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울때는 적당한 시기가 있다고 한다. 즉 언어의 습득은 나이에 따라 그 효율성의 차이가 아주 크다는 얘기다. 사람의 대뇌에는 언어를 익히고 저장하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데 이것이 생후 9년이 지나면 급속히 그용적이 줄어들어 그때 이후의 외국어 습득은 아주 능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우리주위에서도 요즈음 여러가지 기회를 통해 길지않은 기간동안 해외체류를 하고 오는 아이들이 많은데 그들이 유년기에 속하냐 소년기에 속하냐에 따라 언어구사와 이해의 능력에 차이가 있음은 어렵지 않게 알수 있다.

박세리의 귀국과 발병 등으로 북세통을 이루던 지난 10월말에 펄 신은 그야말로 조용하게, 심하게 말하면 조금은 초라하게 귀국했다. 그리고 박세리가 기권했던 바로 그 대회의 마지막 라운드에 객원해설자로 중계석에 좌정하였다. 그때 그가 구사하는 우리말이라는 것이 필자로써는 참으로 놀랍고, 대견하고 조금은 고맙기 까지 하였다. 원래 별것 아닌것에 흥분과 감동을 잘하는 우리들이지만 어린나이에 미국이민길에 올라 20여년 그곳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렇게 완벽한 우리말을 방송을 통해 한다는 것은 그냥 지나칠수 없는 일이다. 그가 평생을 같이 한 골프무대에 우리말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과연 있었을까?

박세리 태풍으로 펄 신은 여러가지로 선의의 피해를 입었지만 그도 한때는 미국에서 알아주는 골퍼였다. 박지은이 금년에 우승을 차지하여 타이거 우즈에 비교되었던 US아마추어 참피온쉽을 그는 1988년에 제패하였고 여타의 아마대회를 휩쓰는 업적으로 결국에는 세계 여자 아마추어팀선수권대회에 미국대표로 출전하여 우승을 차지하기 까지 하였다.

이렇듯 화려했던 아마추어 성적에 비하여 프로데뷔후의 여정은 그야말로 고생 막심한 가시밭길 이었다. 설상가상으로 93,94년 시즌은 손목과 무릎부상 까지 입어 몇몇 성급한 전문가들은 그가 재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했다. 161㎝의 작은키와 220야드에 불과한 드라이브 비거리, 내세울 것 이라고는 80%가 넘는 드라이브샷의 페어웨이 안착률과 정교한 숏게임 밖에 없는 그에게는 결코 지나치지 않은 평가이었을런지 모른다.

그런 그가 프로가 된지 만8년만에 출전대회 165개 만에 31세란 적지 않은 나이로 스테이트팜레일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 하였다. 박세리가 엄청 잘해주어 본인도 자신감을 갖고 열심히 하다보니까 우승도 하더라는 그 겸손한 인터뷰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사실 그는 지난 한해동안 미국 샌프란시스코 고모집에 머물며 1년 내내 투어를 따라다니며 고생을 많이 한 서지현 선수와도 자주 교류하고 많은 조언과 도움을 준 것으로 일려져 있다. 박세리와 같이 대기업의 전담 후원팀이 있어 모든것을 관리해준다면 더더욱 바랄것이 없겠지만 여건이 안되는 서지현 같은 선수에게 펄 신 언니의 도움은 물심양면 공히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또 금년 겨울에는 LA쪽에서 두사람이 훈련도 같이 하기로 했다니 더욱 흐뭇하다.

펄 신이 방송에서도 얘기를 했듯이 그는 자신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미국에 진출할 우리의 기대주들에게 큰언니로써의 역할이 기대되고 또 정신적 지주역할도 할 것 같다. 지난 11월11일 원주의 오크밸리에서 열렸던 스킨스 대회의 총상금중 30%가 주니어 후원금으로 간다고 하자 펄 신이 그렇게 좋아 했다고 하며 그도 자기 몫의 상금중 절반을 쾌척하였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한 애정, 미국이란 미지의 땅에 도전하여 뭔가 이루려고 애쓰는 후배들에 대한 자상한 배려, 산전수전 끝에 이뤄낸 인간승리가 있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그에게 부디 든든한 우리나라의 스폰서와 든든한 신랑감이 빨리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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