 조작 기술(유전공학)의 다양한 문제를 연구하고 대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결성된 모임으로는 처음이다.

우리나라는 유전자 조작 기술 면에서는 선진국에 버금가는 수준이지만 그 윤리적 사회적 환경적 측면에 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징적인 사례가 정부 당국에서도 아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농림부 과학기술부 상공자원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안전청 등 관계부처에서는 한결같이 “미국산 옥수수와 콩에는 병충해나 제초제에 저항성을 갖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표시 의무가 없을뿐 아니라 아예 일반 농산물과 섞어서 수출하기 때문에 이런 작물이 얼마나 들어오는 지 알 길이 전혀 없다” 는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왔다.

문제는 알 수 없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다가 지난 8월25일 한 신문사가 미국 곡물수출업체인 카길사에 유전자 조작 식품 수출 여부를 질의함으로써 약간의 윤곽이 드러났다. 카길사는 답변서에서 “미국산 콩의 30%, 옥수수의 25%가 유전자 조작 곡물이며 수출과 가공도 이런 비율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 밝혔다.

수입된 유전자 조작 콩과 옥수수는 그 자체로 판매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두부 기름 두유 과자 물엿 콘칩 사료 등으로 가공돼 완제품으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수입식품이나 식품첨가제 중에도 유전자 재조합 기술을 이용한 것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얼마나 수입되고 어떻게 유통되고 있는 지에 대한 현황파악조차 안되고 있다.

수입·유통 현황에서 한 걸음 나아가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성을 검토하고 이의 생산과 판매를 규제하는 문제로 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거의 무풍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황·안전에 대한 실태조사 이뤄지지 않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OECD의 ‘재조합 DNA 생물체의 공업·농업·환경분야 이용 안전대책에 관한 이사회 권고’ 를 이행해야할 의무가 생겼기 때문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유전자 재조합 실험지침’ 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 지침에 따른 유전자 재조합 연구현황과 안전시설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이 지침은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환경단체들은 비판한다.

실험실 연구단계의 안전성 확보에 국한된 유전자 재조합 실험지침은 그렇다 치고 유전자 조작 유기체가 야외 생태계로 퍼져나갔을 경우의 파급효과와 이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유전자 조작 제품의 생산·수입·유통·판매, 유전자 조작 제품의 위험성 평가 등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규제법령이나 지침이 없다.

이런 문제에 관한 논의는 최근 들어 민간단체에서 오히려 활발하다.

우선 생명안전·윤리 시민사회단체 연대모임이 결성됐다. 이 모임은 참여연대와 녹색연합이 중심이 돼 지난 7월부터 논의를 시작,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그린훼밀리운동연합,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환경운동연합 등 9개 시민·환경단체의 연합체로 출범했다. 이 모임은 유전자 조작 식품을 포함해 생명공학 전반에 관한 연구와 문제제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 10월20일쯤에는 외국 전문가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열고 구체적인 운동방향을 설정해나갈 예정이다.

한편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이미 지난 7월부터 ‘유전자 조작 식품에 관한 합의회의’ 를 시작했다. 합의회의란 “선별된 몇몇 보통사람이 정치·사회적으로 논쟁이 되거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과학·기술 주제에 대해 전문가들에게 묻고 답변을 들은 다음 내부 의견을 통일해 최종적으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발표하는 포럼” 이다.

87년부터 덴마크 네덜란드 뉴질랜드 미국 일본 등에서 여러 문제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정부의 정책 결정이나 시민의 문제인식에 영향을 미치자는 의도다.

합의회의 참가자는 직장인 교사 공무원 주부 대학생 등 지원자 15명으로 김환석 국민대 교수, 이세영 전 고려대 생명공학원장, 송상용 한림대 교수, 유학상 한국과학문재단 사무국장, 변광호 한국생명공학연구소장, 김영락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합의회의는 11월 회의 내용에 관한 공청회를 갖고 언론인 정치인 대학교수 시민운동가 법조인 등 여론주도층 200여명을 대상으로 생명공학의 윤리·안전문제에 대한 여론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정부나 연구기관 중에는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아직 없다. 식품의약안전청만해도 11월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합의회의 공청회 결과를 보고 유전자 조작 식품이라는 것을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표시를 의무화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유전자 조작 식품의 총체적 문제에 대한 접근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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