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만들었다] 변하지않은 건 가을하늘뿐

09/24(목) 14:30

1964년 9월27일 세상에 태어난 ‘주간한국’은 창간호 표지부터 60년대 한국의 자화상을 시리도록 잘 드러내고 있다. “자랑할 것 없는 나라_세계 제1은 가을하늘”이란 표제가 붙은 창간호 표지는 그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양떼들이 정처없이 향하는 정경을 담고 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조그마한 생활을 안은 겨레들,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고 하는데 가도 가도 길길이 누운 황토,(중략) 자랑할 것 없는 나라-그러나 세계 제1의 가을하늘은 아른아른 높푸르다”

암울한 시대, 온갖 가난을 안고 있는 한국인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횃불을 든 ‘주간한국’의 비장한 각오가 창간호의 사진설명에서 부터 결연하게 펼쳐지고 있다.

‘뉴스의 큰 흐름 지켜볼 수 있는 발판’ 마련

타블로이드판 32쪽으로 선을 보인 ‘주간한국’의 제호중 ‘週刊’두 글자는 한자로 쓰여졌으나 당시로는 드물게 가로쓰기이다.

2면의 창간사는 ‘주간한국’의 발간목적과 기능, 특징을 다음과 같이 집약하고 있다. “뉴스의 홍수에 마냥 휩쓸려 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이 뉴스의 대하(大河)를 지켜볼 수 있는 발판이 필요하다. 주간한국이 뉴스의 정리와 종합으로 독자대중에게 오늘의 세계상을 제시하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속보위주의 일일보도는 뉴스의 골격 피상에 머물기 쉽다. 월간잡지의 경우 생활템포에서 뒤지기 쉽다. 주간한국이 사상의 밑바닥에서 문제의식을 끌어내고 뉴스의 육화를 통해 사건의 입체상을 추구하려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신문저널리즘을 보강하고 잡지저널리즘을 보족하는 우리나라 주간저널리즘의 독자적 일꾼이 될 것을 우리는 다짐한다.”

이러한 창간목적과 특성에 가장 알맞는 기사가 창간호의 하일라이트를 장식한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터뷰이다. 주제는 ‘박 대통령의 언론관’. 언론탄압의 대명사인 박 대통령이 매우 민감한 사안을 주제로 주간지와의 회견에 응한 것 부터가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창간호에서 부터 ‘주간한국’의 권위와 비중을 실감케 한다.

박 대통령은 한격만(韓格晩) 당시 한국신문윤리위원장과의 회견에서 정가에 엄청난 회오리를 몰고 왔던 언론법 파동을 설명한 뒤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이 언론자유에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같이 구석구석 빼놓지 않고 신문을 보는 사람보고 신문관이 나쁘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대부분 감정이나 정실에 치우치는 정치가십을 없애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쿠테타 후 겨우 3년, 아직 권력을 탐닉하기엔 이른 때일 것이다. 정보부나 보안사로 기자들을 마구 끌어다 치도곤을 놓게하던 훗날과는 달리 언론을 대하는 박 대통령의 ‘순진한’모습이 그대로 드러난 기사였다.

34년전이나 지금이나 정치판은 ‘그게 그거’

‘주간한국’창간호의 4,5면을 들치면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점을 실감할 수 있다. 4면의 ‘지금 우리나라 정당들은’이란 기사는 공화당 민주당등 4당의 복잡한 내부를 적나나하게 밝히고 있는데 지금 정치판의 복사판을 보는 느낌이다.

5면으로 갈라치면 저절로 탄성이 나올 것이다. ‘정계개편’, 그 얼마나 귀에 익고 눈에 익은 단어인가. 이효상(李孝祥) 국회의장은 64년 9월22일 기자회견을 갖고 “보다 나은 경지로 비약해야 한다는 견지에서 정계개편은 꼭 이룩돼야 한다”고 천명한 것이다. 34년전의 타임머신이 이제 도착했다고나 할까.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서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계개편이란 명제는 어제 오늘 대두된 것이 아니고 귀에 젖도록 자주 들어온 것이면서도 언제나 새로운 일거리로서 어필한다.”

종합시사지답게 생활경제와 해외뉴스 지면도 적지 않다. 기성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상을 반영하듯 7면에 실린 ‘상품노트’에 나온 양복지 소개가 이채롭다.

10면의 ‘코리언’에는 최근까지 유전개발로 숱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최계월(崔桂月) 코데코 코리아 회장에 관한 기사가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쥐고 흔드는 사나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수카르노에 이어 수하르토까지 대통령직을 떠난 이즘에도 그는 인도네시아를 누비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사에도 ‘막후 괴물’이란 표현이 들어있다.

13면은 창간사에서 밝힌 것처럼 신문저널리즘을 보강하는 산뜻한 지면이다. ‘한국일보가 낳은 작가들의 공통제목 콩트 릴레이’란 이름아래 중견작가들이 신문에서는 감당하기 쉽지 않은 콩트란 장르를 아우른 것이다. 첫 테이프는 ‘일요일’을 제목으로 ‘전황당인보기’의 정한숙(鄭漢淑)이 끊었다.

이어 18면 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연예·생활면과 체육면도 당시 얄팍했던 일간지의 지면사정, 스포츠지가 나오기 전의 상황을 감안하면 주간지저널리즘의 본령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연예면의 첫 기사는 “나는 임신하지 않았다”는 인기배우 엄앵란씨의 수기이다. 그는 신성일씨와의 열애설이 임신설로까지 비화하고 있다며 ‘악의에 찬 소문’이라고 펄쩍 뛰었다. 그는 수기의 끝머리에 “영화인과는, 더구나 같은 연기인끼리의 결혼은 피하고 싶다. 이런 조그만 욕심엔 몇년째 이상이 없지만…”라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오리발을 내밀었다.

‘독자의 독서평’ ‘문집가족’ ‘집氏’ ‘일요부인’ ‘솜씨’ ‘현상퀴즈’ ‘기보로 쓴 나의 이력서’ ‘어신’ 등 다양하면서도 오밀조밀한 읽을거리들이 기존의 신문에서 찾아 볼 수 없던 알차고 재미있는 화제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창간후 폭발적 인기, 장안의 화제로

27면의 체육면에는 재일동포 야구 강타자 장훈 선수가 “고국처녀에게 장가를 들고 싶다”고 고백을 했다. 옆에는 장훈이 함께 활약했던 백인천과 회동하는 기사가 실렸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뛰는 선수들의 활약상은 신문이나 잡지의 중요한 상품이었다.

29면을 가득 메운 만화중에는 한국일보의 상징처럼 돼버린 블론디가 ‘불론디’란 제목으로 12칸을 메꾸고 있다. 31면의 독자페이지에는 ‘주간한국’의 창간을 축하하는 ‘세계의 축사’가 품격을 더해주고 있다. 타임, 뉴스위크의 발행인이 보낸 축하 메시지는 창간후 얼마안가 폭발적 인기로 장안의 지가를 올린 ‘주간한국’의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주간한국’ 창간호에 힘을 보태 준 각종 광고들은 그대로 고스란히 우리의 생활상이다. 우리나라 최장수 상품중 하나인 드링크제 박카스와 소화제 훼스탈 광고는 34년전에도 여전하다. 지금은 거의 찾기 어려운 양재학원 편물학원 광고가 많은 것도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광고난에는 신성일·엄앵란 주연의 ‘원앙선’, 김진규·최은희 주연의 ‘님은 가시고 노래만 남아’가 눈길을 끈다.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