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흐드러진 가을꽃, 그 향기에 취해서...

10/28(수) 15:09

가을꽃을 생각하면 향기부터 느껴진다. 숲가에 흐드러진, 산국이나 구절초의 은근하면서도 더없이 향긋한 꽃내음 때문인 듯도 하고, 가을꽃들이 한참일 때 숲속에서 배어나오는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낙엽의 냄새 때문인 것도 같다.

다시 가을 꽃을 생각하면 푸른 하늘이 먼저 떠오른다. 당장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흐를 것만 같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 그 청명한 가을 하늘을 지고 피어 나는 쑥부쟁이의 보라빛이 더욱 깨끗하고 아름답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을 꽃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어디 그뿐이랴. 계절이 두번이나 지나도록 진중하게 기다렸다. 결실의 계절에 피어 나, 오래도록 남아 있다 씨를 맺는 그 느긋함이 대견하고, 울긋 불긋 꽃보다 더 화려한 단풍빛깔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꽃색으로 피어나 의연하고도 기품있는 모습으로 다가서니 참 장하다.

그러고 보면 가을에 피어 나는 꽃들에는 유독 국화과 식물들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저 들국화라 부르며 사랑하지만 들국화란 이름은 시에는 나와도 식물도감에는 들어 있지 않다. 우리들의 들국화 가운데 노란색 꽃으로 피면 그건 산국이다. 우리 나라 야생의 국화로 말해도 좋을 이 산국은 그 향긋함이 빼어나 국화주도 담그고 향낭도 만든다. 꽃의 지름이 1cm남짓한 산국보다 더 큰 꽃송이가 달렸다면 감국이라 부르면 된다. 연한 분홍빛이나 흰색의 꽃을 피우는 서양의 마가렛과 닮은 들국화는 구절초이다. 잎이 얼마나 더 갈라졌느냐에 따라 산구절초, 바위구절초, 포천구절초 등등 많이 있지만 어찌되었든 이땅에 피어 나는 가장 풍성하고 아름다운 들국화임에는 틀림없다. 아주 신비스럽고 고운 연한 보리빛 꽃송이들로 피어 나는 들국화는 쑥부쟁이다. 쑥부쟁이도 알고 보면 바닷가에 갯쑥부쟁이, 울릉도에 섬쑥부쟁이, 줄기가 좀 엉성한 개쑥부쟁이 등등 여럿이 있다. 국화과에 속하는 가을 꽃들은 이 뿐이 아니다. 수줍은 각시취, 습지에 금불초, 개미취, 참취…. 국화과가 아니면 또 어떠랴. 아무리 바라 보아도 매혹스러운 용담, 매운 여뀌, 구름을 이고 피는 구름떡쑥, 머리에 투구를 쓰고 있는 투구꽃, 온 식물체가 모두 향긋한 향유. 모두 모두 이 가을 산야를 장식하는 우리의 들꽃들이다.

하지만 이 가을에 우리에게 들꽃들이 가장 소중한 것은 들꽃처럼 소박하고 향그럽고 지혜롭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일러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유미 박사·강릉수목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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