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둑다둑' 주저앉힌 북한문제

09/24(목) 11:23

‘가뭄끝의 단비’ ‘햇볕정책이 벼랑끝에서 살아나게됐다.’

8월21일 뉴욕에서 열린 이후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던 북미고위급회담이 지난 9월 10일 일괄타결됐다는 소식을 접한 외교통상부의 고위당국자는 이처럼 표현했다.

새정부의 햇볕정책이 북한잠수정과 무장간첩 침투사건및 영변인근의 새로운 지하핵시설 의혹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아오던 차에 날아든 북미합의내용은 햇볕정책의 정당성과 지속성에 무게를 더해준 낭보였던 것이다. 더구나 회담이 열흘이 지나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는 등 파행을 거듭하던차에 8월 31일 북한이 ‘로켓비행체’ 를 전격 발사한 것으로 전해진 이후 정부가 한·미·일 공조체제를 갖추고 대북제재준비에 나서는 등 한반도주변정세는 자칫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달을 뻔 했었다. 이같은 와중에서 북한이 발사한 비행체가 ‘인공위성’ 으로 사실상 거의 확인돼가고 북미고위급회담까지 타결되기에 이르자 정부는 ‘햇볕정책’ 으로 일컬어지는 대북유화정책기조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안도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이같은 판단은 합의안내용을 정밀분석한 데 따른 것이다.

4자회담·북미 미사일회담 일정 합의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4자회담과 북미미사일회담개최문제에 일정까지 합의한 점이다. 북미양국은 10월중에 제네바에서 4자회담을 재개키로 한데이어 미사일회담도 10월초에 뉴욕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94년 제네바핵합의에 따라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이 참가하는 형태로 열리기 시작한 4자회담은 지난해 12월과 지난3월 등 2차례 본회담이 열린 후 중단된 상태다. 당시 2차례의 회담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남북당사자간에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운 한·미양국에 맞서 북한이 주한미군철수와 북·미평화협정체결을 완강히 주장하는 바람에 차기일정조차 잡지못한 채 6개월여째 교착상태에 빠졌었다. 정부는 북한을 대화채널로 이끌어내기위해서는 4자회담재개가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보고 그간 미국과 공조아래 회담재개를 집요하게 추진해왔으나 북한측의 거부로 사실상 회담재개를 포기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북미미사일회담도 96년 4월과 지난해 6월등 2차례 열린 이후 지난해 8월 3차회담이 열릴 예정이었으나 회담직전 발생한 카이로주재 북한대사 장성길 망명사건을 이유로 북한이 갑자기 회담참석을 거부, 중단됐었다. 당시 장대사는 북한의 대중동(對中東)미사일수출사업의 총책임자였는데 장대사의 망명과정에 미정보기관의 집요한 공작이 개입한 것으로 판단한 북한이 매우 민감하게 대응한 결과였다. 실제로 미국은 장대사로부터 북한의 미사일수출에 관한 가치있는 정보를 입수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전해지고있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하고 있을뿐 아니라 북한의 다단계 로켓발사 능력에 비추어 21세기초에는 미국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이될 것으로 보고 내달초에 열릴 회담에서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배치 중단을 요구할 방침이다. 또 북한의 미사일 기술 및 장비수출이 전세계적인 대량파괴무기 확산에 역행한다고 보고 미사일의 수출중단을 촉구할 예정이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미사일 개발은 ‘자위권’ 에 속한다는 이유로 미국측의 이같은 요구를 거부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합의에 응하지 않고 미사일 개발 및 수출을 위해 시간끌기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은 최근 방북한 미의회 조사단에게 미사일 수출중단의 대가로 연간 수출금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억달러의 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수출중단에 따른 상당한 반대급부를 노릴 것으로 보여 협상은 난항이 예상된다.

제네바 핵합의 종전상태로 복원 가능

또한 제네바핵합의 준수의지를 재확인한 점도 커다란 성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 이달 하순부터 올해 중유공급 잔여분(28만4천t)을 연말까지 인도하기로 했으며, 북한은 영변 핵원자로의 사용후 폐연료봉 봉인을 9월중순부터 재개하기로 했다. 또 경수로 본공사도 11월부터 착공하기로 했다.

이에따라 중유공급 차질을 이유로 북한이 지난 4월부터 중단해온 영변 핵원자로의 미봉인 200개 폐연료봉에 대한 봉인작업이 재개됨으로써 제네바핵합의는 그간의 파기 위험에서 벗어나 종전상태로의 복원이 가능해졌다.

경수로 공사비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책정한 총예산 46억달러중 한국이 70%, 일본이 10억달러를 각각 부담하고 나머지를 미국이 책임지기로 합의된 바있어 재원문제도 이미 해결된 상태다. 다만 미국상하원에서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일부의원들의 반발이 거세 의회승인문제가 변수가 될 여지는 남아있다. 특히 북한의 비행체 발사를 계기로 재원분담안에 서명을 거부한 일본도 북미회담타결을 계기로 곧 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대북한 경제제재의 해제방안의 일환으로 제재완화의 필수요건인 테러지원국 해제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실무회담을 이달중 갖기로 합의한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한은 현재 쿠바, 리비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수단 등과 함께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돼있는데 이를 해제하기 위해서는 미행정부가 의회에 해당국이 최근 6개월간 국제테러를 지원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이에따라 미국은 북한에 대해 테러지원국 해제를 위한 전제조건을 제시, 이같은 조건을 충족시키도록 요구하면서 미사일, 4자회담 진전 등을 위한 지렛대로 계속 활용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미국은 농산물 가격 지지를 위해 연방정부가 긴급구매한 250만t의 잉여 밀 가운데 30만t을 북한에 지원키로 했다.

정부, 남북대화 전향적자세에 기대

미국은 이러한 식량원조가 인도적 차원에 지원되는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있어 이번 합의사항 발표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양측간 이면합의에 의해 조만간 공식적으로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지원으로 올해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식량원조는 이미 지원된 20만t을 포함,총 50만t으로 늘어나게 된다.

정부당국자는 “북미고위급회담에서 그간 현안이었던 주요의제가 일괄타결된 점은 한반도주변정세가 안정을 되찾는데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 이라고 평가하고 “다만 영변인근의 새로운 지하핵의혹시설 문제에 대해 미측이 ‘깊은 우려’ 를 표명하는 선에서 합의해준 점과 한국측과의 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키로 이면합의했다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점 등이 다소 마음에 걸린다” 고 말했다. 정부당국자는 또 “북한에 새로운 김정일체제가 들어선 직후 협상이 타결된 점으로 미루어 북한정권이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남북대화에 응해올 가능성도 기대할 만 하다” 고 덧붙였다.

윤승용·정치부기자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