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죽암간척지, 삽 한자루로 일군 '축복의 땅'

09/30(수) 11:48

“먼지도 버리지 않는다는 생활철학으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한 농부의 끊질긴 집념이 척박한 바닷가 땅을 축복의 땅으로 탈바꿈시켰다. 전남 고흥군 동강면 죽암농장 대표인 김세기(金世基·78)씨가 그 주인공.

김씨가 억척스럽게 일구어 낸 죽암간척지일대에는 예년에 비해 무척이나 많은 비가 내린 올해지만 풍년을 예고하듯 황금물결이 넘실대고있다.

김씨는 23년전인 75년 고흥군 동강면과 남양면일대 죽암간척지 240만평 개발에 착수, 77년말 186만평을 논으로 바꾼 뒤 지금은 300여가구가 연간 2,800톤의 쌀을 생산, 52억여원의 소득을 올리며 풍요로운 삶을 사는 축복의 땅으로 일궈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사비를 들여 논 300㏊에 물을 댈 수 있는 남양면 침교저수지와 거군저수지를 76년과 85년에 각각 축조했으며 여기서 그치지않고 82년 고흥군 금산간척지 매립공사와 강진군 제2,4공구 간척지공사를 통해 간척지를 옥토로 만드는데 정열을 쏟았다. 이 일이 소문나자 당시 서산간척지공사를 추진하던 현대 정주영회장이 84년 이곳 죽암간척지를 방문한데 이어 김씨를 서산으로 초빙해 노하우를 배울 정도였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 김씨가 이곳 고흥땅에 첫발을 디딘 것은 지난64년.

김씨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나름대로 인생역정을 겪고 난 후였다. 한때 김구(金九)선생 휘하에서 정치지망생 시절을 보내기도 했던 김씨는 50년대초 당시 정치상황에 회의를 느끼고 정치뜻을 접었다.

고향인 함안에 내려와 축산과 원예로 생활하던 김씨는 당시 금융조합장(현 농업협동조합)의 추천으로 지도식산계란 농촌조직에 몸담고 “사막을 천국으로 만들수 있다”는 집념으로 당시 부산 동래 원예고등학교에서 우장춘(禹長春) 박사의 사사를 받기도했다. 하지만 당시 지도식산계가 지방까지 확산되자 정치조직이라는 오해를 받아 와해되고 김씨는 생활터전을 다시 마산으로 옮겨 축산일을 시작, 축산업협동조합 마산소장을 지내기도했다.

이후 5·16군사혁명이 터지자 김씨는 삶의 회의를 느낀 나머지 산으로 들어가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대관령 제주도 속리산 계룡산 등지를 돌아다니던 김씨는 마침내 운명의 무등산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서 한 친구의 권유로 낯설기만 한 고흥땅으로 발길을 옮기게 된다. 이에따라 김씨는 일제시대부터 추진해 오던 죽암간척지매립사업의 11번째 주인공이 돼 66년 매립공사면허를 딴 뒤 다음해 공사에 들어갔으나 69년 정부에 매립권을 회수당한다. 이후 김씨는 인천으로 잠시 옮겨 부두공사 현장 골재납품과 토목공사등을 통해 자금을 모아 73년 매립권을 정부로부터 다시 받고 75년 공사를 재개, 77년말 간척지공사를 마무리하게 됐다.

간척지매립사업에 뛰어든지 10년만에 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던 김씨는 생활이 어려웠던 농민들에게 평당 100~300원을 받고 간척지를 분양하고 자신의 말처럼 ‘울타리없는 200만평 공화국건설’의 꿈을 이루게 됐다.

현재 186만평 농토중 30만평을 직접 짓고있는 김씨는 농장내에 벼건조기및 도정공장등 전과정의 자동화시설을 갖추고 11명의 적은 일손으로도 1단지(908평기준)당 백미 20가마니를 생산해 내는등 전국최고의 명성을 얻고있다.

또한 톱밥과 축분을 이용한 자동퇴비생산시설을 갖추고 한해 3,000톤의 비료를 생산, 3억7,000만원의 경비를 절감하고있다.

이와함께 자가생산한 사료로 소100여마리를 키우고있으며 보리를 재배해 연간 6,000여만원의 부대수입도 올리고있다.

한사코 기자와의 인터뷰를 거절하던 김씨는“가뜩이나 농촌현실이 어려운데 나만이 잘사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며 “처음에는 배고팠던 시절을 생각하며 식량 자급자족을 목표로 간척지매립에 매달렸지만 지금은 국민건강을 생각해 최고품질의 쌀을 생산하는데 힘쓰고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평소 공식화된 생활습관과 지금도 저녁은 수제비와 라면으로 떼울 만치 절약하며 사는 것이 방법이라면 방법”이라며 “남을 원망하지않고 내가 허물이 있는지 먼저 성찰하는 자세로 살아간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씨의 죽암농장쌀은 환경청으로부터 농약잔류량이 전혀 없다는 평가를 받고있을 정도로 농장식구들은 ‘생산제일, 건강제일’이라는 기치아래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있다.

평생 학교문턱이라고는 밟아본 적이 없는 김씨지만 퇴계(退溪)문학집과 남명학(南冥學)연구집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독파하는등 지금도 책 읽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결국 삽한자루로 시작한 김씨의 집념어린 노력은 불모지였던 이곳 죽암간척지를 질 좋은 쌀을 생산하는 전국 최고의 곡창지대로 만들고 만 것이다.

고흥=양준호·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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