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락원' 베끼기 조차도 엉성한 '실망원'

09/24(목) 11:56

‘실락원’(감독 장길수)은 느낌의 영화다. 전형적인 남녀의 탈선과 불륜이면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느끼도록 하려는 영화. 주인공의 신체적 감정과 느낌에 충실, 관객들의 공감을 자아내려는 그런 에로무비다.

그러나 영화는 그 느낌에서 실패했다. 끝없이 탐닉하는 섹스는 관음증에 편승한 단순한 포르노그라피에 머물렀고, 그나마 어색한 흉내로 끝났다. 섹스가 존재의 확인으로 선택될 만큼 설득력을 갖지 못한 상황설정, 그속에서 이뤄지는 열정적이지 못한 인물들의 행동, 현실을 잊은 듯한 대사와 배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원작인 일본 와타나베 준이치(渡邊淳一) 소설과 한발 앞서 만들어진 모리타 요시미츠(森田芳光)감독의 영화와는 어떻게 다른가. 소설의 성공은 섬세하고 노골적인 섹스묘사에만 있지 않다. 사회성이 더 크다. 두 남녀가 그럴 수 밖

에 없는 이유를 집요하게 묘사한다. 신문사 출판부장으로 밀려난 남자를 절망으로 옮아매는 것은 일본의 경제위축에 따른 사회적 소외. 그것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파괴한다. 여자를 벼랑으로 몰아가는 것은 가정이다. 거세된 가정에서 그는 어떤 향기나 즐거움도 느낄 수 없다. 때문에 소설은 사회구조적 리얼리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과정과 결말에 당위성을 유도한다.

반면 일본영화가 선택한 것은 쾌락적 탐미주의다. 감독은 서사적 묘사보다는 영상의 이미지가 주는 느낌과 정서로 예술성으로 옷을 입고자 하는 관객들의 이탈심리에 교묘히 영합한다. 이는 카메라의 움직임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배우의 프로정신. 그것은 그들이 실제 상황에 빠진 것처럼 깊은 느낌과 감정을 전달한다. 단순히 우리의 영화현실이나 관습과 다른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순 없다.

우리 ‘실락원’도 열심히 벗었다. 그러나 벗기만 했다. 어느 쪽도 제대로 베끼기조차 못한 영화는 관객이 예상하는 지점에서 어김없이 50대 유부남 지우(이영하)와 30대 유부녀 은교(심혜진)의 불륜현장을 나열할 뿐이다. 여자가 남편의 무관심으로 절망할 때, 아버지의 죽음으로 검은 상복을 입고 슬퍼할 때, 폭풍우가 몰아치는 해변에서 돌아갈 수 없게 된 여자와 남자는 정사를 벌인다. 마지막 희망을 움켜진 두사람의 섹스는 처절하며, 처음 육체적 희열을 느낀 여자는 끝없이 그 느낌을 소설에 있는 그대로 옮긴다. 그리고 마지막 행복을 지키는 방법으로 두 사람은 가장 극단적인, 벌거벗은 채 독약을 나눠 마시고 죽는 방법을 선택한다.

나름대로 근거를 두려고 했다.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은 남자를 더욱 허무주의에 빠지게 했으며, 아버지의 죽음에 이은 어머니의 몰이해는 여자를 되돌아 올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지우가 “은교”라고 부르고, 여자가 남자에게 “나빠요”“미워요”“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라며 가슴에 안기는 60년대식 말투와 행동만큼이나 낡고 엉성하다. 아름다운 순애보이기를 희망하며 반복하는 정일성 촬영감독의 엿보기 영상구도만이 애처로울 뿐이다.

/김민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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