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입이 더 더럽나" 정치판은 막말 경연장

09/16(수) 11:53

정치판이 급기야 언어의 하수구가 되고 말았다.

무대 위건, 무대 뒤건 걸러지지 않은 원색의 저질 발언들이 난무하고 대통령도 공격 대상에서 열외가 아니다. 무대 위 난타전은 주로 한나라당에서 시빗거리를 제공하고, 국민회의가 발끈하는 양태다.

우선 최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공개석상에서 “이런 놈의 나라, 이런 놈의 정권이 어디 있느냐” 고 말한 것에 대해, 국민회의가 9월8일 ‘대한민국 비하언사’ 라며 취소 및 사과를 요구한 것 등이 오픈경기.

여기에 지난 11일 한나라당 국회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때 김대중 대통령을 겨냥한 험담이 속출하면서 본격적인 치고받기가 벌어졌다.

먼저 이규택 원내 수석부총무는 “77세나 되는 분이 계속 사정, 사정하는데 그러다 내년에 변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 고 외설적 비방 발언까지 해버렸다. 그는 또 “DJ는 정치보복을 안하겠다던 약속을 어기는 등 거짓말을 너무 잘해 김홍신 의원이 이야기한 공업용 미싱이 필요하지 않나고 생각한다”, “아태재단은 아태가 아니라 화투판의 ‘아도’ (싹쓸이)재단”, “아도재단이 받은 수천억원은 모두 정치자금으로 들어갔으며, 지난해 재단 후원금 130억원도 마찬가지” 라며 거친 말을 계속했다.

방어본능이 토해내는 격한 저항성 발언

이규택 의원은 자신의 발언에 국민회의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자 “우리 정치가 조크를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그렇게 여유가 없느냐” 며 “여당은 야당총재에 막말을 서슴지 않으면서 이쪽에서 한 말이 맘에 안든다고 고발하는 것은 힘에 근거해 나온 오만불손” 이라고 못마땅해했다.

이날 한나라당 연석회의에서 나온 원초적 발언은 이뿐이 아니었다. “이 정권은 미치광이 정권” (정병원 위원장), “DJ가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 “DJ도 전직 대통령들처럼 불행해질까 걱정이다” (이상 김성식 위원장)에 이어 김 대통령의 하야론까지 제기됐다. 백승홍 의원은 “편안한 삶을 바라는 4,000만 국민들은 김 대통령이 하루 속히 하야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 했다.

국민회의가 발끈한 것은 당연. 즉각 이규택 의원 등을 국회 윤리위에 제소하고 검찰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키로 방침을 정하는 것 외에 논평, 성명, 이규택·백승홍 의원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며 맞불을 놨다. 국민회의는 ‘망언의 주인공들은 누구인가’ 제하의 보도자료에서 이규택·백승홍 의원이 평소 공언과 달리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긴 경력과 언행 등을 거론하며 각각 저질·변절 정치인이라고 비난했다. 정동영 대변인은 논평에서 “지난 지방선거때 김홍신 의원의 ‘공업용 미싱’ 발언보다도 죄질이 더 나쁘다” 며 아예 죄질을 따졌다. 여기에 “인간임을 포기한 망동” (정균환 사무총장),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막가파식 발언” (김옥두 지방자치위원장) 등 지도부의 분노가 더해졌다.

아태재단 최재승 후원회장도 “인격모독적 외설발언”, “국회에서 화투판이나 벌이던 한나라당 의원들이 또다시 화투판에서 나오는 저속한 일본말로…” 등의 내용으로 성명을 냈다.

이렇게 험한 말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은 검찰의 정치권 사정이 점점 구체화하고 여권의 의원영입이 가속화하면서 한나라당 정치인들의 불안감과 반발심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국세청 불법 선거자금 모금 사건과 관련해 정기국회가 공전하고, 국민회의가 이회창 ‘몸통론’ 까지 들고 나오는 등 정치판이 엉망진창 상태로 치달으면서 한나라당 인사들의 방어본능이 격한 저항발언으로 이어졌으리라는 것이다.

국민회의도 지난주초부터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투쟁에 나섰던 70~80년대에 신군부에 잘 보여 대법관이 되고, 양지쪽만 골라 다녔던 이회창 총재” “이 총재는 정치초년병으로서 의회주의 정신을 아직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 “국세청 불법모금 사건은 국사범 사건, 서상목 의원은 국사범” 이라는 등 파상공세를 퍼부어왔다.

무대 뒤의 험담, 정도 지나친 내용 많아

무대 뒷편에서 역시 적나라한 험구전이 전개돼 왔다.

한나라당 고위인사는 사석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그저 “김대중이…” 하는 식으로 불렀다. 또 한나라당에서는 청와대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DJ나 YS나 똑같다” 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사정과 직접 연관해서는 “시집살이로 고생한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더 고약하게 군다더니 야당을 해본 DJ가 더 독하게 야당을 탄압한다”, “(국민회의 고위 당직자를 지칭해) 청와대와 다른 뜻을 펴면 밀려날까 두려워 DJ홍위병의 제1선에 나선 사람” 이라는 등의 악담이 계속됐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DJ와 국민회의가 개혁 주체세력도 없는 주제에 무슨 개혁을 할 수 있느냐” 고 폄하했다.

여기에 한나라당을 무시하는 국민회의 인사들의 말도 만만치 않았다. 여권에서는 이회창 총재가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몰라서 얘기가 안통하는 정치 아마추어’ 로 통한다. 한 고위 인사는 이 총재에 대해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때 한번 국회의원에게 혼난 적이 있는데 많이 컸다” 며 “이 총재는 민주화와 나라건설에는 삽자루 한번 안잡아본 인물” 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여권 인사는 “원래부터 그 정도 수준밖에 안됐는데 법관때는 그게 좀 덮어져 있다가 정치를 하면서 드러난 것” 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에 대해서는 심지어 ‘쪼다’ 라는 막말까지 나올 정도였고, 조순 명예총재도 “이 총재와 마찬가지” 라며 도매금으로 넘어가는게 여권의 분위기였다. 정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한 여권 인사는 이기택 명예총재에 대해 “그 X하고 일을 같이 해봐서 잘 아는데 정말 상종하지 못 할 사람”, 중진인 S, K 의원에 대해서는 “나이에 비해 너무 노회하다” 고 평가했다.

유권자들 “어제 오늘 일이냐” 냉소적 반응

유권자들은 물론 이런 현실을 새삼스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우리 정치인들 수준에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는 지극히 냉소적인 반응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정치인들 말싸움이야 뻔한 거지만 대통령에게까지 막말을 하는 건 심했다” 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가지 사례가 더 보태진다. 한나라당 의원과 당직자 등 400여명은 지난 8일, 국회에서 탈당의원들에 대한 ‘영정화형식’ 을 가졌다. 이들은 ‘근조’ 라고 적힌 검은 리본을 패용하고, ‘철새정치인은 가라’ 는 구호가 적힌 종이 박스 위에 영정 형식으로 만든 탈당의원들의 사진을 던져 놓고 불을 붙여 태웠다.

국민회의는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모독” 이라며 “이회창 총재의 극단적이고 불같은 성격의 소치” 라고 어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15대 국회에서 윤리위에 회부된 의원은 공업용 미싱 발언의 김홍신 의원을 비롯해 31명에 달하지만 제명, 경고 등의 징계 사례는 전혀 없다.

김병찬·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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