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 눈물바람이 분다"

09/29(화) 15:39

마주선 한쪽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그 눈물을 닦아줄 아무 힘도 없었다. 단지 자신이 이끌고 있는 집단을 살리기 위해 눈물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울뿐.

9월15일 오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 14층 회의실. 전날 오후부터 시작된 협상은 20여시간이 넘게 마라톤회의를 이어갔다. 협상 당사자는 9개은행(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외환, 평화, 강원, 충북) 은행장과 노조대표자들. 생존 조건으로 정부로부터 감원 등의 자구방안을 이행해야하는 처지에 몰린 은행들이다.

기나긴 협상. 협상 당사자들은 실마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정부가 이들 은행의 생존조건으로 내건 무조건적 대량 감원을 철회하는 것.

협상의 한 당사자인 은행장들은 사실상 정부의 대리인에 불과한 처지였다. 노조원들도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부르짖어야 했다. 현실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상대는 그들이 모시고 있는 은행장밖에 없었기 때문에.

‘선진은행 수준’ 도달 위해 40% 감원

접점없는 지리한 협상이 지속되고 있는 동안 협상장밖에서는 노조원들이 목 쉰채로 ‘공허한 외침’ 을 계속했다. “일방적 감원 철회하라….”

오전 10시께 협상장 주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순식간에 14층 절반이 경찰들로 메꿔졌다. 그리고 은행원 47명은 경찰에 의해 ‘닭장차’ 로 끌려갔다.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절규는 외마디 외침에 불과했다. 그러나 같은 자리에 있던 은행장들이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9개 은행에 ‘선진은행’ 수준의 생산성을 맞출 수 있도록 인력을 줄이도록 요구했다. 선진은행의 1인당 영업이익이 2억6,000만원 정도인 반면 국내 은행은 1억4,000만원 가량에 불과하니 40% 가량의 인력 감축이 불가피한 셈이다. 당장 은행들은 내년까지 1만3,000명의 인력을 추가로 내보내야 한다.

은행노조들도 분명 자신이 속한 은행의 생존, 더나아가 금융구조조정의 성공을 위해서는 인력감축이 불가피하다는 당위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감원이 왜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하필 ‘선진은행’ 이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40%씩이나 한꺼번에 줄여야 하는지에 궁금해한다.

또 40%를 줄이면 1인당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인지, 1인당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선진은행이 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해를 못한다.

은행노조가 파업이 몰고올 파장을 뻔히 알면서도 총파업을 공공연하게 밝히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왜 잘려야하는지’ 에 대해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원들은 자신이 속한 은행을 위해 힘을 다했고, 심지어 자신이 매일 출퇴근하는 지점은 수년째 흑자를 실현하고 있는데 무조건 나가라고 하는데 대해 궁금해한다.

납득 안가는 감원 “기댈 곳은 파업 뿐”

그렇다면 은행노조의 방침대로 총파업이 현실화된다고 가정하자. 총파업이 현실로 등장할때 사실 그 파장은 어느 누구도 가늠치 못한다.

지금까지의 은행파업이라는 것은 점심시간 집회등 업무차질이 적은 부분파업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은행의 파업은 곧바로 전면파업을 의미한다.

일반인의 입출금과 기업의 결제 차질은 우선 당장의 피해에 불과하다. 은행들은 현재 지점에 따라 대형지점은 30-40명 인원에 비노조원인 차장급 이상이 3-4명, 소형지점은 10명 안팎의 인원에 차장급 이상은 1명 정도에 불과하다. 노조원이 전부 파업에 동참할 경우 평소 인력의 10분의1이 입출금, 당좌결제, 어음교환 등 창구업무를 모두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은행측이 파업에 대비해 수립한 △간부급위주의 비조합원 일선지점투입 △조합원의 파업불참 유도설득 △전산자회사 인력활용 △퇴직자의 파트타임 고용방안 등도 전면파업에 대응키는 역부족이다. 전면파업은 결국 적지않은 기업이 부도에 이를 가능성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일부 지점의 업무마비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이런 미시적 결과뿐 아니다. 정부가 그간 애써 추진해왔던 금융구조조정은 일거에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국노총의 경고대로 노사정이 깨질 경우 국가 전체의 구조조정 작업이 원점으로 회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심각한 파장, 국가신인도에도 치명적

하지만 이는 국내적 상황에 불과하다. 감원을 둘러산 파업은 국가 신인도에까지 연결된다. 정부는 이미 현대자동차 사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데 따른 신인도 하락을 경험했다. 대규모 외자유치와 금융기관 해외매각 작업은 거대한 걸림돌 앞에서 휘청거릴 것이다.

이미 제2의 환란징후가 보이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그 파장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 갈수 있다.

은행 감원을 둘러산 노사, 노정간 갈등은 현재 내부적으로는 해결 기미를 보이고 있다. 열쇠를 쥐고 있는 금융감독위원회가 감원규모에 신축적인 입장을 보인데다 퇴직위로금에서도 종전 3개월에서 6개월까지 지급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퇴직위로금의 경우 남아있게될 직원분담금까지 합해 9개월 가량은 지급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노조측도 총파업이 몰고올 파장에 부담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노조측은 정부에 파업을 피할 수 있는 ‘당근’ 을 제시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노조는 △정부가 은행으로부터 받은 이행각서를 무효화하고 △노사자율협상을 보장하며 △감원이 얼마나 필요하며 그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정부측이 이같은 입장을 외곽에서만 때릴 것이 아니라 공식적이고 직설적으로 밝혀줄 것을 바란다.

양측의 이같은 접점찾기는 그러나 그리 녹녹치 못한게 사실이다. 당장 추석이 끝나고 나면 은행들은 일제히 명예퇴직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총파업의 암운이 짙게 드리운 셈이다.

은행 감원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여전히 진로를 알 수 없는 태풍의 눈으로 남아있다.

김영기·서울경제 정경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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