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세상읽기] "비디오가 애를 가르친다?"

09/30(수) 11:40

그들에게는 비디오가 선생님이다. 집에서도, 놀이방에서도, 유치원에서도 아이들에게 비디오보다 좋은 교재는 없다. 갓 태어난 아이들도 빠르고 현란한 영상에 넋을 잃는다. 오죽하면 2년 전에는 아예‘애 봐주는 비디오’이름을 단 비디오까지 나왔을까.

이런 경우도 있었다. 갓난 아이는 먹고 잘 때 말고는 울기만 했다. 엄마는 아이를 안고 살다시피 했다. 그 날 저녁도 팔이 아플 정도로 아이를 안고 거실을 왔다갔다 하던 엄마. 우연히 신기한 사실을 알게 됐다. 아이가 CF가 나오자 울음을 그치고 정신없이 TV만 쳐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CF가 끝나고 드라마가 시작되자 관심없다는 듯 다시 울기 시작했다. 잠시 생각하던 엄마는 쾌재를 불렀다.“바로 이거야.”

깊게 생각해 보지 않고 그는 TV에 나오는 CF를 모조리 녹화했다. 그리고 하루 종일 녹화테이프를 반복해 아이에게 틀어 주었다. 이렇게 신기할 수가. 아이로부터 해방! 영상의 위력을 실감한 엄마는 아이를 위한 비디오라면 주저없이 구입했다. 화면의 변화가 심하고, 자극적인 장면이 많을수록 아이는 좋아했다. 이렇게 비디오는 아이의 유일한 친구이자 선생님이 됐고, 아이는 ‘비디오드롬’에 빠졌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사람을 싫어하고 밖에 나가 놀기도 싫어하고, 심지어 말조차 잘 하지 못했다. 혼자 방 안에서 비디오만 보는 아이. 자폐증에 걸린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비디오는 무수히 많다. 모든 부모가 당연히 유익하다고 생각하고 사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회분위기를 타고 잽싸게 만들어지거나 수입되는 학습비디오. 국제화시대를 부르짖을 때는 어린이 영어비디오만 해도 수십가지가 나왔다. 또 한자공부가 두뇌 개발에 좋다고 하자 여기저기서 관련 비디오를 냈다. 노래방열풍이 불 때는 ‘어린이 노래방’이 활개를 쳤다. 그러나 아이에게 던져주고는 그만이다. 당연히 즐겁고 좋은 선생님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아이들의 예술성이나 사회성, 상상력을 강조하는 비디오들이 많다.

21세기는 독창성과 한 가지 뛰어난 재능을 가진 골드칼라시대가 될 것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영국 BBC가 제작한 ‘오페라박스’는 아이들에게 고전오페라‘카르멘’‘세빌리아의 이발사’‘리골레토’등 6편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영국 웨일즈 오페라단이 음악을 맡았다. 사운드트랙을 위해 102명의 음악가와 42명의 합창단이 동원됐다. 처세술이 강조되는 IMF시대를 반영하듯 ‘만화삼국지’도 있다.

‘애 봐주는 비디오’의 다음 단계로 나온‘애 가르치는 비디오’는 아예 아이를 달리기도 조금 하고, 수영도 제법 하고, 애쓰면 날기도 하는‘오리’에 비유하며 아이를 이제는 오리로 키우지 말자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점토로 만든 독일의 애니메이션‘플론스터’를 통해 창의력과 상상력을 가르친다. 애니메이션 자체도 점토, 수묵화등 다양한 모습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선생님이라도 결점은 있다. 좋은 선생님이라고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다. 정말 좋은 선생님인지 확인조차 해 보는가. 과연 아이와 끝까지 비디오를 함께 본 부모가 몇이나 될까. 그러니 보고난 후 아이와 함께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의문나는 것을 풀어주는 모습은 기대조차 하기 어렵다. 비디오는 보는 문화만이 아니다. 보기만 하고 생각하거나 대화하지 않으면 위태로운 인간이 된다.

이대현·문화과학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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