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가 경제 죽인다

09/30(수) 14:03

외환위기를 겪는 국가라면 세계 어느 곳이든 찾아 가는 국제통화기금(IMF). 그 50년 권위와 아성이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현 세계 경제질서 하에서 좋든 싫든, 원하든 원치않든, 설령 잘못된 진단과 처방을 제시하더라도 IMF는 외환위기 해결에 관한 한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유일한 공인해결사’ 다.

IMF의 위기해법은 의외로 간단하고 한결같다. 이른바 고금리정책. 일단 국내금리를 높여 자본유출을 방지하고 신규자본에 유인(誘因)을 제공함으로써 외환수급과 환율을 안정시킨다는 논리다. 지난해 말 IMF체제 출범직후 우리정부가 이자제한법을 풀어 시장금리를 연 30%까지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IMF의 고금리 처방 덕인지 장담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한국은 외환위기의 큰 고비를 넘겼다. 외환보유고는 400억달러를 넘어섰고 자본이탈 행렬은 멈춰섰으며 환율도 달러당 1,300~1,400원대에서 비교적 평온하다.

대출금리, 적정금리보다 13~15% 높은 셈

하지만 환란고개만 넘어서면 자연스레 해소될 것으로 보였던 고금리는 아직도 깨지지 않은 채 그 공고함을 더해가고 있다. 회사채 유통수익률(장기금리)이 연 12%대, 콜금리(단기금리)는 연 8%선까지 떨어지는등 ‘시장금리’ 는 IMF이전, 아니 그보다 낮은 수준까지 내려갔지만 경제주체들의 실질적 금융비용을 결정하는 ‘대출금리’ 는 요지부동이다. 일부 대기업과 정책성 자금을 제외하곤 대부분 중소기업 및 개인들은 연 16~18%, 신용금고 할부금융 파이낸스 등 제2,3금융권에선 연 20%가 넘는 사실상 종전 사채이자를 내고 돈을 쓰고 있다.

가히 살인적 금리다. 겉으로 보면 IMF이전보다 3~4% 포인트정도 금리가 오른 것 같지만 실제 체감 금리 인상폭은 15% 포인트가 넘는다. 그 이유를 보자.

적정금리의 산출공식은 통상 ‘실질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 로 이해된다. 과거 국내금리가 연 12~13%대를 유지했던 것도 우리나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율이 각각 7%, 5% 안팎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예상 실질성장률은 낙관적으로 평가해도 마이너스 6%. 물가상승률은 9%대로 전망된다. 성장률(-6%)+인플레(9%) 공식에 대입한다면 적정금리는 연 3%안팎이어야 한다. 따라서 현 대출금리는 적정금리보다 무려 13~15%나 높은 셈이다. 이런 고리대금을 쓰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IMF한파 속에 공장 가동률은 60%대로 곤두박질쳤고 매출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개인들은 개인들대로 감봉, 실직, 자산(아파트 주식등)가치 폭락으로 파산상태로 치닫고있다. 그러나 금리는 한참 내려가도 이자내기가 어려운 판국에 거꾸로 올라가서 내려오질 않고 있다.

금융권은 돈 홍수, 콜금리 하락혜택은 ‘그들 몫’

현재 금리 체계는 철저히 왜곡돼있다. IMF이전 만해도 회사채수익률 콜금리 등 시장금리와 대출금리는 연 11~13% 사이에서 엇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쟁국들에 비해 그 자체도 고금리이긴 했지만 이자율 수준이 비교적 고른 탓에 자금흐름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고 조달비용도 예측 가능했다.

하지만 현 금리체계는 콜금리(연8%대)와 회사채수익률(연12%대), 대출금리(연16%이상)가 4%포인트씩 격차가 벌어져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비교적 낮은 금리인 콜금리와 회사채수익률은 금융기관과 재벌, ‘그들만의 금리’ 란 사실이다.

콜금리란 금융기관끼리 주고 받는 돈의 이자율이다. 예금은 계속 들어오고 한국은행은 계속 돈을 퍼내는데 신용경색을 이유로 대출은 기피하다보니 금융권 안에만 돈이 남아돌아 콜금리가 계속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콜금리 하락의 과실은 금융기관들의 몫이다.

회사채수익률은 이른바 재벌금리다. IMF이전 만해도 대기업은 물론 우량중소기업까지 회사채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현대 삼성 LG 대우 SK 등 5대 재벌외엔 사실상 진입조차 봉쇄돼있다. 따라서 회사채수익률 하락의 수혜자는 재벌들 뿐이다.

그러나 콜금리와 회사채수익률의 하락에도 불구, 대출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있고 그 폐해는 철저히 중소기업과 일반서민 가계로 전가된다. 회사채 수익률이 떨어지다보니 재벌들은 채권발행으로 거액자금을 무한정 조달, 높은 이자의 은행빚을 갚고 있다. 금리인하의 열매는 금융기관과 소수재벌이 독식하고, 고금리의 짐은 수많은 영세 소기업과 개인들이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출금리가 낮아지지 않는 일차적 책임은 금융기관, 이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IMF이전만해도 대출금리는 예금금리보다 2%포인트정도 밖에 높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격차가 5%포인트이상 벌어져 있다. 낮은 예금금리와 높은 대출금리로 은행들이 그만큼 폭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담당자는 “솔직히 말해 국제결재은행(BIS)비율을 높이려면 많은 이익을 내는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부실여신과 손실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이익을 확보할수 있는 쪽에서 많이 남겨야하는 것이 현 실정” 이라고 말했다. 이유야 어떻든 은행들은 잘못된 경영이 가져온 부실의 책임을 중소기업과 일반가계의 금융비용으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경기부양의 핵심은 ‘대출금리의 인하’

고금리가 은행수지에 도움은 된다. 그러나 과다한 대출금리로 기업이 부도나고 개인들이 파산한다면 이는 또다시 은행의 부실여신으로 이어진다. 금리를 높여 눈앞의 이득을 볼 것인지, 금리를 낮춰 거래기업을 살림으로써 중장기적인 이익을 낼 것인지, 선택의 문제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은 근시안경만 쓰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의 금리인하정책도 방향을 잘못 잡고 있다. 지난 6개월여동안 계속되어온 금리인하 드라이브는 오로지 시장금리, 그중에서도 콜금리만을 타깃으로 해왔다. 정부의 직접통제가 가능한 금리가 콜금리, 부분적으로 회사채수익률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과실을 금융기관과 재벌만 누린다면 금리인하는 단지 지표놀음이자 거품에 불과하다. 수도권에서 20년째 전자부품업체를 운영한다는 중소제조업자 K씨는 “몇개월째 금리인하 얘기를 들었지만 은행에 가보면 달라진게 하나도 없다. 기업들이 내는 이자를 낮추지 않고서 금리인하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연초부터 시작된 구조조정의 장정을 9월말로 일단락짓고 10월부터는 본격적인 경기부양에 들어간다는 것이 정부방침. 경기부양의 목적이 기업을 살려 고용을 창출하자는데 있다는 것에는 누구도 이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기업을 살리는 방법은 금리를 낮춰주는 것이다. 긴 불황의 터널에서 하루아침에 매출이 늘어날리 없고 구매욕이 살아날 리도 없다. 경기부양의 핵심은 대출금리의 인하, 특히 마이너스 성장시대에 걸맞게 획기적으로 한자리 수까지 떨어뜨리는데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성철·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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