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교실] 남북관계, 정치는 멀고 경제는 가까이

09/16(수) 11:36

김정일은 8월말의 로켓 축포(?)분위기 속에 열린 제10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에서 예상을 깨고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재추대됨으로써 김정일 시대 개막을 공식 선언했다. 김정일은 당 총비서, 인민군 최고사령관과 함께 국가 최고권력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국방위원장을 맡아 실질적인 국가 수반이 됐다. 이로써 당과 군사를 통솔하는 명실상부한 북한 최고의 통치권자로서의 위상과 현체제의 안정성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김정일 사후 과도기적 국가운영체제를 정상화하고 권력 승계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시정연설은 90년에 열렸던 김일성의 제9기 1차회의 시정 연설로 대체함으로써 김일성 유훈정치와 그의 배후정치 유지를 암시했으며 예산문제를 포함한 경제 건설 계획 등 경제난 해결에 대해서는 청사진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물론 90년 이후 8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과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최근의 대외관계마저 악화되어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적 한계도 있다.

대미, 대일관계 개선에 주력

공식출범한 김정일체제는 향후 북한의 대내외 정책과 남북관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군사 우위의‘강성대국’건설이라는 모토하에 인민들의 굶주린 배를 어떻게 채워줄 것인가? 또한 우리의 햇볕정책과 금강산 관광사업을 비롯한 최근의 남북 경협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무장간첩 사건과 금강산 관광사업 추진, 영변 핵시설 사찰 수용과 로켓 시험 발사라는 북한의 이중성을 감안하건대 이를 정확히 예측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다.

지난 1차 회의에서 나타난 일련의 변화를 통해 이같은 의문에 대한 해답을 살펴보자. 이번 회의에서 처리된 주요의안은 헌법개정, 국가주석제 폐지와 김정일의 국방위원장 재추대, 국가지도기관의 선출 등 3가지이다. 대내적으로는 군사 우위와 군부 중심에 입각한 강성대국 건설로 군사화노선을 강화하는 한편, 주민들에 대한 조직적, 사상적 통제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군사 중시로 위축될 민수(民需)경제와 인민들의 생활고 해결을 위해 시장개방 확대와 대서방국의 경제 지원 확대를 위한 대미 및 대일과의 관계 개선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및 북일관계 개선 과정에서, 북한은 국방 안보문제에 있어서는 군사적 위협을 협상 수단으로 하고 경제지원 확대 성과를 기대하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핵합의 카드를 통해 경수로와 중유를 확보했듯이, 이 카드의 효과가 빛이 바랜 상황에서 미사일개발 및 배치와 수출 중지, 핵시설의 재가동 및 개발 등은 앞으로의 4자 회담과 북미 협상에서도 북한의 압박용 단골 협상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다.

김정일의 강성대국 건설 방식은 종래의‘경제-국방 병진’정책에서 이의 역순인 ‘국방_경제’으로의 전환과‘선(先) 사상과 군사 강국 건설 및 후( 後) 경제건설’을 의미한다. 이는 김정일이 외교와 경제 부문은 김영남 상임위원장과 홍성남 내각 총리에게 양도하면서도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을 겸임하여 당과 국방 사업에 전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점과 5명에서 10명으로 늘어난 국방위원 전원이 권력 서열(최고인민회의 주석단 호칭 순서) 20위내에 포진하고 있는 점, 그리고 최근의 로켓 시험 발사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민수 경제 낙후와 한정된 자원으로 국가가 인민생활의 수요를 충족시켜줄 수 없는 상황에서, 군사 우위 및 군부 중심의 군사화 노선이 강화됨에 따라 노동자와 농민 등 민수 부문에서의 자원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부분적 시장경제제도 도입

체제 이완과 불안 요인이 될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개정 헌법에서는 개인의 소유 및 거래를 확대 허용하는 부분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하고, 제한적이나마 시장 개방을 장려 확대하도록 명시하고있다. 우선‘텃밭 경리를 포함한 개인 부업 경리’를 인정한데 이어,‘그밖의 합법적인 경리 활동’을 추가 인정했고‘거주여행의 자유’를 신설했다. 이로 인해 개인 상업, 특히 농업과 가내 수공업 중심의 생산과 거래가 활성화될 전망이며, 장마당과 암시장도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개정 헌법 제36조에서‘대외 무역은 국가 또는 사회협동단체도 담당’할 수 있도록 규정하여 대외 무역 주체가 다원화됐다. 이로써 광명성총회사와 대성무역총회사 등 그동안 대외 무역을 담당해 온 단체들의 대외 교섭 권한과 자율성을 대폭 강화하여 대외 무역 활성화방안을 마련했다. 또한 제37조에서는‘특수경제지대에서의 여러 가지 기업 창설 운영을 장려’한다고 되어 있어 남포 원산 지역의 보세가공무역지대 및 금강산 지역의 관광 특구 지정 등 개방지역과 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일련의 조치는 자력갱생에 의한 경제난 해결의 한계를 절실히 인식하고 시장 개방 확대, 무역제일주의, 수출산업 및 관광사업 육성을 통한 외자 유치와 외화벌이에 더욱 주력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군부 중심의 위기관리체제와 대서방국 경제 원조 확대를 위한 관계 개선이라는‘위협과 협상’의 벼랑끝 외교 전략은 남북한간의 정치 군사적 관계와 경협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전망이다. 남북 관계에 있어서 정치 군사측면에서는 당분간 대결과 긴장 국면이 지속될 것이나, 경제분야에 있어서는 실리 추구를 위한 민간 차원의 경협을 확대해 나갈 전망이다. 우리 정부의 정경분리원칙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북한도 당국자간 회담과 민간 차원의 경협을 따로 분리하는 이른바‘따로국밥’식 남북한 정치_경협 관계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경협, 전략적 차원서 확대될 듯

북한은 남한 당국자 배제 원칙하에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이 정치 사상적으로 북한 체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어 당국자 차원에서의 남북 관계 개선 노력에는 종전의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할 것이다. 이는 지난 8.15 경축사에서 밝힌 김대통령의 대북 제의에 대해 북한이 5개항의 부정적 반응을 보인 점에서도 입증된다.

그러나 체제 유지와 경제난의 핵심인 외화난 해결을 위해 대규모 외자 유치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남북 경협은 그 자체는 물론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환율이 다소 안정되고 정부의 경협 활성화 및 일관된 정경분리기조가 유지된다면, 위탁가공 및 대북 투자사업이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는 반복된 냉온탕식의 남북 교류 협력과정에서 많은 역사적 과오를 체험해왔다. 따라서 새정부는 일련의 크고 작은 정치군사적 사건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정경분리 원칙하에 민간부문의 경협 지원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형성된 남북한 상호 신뢰가 당국자간의 회담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발전적 차별성에 정책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한편 성급한 기대이기는 하지만, 민간 차원의 경협이 확대되면서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 당국자간 접촉 기회가 늘어날 경우, 북측대표는 내각 총리인 홍성남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로 인해 정상회담보다는 특사 교환이나 총리 회담, 각료급 회담 형태로 진행될 것이다. 기업들도 수익성과 경제성을 무시한 경쟁적 진출보다는 기업 규모별, 사업별, 업종별로 공동 진출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북한이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고 현실적으로 협력이 가능한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

홍순직·현대경제연구원 통일경제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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