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어업협정] 어민들은 '죽을 맛'

10/15(목) 11:27

전남 여수에서 대를 이어 40년째 안강망어업을 하고 있는 정종운(60·여수수산인협 부회장)씨는 요즈음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선원들의 인건비와 부식비용은 날로 늘어나는데 어가(漁價)는 예전 절반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때를 맞춰 만선의 꿈을 싣고 한달에 두번 출어를 해보지만 어획량은 늘지않고 고기값은 떨어지기만 하니 적자는 매한가지다.

“지금 같으면 어업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지만 40년이나 해온 일이라 그만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적자볼 것을 뻔히 알면서 계속할 수도 없어 힘든 처지입니다”

현재 여수수산인협회에 등록된 안강망 어선은 172척. 이중 일부는 극심한 자금난으로 이미 도산한 상태이고 현재 147척이 연근해에서 조업중이다. 이들은 연간 700억원의 어획고를 올리며 여수 지역경제의 한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이 잡아올린 생선은 대교동 수협위판장 2군데와 국봉의 잠수기 수협위판장및 돌산 굴례리위판장 등 4곳에서 처리된다. 매일 새벽녘 고깃배가 들어오면 중매인들의 요란한 목소리와 분주한 손짓이 유난했던 이곳이지만 요즘은 예년같지가 않다. 수산물시장 전면개방이후 어가가 폭락한 상황에서 수협 대출금 이자 때우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서해남부 및 동중국해 어장확보가 더 큰 문제”

안강망등 어선을 소유하고 있는 선주들 역시 고기를 잡아봤자 손에 남는게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생선소비량이 급격히 감소했음은 물론이고 중매인을 통해 소매상에게 공급되는 국산 어종은 수입생선에 밀려 가격 경쟁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안정된 어가유지를 위해 산지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직거래 장터를 개설했지만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떨어져 활성화하기는 상당한 시간이 흘러야 할 것 같다.

사정이 이런데도 그동안 우리 어민이 자유롭게 활동하던 해역을 중간수역으로 규정한 최근 새 한·일 어업협정은 남해안 수산업종사자들에게 또다른 근심거리로 다가오고 있다.

여수수산인협회 박강호(65) 상무는 “새 한·일 어업협정의 대상인 대화퇴어장은 그나마 오징어 명태 등 단일어종에 한정된 어장” 이라며 “사실 앞으로의 문제는 우리 안강망업계의 주 어로지역인 다종의 고급어종이 잡히는 중국과 인접한 서해남부및 동중국해” 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중국과 일본이 양국의 입맛에 맞게 서해남부및 동중국해 일부를 자신들의 잠정수역으로 설정했다가 최근 일부 우리 어로지역과 겹치는 곳에 어로를 허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지역에 우리 어선의 어로행위를 제한하려고 하고 있고 중국어선들의 우리해역 침범및 해적행위도 부쩍 늘었다.

하지만 이들 제지해야 할 관계당국의 대책은 아주 미흡할 뿐 아니라 피해보상 역시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어민들은 속만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위기의 연근해어업, 감척 등 구조조정 서둘러야

수산인협회회원들은 최근 해양수산부와 국회 농업해양수산분과위로 보낸 호소문을 통해 우선 연근해 어선의 효율적인 척수조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수산당국이 그동안 생산증대만을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어업허가를 내준 나머지 어선의 폭주와 어족자원의 고갈로 연근해어업을 사실상 위기상황으로 내몰았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노후어선에 대한 전반적인 감척등 구조조정의 실시와 더불어 감척대상 선박의 실가보상과 어민들의 전업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국고보조 지원액은 어선시설물 교체 등에 들어간 정책자금 상환에도 못미칠 뿐 아니라 전업을 위한 융자금 역시 담보물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그림의 떡일뿐.

또한 정부가 농가부채 11조에 대해 2년간 상환유예 등 탕감대책 마련에 나선 반면, 산업폐기물과 생활오폐수 및 기름 유출 등으로 인한 피해는 물론 주변국의 배타적 어업수역 선포와 수입개방으로 인한 어가폭락 등으로 벼랑끝에 내물린 연안어업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는 것도 문제다. 수산업관계자들은 어가(漁家) 부채에 대한 탕감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와함께 현재 선주가 부담하게 되어있는 소모품 등 제반경비를 선원과 공동으로 부담할 수 있도록 선원법 등 관계법령을 개선하고 연근해어선의 선수품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면제해줘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은 또 수산물시장 전면수입 개방의 페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수입수산물에 대한 검사강화와 어종에 따라 8~20%를 부과하는 관세율을 대폭인상, 국내어업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산업협회 관계자들은 특히 수산업에 종사하는 선원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그나마 지난 62년 제정공포된 선원보험법 역시 시행령의 미비로 법이 사장돼 있어 선원의 안전사고시 사용주는 유가족에게 죄인취급을 받고 있다며 선원보험법 시행령을 조속히 제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근래 연근해어업은 어획생산량의 저조에도 불구하고 수입개방에 따른 대책을 세우지 못해 어가의 폭락에 따른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며 “연근해 어업에 대한 법적, 제도적 문제점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더불어 “정부는 이번 새 한·일 어업협정에서 보여준 소극적인 협상자세에서 벗어나 어민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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