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가 경제 죽인다] 개인파산이 늘어난다

09/30(수) 14:01

서울지방법원은 지난해 5월 국내 처음으로 간호사 현모(43)씨에 대해 소비자파산 선고를 내렸다.

현씨의 빚은 2억5,700만원. 오빠의 사업에 대해 보증을 섰다가 사업이 실패하자 대신 물어주게 된 돈이다. 현씨는 13년간 근무하던 병원을 그만 두고 3,400만원의 퇴직금을 받아 일부 빚을 갚았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빚을 받기 위해 계속 찾아왔고, 남편이 대학교수였지만 집도 없이 시댁에 얹혀사는 처지인 현씨의 경제상태로는 나머지 빚을 갚을 능력이 전혀 없었다. 결국 파산을 신청했다. 현씨는 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와 면책 결정(채무 면제 결정)을 받은 뒤에야 1억8,000여만원의 빚 부담에서 벗어났다.

연이자 30%가 넘는 살인적 금리에 파산 속출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현씨와 같은 개인 파산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보증을 잘못 섰다가 엄청난 빚을 떠 안거나, 사업에 실패해 빌려 쓴 자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 연 이자가 30%를 넘는 ‘살인적’인 고금리를 견디지 못해 사실상 지급불능상태에 빠진 사람들도 많다.

서울지법의 경우만 보더라도 올해들어 9월까지 파산 신청 건수가 120여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실제로 파산선고를 받은 경우는 절반에 가까운 50건 정도. 이름마저 생소했던 ‘소비자 파산’이 이제는 너무도 가까운 현실이 돼 있다. 서울지법 관계자는 “보증을 섰거나 사업 실패로 엄청난 빚을 떠 안고 파산신청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지만 돈을 빌려쓰고 갚지 못해서 파산신청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출금리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단 본인의 무절제한 씀씀이를 탓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 빌려 쓴 돈이 IMF 체제 이후 수직 상승한 대출금리와 연체금리 때문에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결국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금융기관들은 연체금리를 내리는데 아주 인색하다.

은행들은 IMF 이전인 지난해 11월 연 17∼18% 수준이던 연체금리를 올해 들어서 연 25∼27%로 높였다. 금리가 계속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6∼7월에는 은행들이 연체 금리를 조금 내리긴 했지만 지금까지 금리 수준은 연 24∼25%에 이른다. 1억원의 은행 빚을 안고 있는 사람이 정상 이자를 내지 못해 연체금리를 적용받으면 한달에 내야 할 이자만 200만원을 넘는다. 6개월이 지나면 빚이 1억1,200만원을 넘어서 버린다.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금액은 조흥 상업 제일 한일은행 등 7대 시중은행의 경우 지난해말 1조88억원에서 7월말 현재 1조7,963억원으로 70%가 넘게 늘었다. 소득 감소에다 실직 사태까지 겹쳐 이자를 제 때 내지 못하거나 빚을 못갚을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더구나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개인 대출에 대한 상환 압박을 늘리고 있다. 이들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총액은 올해 들어 지난해 말에 비해 4조2,000억원이 줄었다. 대출금을 갚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대출상환자들 가운데는 적금이나 보험을 해약해서 은행 대출금을 갚거나, 연체 상태를 면하기 위해 다시 빚을 낸 사람들이 적지 않다. 대출금 연체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과 더불어 이런 현상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파산의 공포감’을 실감하게 만들고 있다.

카드 현금서비스, 무심코 받았다가는 ‘낭패’

고금리의 압박은 특히 소비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카드쪽에서 심하다. 신용카드 대출은 연 30%대의 초고금리다. 현금서비스를 받을 경우 카드사들은 대개 ‘한 달 이용에 원금의 몇 %’ 형태로 이자를 매기고 있는데 이를 연 이자로 환산하면 9월 말 현재 24∼29%에 이른다. 연체했을 경우 금리를 따지면 모든 카드 회사의 금리가 연 30%를 훌쩍 넘어선다. 물론 올해 3월 카드 현금서비스 금리가 28∼33%까지 올랐을 때에 비하면 금리가 내리긴 했다.

카드 회사들은 금리가 한창 높았을 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3년 만기로 발행한 카드채의 금리 부담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고, 은행 대출금리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사정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카드로 당장 필요한 물건을 샀던 사람들, 궁지에 몰려 현금서비스를 받았던 사람은 나빠진 형편에다 고금리 부담까지 겹쳐 헤어날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카드 이자가 연체되자 당장 독촉 전화에 시달렸다는 한모씨는 “카드회사들이 고리대금업자 못지 않다”고 비난했다.

카드회사의 감독·지도를 맡고 있는 신용관리기금 관계자는 “카드회사의 고금리에 대한 소비자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여신금융전문협회 등을 통해 되도록 금리를 내리도록 지도하고 있지만 감독당국이 금리 문제를 직접 시정 조치할 권한은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파산선고 받아도 채무의무는 유지

봉급생활자나 주부 학생등이 도저히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태에 빠졌을 때는 법원에 채무관계를 정리해주도록 신청할 수 있다. 주로 채무자가 신청하나 채권자가 요청할 수도 있다. 법원은 심사를 거쳐 파산선고를 내리고 파산관재인을 선임해 채무자의 재산을 조사, 채권자 전원에게 나눠 준다. 대개는 채무자 재산이 거의 없는 상태므로 파산선고와 동시에 파산절차를 마감하는‘동시 파산폐지’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파산선고가 내려지면 상당한 법률상의 자격 제한을 받는다. 파산자는 합명회사나 합자회사의 사원이 될 수 없고 주식회사나 재단 등의 이사로 선임될 수도 없다. 공무원도 될 수 없고 대학교수나 사립학교 교사직도 불가능하다. 이런 자리에 있던 사람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 법원 허가없이는 일정한 거주지를 떠날 수도 없다. 모든 우편물은 파산자가 아닌 파산 관재인에게 배달된다. 이밖에도 변호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공증인이 될 수 없고 후견인이나 유언집행자 자격도 박탈당한다.

파산선고가 내려졌다고 빚을 갚을 의무를 모두 면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채권단은 파산 선고자가 다시 재산이 생기면 언제라도 강제집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이익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법원에 면책신청을 해야한다. 면책 선고가 나면 세금등 일부 채무를 제외한 모든 빚을 면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면책 결정은 워낙 엄격하게 이루어기 때문에 선고를 받아내기가 힘들다. 서울지법의 경우 파산선고는 현재까지 50건에 이르지만 면책 결정은 1건 뿐이다.

파산신청은 채무자의 주소지를 관할하는 지방법원에서 접수한다.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을 첨부해 법원에서 마련한 파산신청서 진술서 채권자 일람표 재산목록 생활상황 가계수지표 등의 관련 서류를 직접 작성해 낸다.

김범수·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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