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이 세계를 지배한다” 는 말이 있다. 정치판에서는 상대를 유연하게 다루는 술수가 될 수도 있겠고 외교무대에서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목표하는 바를 타국에 인내심을 갖고 설득한다는 뜻도 될것이다. 또 세계를 정복한 시저를 굴복시킨 것도 클레오파트라의 강인함 보다는 부드러움 이었다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부드러움에 의한 지배” 는 근년에 와서 골프무대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투어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98년 정규시즌의 막을 내린 PGA투어에서 데이비드 듀발이 259만달러로 상금 랭킹 1위를 차지하였다. 작년(188만달러)에 이은 2연패이다. 듀발의 스윙은 템포나 밸런스가 부드러움의 극치이다. 랭킹 2,3위를 차지한 메이저대회 참피온들인 마크 오메라(마스터스, 전영오픈)와 비제이 싱(비PGA)도 여타 골퍼들에 비해 매우 부드럽고 수려한 스윙을 가지고 있다. 반면 현대골프의 총아이자 빠르고 공격적이며 역동적인 스윙을 구사하는 타이거 우즈는 기대와는 달리 시즌1승에 상금 랭킹 4위에 그쳤다. 또 같은 계보로 칠수 있는 존 델리와 닉 프라이스, 부상때문이긴 하지만 오랜동안 필드를 떠나야 했던 그렉 노먼 등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두 부진을 면치못하였다.

재작년이었던가 제주도에서 처음 LPGA대회인 삼성월드챔피언십이 열렸을 때 어느 기자가 아니카 소렌스탐의 스윙을 보고 “저렇게 공을 쳐도 앞으로 나가는구나!” 하고 감탄 하였다 한다. 단순히 공을 앞으로 내보낸 것이 아니고 그녀는 이 대회 연장전 마지막홀에서 환상적인 칩인(칩샷이 그대로 홀에 들어 가는 것)을 만들어내 이글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렇게 부드러운 스윙, 스윙하지 않는듯한 스윙으로 아니카는 금년에도 LPGA 상금랭킹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번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박세리도 미국진출후 스윙이 몰라보게 부드러워졌다. 리드베터의 지도가 결정적이었겠지만 미국진출전에 비해 스탠스도 조금 좁아져 체중이동이 원활해 졌고 백스윙 톱에서 채가 앞으로 쏠려 내려오는 오버스윙도 없어졌으며 팔의 높이를 낮춤으로써 팔보다는 몸통에 의한 스윙을 구사하게 되었다. 템포도 물론 눈에 띠게 느려져 임팩트시에 힘을 모으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프로들의 경우에는 스윙이 역동적(다이나믹)인 것에서 부드럽게 교정된 경우는 비거리에서 손해를 보는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박세리의 예를 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투어에서 경기를 소화하다 보면 스윙스타일이 체력에 영향을 크게 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세리도 전체 42개 정규 LPGA대회중 금년에 27개만을 뛰었을 뿐이다. 따라서 크고 빠르며 역동적인 스윙을 구사하는 선수는 부드러운 스윙을 소유하는 선수에 비해 엄청난 체력의 추가 부담을 필요로 한다. 내년부터 미국에 진출하는 ‘땅콩’ 김미현 선수에게 주위에서 걱정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물론 작은 신체조건을 상쇄하는 길은 몸전체를 이용한 큰 스윙 이외에는 별도리가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지만

체력부담을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부드러움’ 의 강조는 아마추어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한 TV해설가는 부드럽고 작은스윙은 ‘돈 안들이고 이익 많이 내는 장사’ 라 하였다. 체력부담도 프로들만의 얘기가 아닌 것이 주위를 잘 살펴보면 전반 나인에는 제법 콘트롤된 샷을 구사 하다가 후반나인에는 엉뚱한 실수를 계속 범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수록 부드럽지못한 스윙을 하는 것을 알수 있다.

핏대를 올리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국회의원들이 별로 하는 일이 없듯이 빈수레 같이 요란한 스윙은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다. 물흐르듯, 구름에 달 가듯하는 부드러운 스윙이 점수관리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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