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으려면 합쳐라" 합병못한 은행들 짝찾기 고심

09/24(목) 11:18

짝을 찾지 못한 노총각 노처녀의 심정은 어떨까. 자의든 타의든 남들은 다 배필을 찾는데 자신만 혼자라면 아무리 확고한 독신주의자라해도 왠지 불안하고 뒤쳐지는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상업+한일에 이어 하나+보람, 국민+장기신용까지 거센 합병 회오리가 지나간 요즘 은행권의 최대관심은 홀로 남은 은행들의 거취다. 특히 무수한 ‘스캔들’ 에도 아직 배우자를 찾지 못한 조흥 외환은행의 장래가 그렇다.

엄밀히 말해 이들 은행이 원하는 것은 독신이다. 합병의 불가피성은 시인하지만 합병 없이는 정부지원이 없고, 정부지원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으니 마지못해 그러는 것일 뿐 결코 합병시장에 ‘손들고’ 나선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은행이 과연 단독생존을 할수 있을지, 아니면 합병급류에 휩쓸리고 말지, 이 경우 누구와 백년가약을 맺을지, 현재로선 워낙 변수가 많아 쉽게 점치기 어려운 상태다.

외환은행, 당분간 독자생존 길 걸을 듯

우선 외환은행은 합병을 바라지도 않지만,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대주주인 코메르츠은행 때문. 주식가격이 액면가를 밑도는 현 상황에서 합병으로 정부지원을 끌어내려면 감자가 불가피하나 불과 한달반전 합작계약을 맺은 코메르츠은행에게 경영책임(감자)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다. 외환은행 고위관계자는 “코메르츠의 지분참여는 단지 한 은행이 달러를 끌어왔다는 차원을 넘어 IMF이후 해외자본유치에 성공한 첫 사례라는 국가경제적 의미를 갖는다. 만약 합작계약서에 잉크도 채 마르기도전에 코메르츠에 감자를 강요한다면 한국의 대외신인도엔 치명적 금이 가게 된다” 고 말했다.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살아날수 있지만 감자나 합병이 불가능해 정부가 직접 돈을 대줄 수는 없는 상황. 이것이 바로 외환은행해법의 딜레마다.

여기서 정부는 외환은행 최대주주(33.6%)인 한국은행의 증자참여란, 고육지책에 가까운 기발한 아이디어를 짜냈다. 한은자금은 비록 공적자금이지만 정부돈은 아니며 한은자금을 외환은행에 주사할 경우 특혜이기에 앞서 대주주의 권리행사가 된다. 따라서 정부는 한은의 외환은행 출자를 통해 ‘감자없이 정부 직접지원은 없다’ 는 명분도 지키고, ‘공적자금투입으로 외환은행을 살린다’ 는 실리도 얻으려는 것이다. 이달초 이규성 재정경제부장관, 전철환 한은총재,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 강봉균 경제수석 등 4자 고위회동에서 정부는 한은측에 출자을 정식 요청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같은 해법이 위법소지가 크다는데 있다. 현행법상 한은은 영리기업의 주식을 보유할 수 없고(한은법 103조) 외환은행지분은 매각에 필요한 기간중에만 예외적으로 보유할 수 있다(외환은행법 폐지법률 부칙8조). 따라서 한은이 외환은행 주식을 추가취득하는 것은 법취지에 명백히 어긋나고 한은도 이 때문에 증자참여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달리 방법은 없어 보인다. 외환은행측도 한은출자를 전제로 코메르츠와 추가 출자협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한은출자가 가능하도록 법적 유권해석을 내리든, 그것이 안되면 법을 개정하든 외환은행은 한은자금을 수혈받아 당분간 독자생존의 길을 걸을 전망이다.

조흥은행, 합병·외자유치 ‘안개속으로’

조흥은행의 처지는 훨씬 절박하다. 같은 조건부승인 은행중 상업과 한일은 합병으로, 외환은행은 코메르츠의 후광으로 각각 생존이 확정됐지만 조흥은 합병도 외자유치도, 따라서 정부지원도 확약받지 못한 상태다.

재미사업가 김종훈씨의 ‘애국투자’ 를 김대중 대통령의 방미성과로 엮어 일찌감치 외자유치를 추진했지만 조건이 안맞아 교착상태에 들어간지 오래다. 특히 위성복 행장 취임이후 ‘선합병 후외자유치’ 전략으로 신한 보람 주택 외환 장기신용은행과 일부 지방은행까지 가장 많은 구애의 손길을 뻗치고 가장 많은 ‘결혼스캔들’ 에 올랐으면서도 결국 짝짓기에도 실패했다. 더이상 카드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 국민+장신의 커플이 맺어진데에는 조흥은행의 숨은 역할(?)이 컸다. 신한과 보람에 대한 합병제의가 성과없이 끝나자 조흥은 8월께부터 장신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그러나 장신으로선 부실이 많으면서 만만하지도 않은 조흥이 버거운 상대였다. 여기에 금감위까지 조흥과의 합병을 측면지원하자 장신은 국민쪽으로 방향을 급선회, 전격적으로 합병을 선언한 것이다. 물론 국민도 외환과의 합병설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 은행의 합병선인이후 금융권에는 “서로 좋아서라기보다는 싫은 상대를 피하기 위해 맺어진 혼사” 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국민+장신의 합병사실이 알려진 후 위성복 행장은 이헌재 금감위원장을 방문,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처지를 털어놓았다. “나름대로 합병을 위해 여러곳을 노크해보았지만 이젠 마땅한 상대도 없습니다. 정부가 먼저 지원약속을 해주면 합병이든 외자유치든 계속 추진할테니 시간여유를 주십시요.”

정부도 난처한 형편이다. 구조조정을 덮어두고 경기부양쪽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한 이상 더이상 은행퇴출은 있을 수 없고 내키지 않더라도 당분간 조흥의 독자생존을 용인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따라서 조흥도 제일·서울은행처럼 대규모 감자후 정부출자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코메르츠와 같은 ‘방탄조끼’ 를 입지 않은 조흥으로선 합병에서 언제까지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만약 짝짓기할 경우 그 후보는 주택 제일 서울 등이 거명된다. 신한은 연내 6,000억원의 증자계획을 마련, 독자노선을 확정했고 한미도 외환처럼 합작선(BOA)문제로 당분간 합병바람에서 비껴나 있다.

재계출자 슈퍼뱅크 탄생 가능성도

조흥+주택은 대형화와 상호보완(시녀지) 효과가 모두 인정되는 비교적 바람직한 구도다. 주택도 비록 우량은행 범주에 속하긴하나 주택금융만으로 계속 버티기는 어려워 머지않아 합병파트너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형편이다. 다만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은 김정태 행장이 합병같은 ‘거사’ 를 도모하기엔 내부적으로 한계가 있어 다소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일 서울은 ‘합병’ 이 최선의 카드가 아닌 마지막 선택이다. 두 은행 모두 일차적으론 해외매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는 주간사인 모건스탠리를 통해 투자자를 모집, 10월15일께 공개경쟁입찰에 붙이되 상품가치가 높은 은행부터 판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매각방식은 기존 정부지분 매각 아닌 1조6,000억원규모의 신주를 발행, 매각함으로써 새 주인의 지분율이 51%선이 되도록 한다는 것. 정부지분을 팔지 않고 남겨두는 것은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권한은 전적으로 넘겨주되 책임을 정부가 분담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두 거대부실은행을 인수하겠다는 해외투자자가 선뜻 나타날지는 미지수. 하나라도 팔리지 않을 경우 김우중 전경련회장이 야심차게 추진중인 재계출자 슈퍼뱅크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다. 실제 김 회장은 제일은행인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만약 해외매각이든 국내재벌인수든, 제일 서울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한다면 남는 길은 타 은행으로의 합병뿐이다. 이미 조흥은 제일에 반공개적으로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그래서 합병바람은 결코 가라앉은 것이 아니다.

이성철·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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