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오프라 윈프리, 이번엔 영화속 주인공으로 등

10/15(목) 15:29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그녀가 토니 모리슨의 소설‘애인’(Beloved)을 영화화하고 또 주인공으로 직접 나선다.

토니 모리슨은‘솔로몬의 노래’로 노벨상을 수상, 국내에도 이름이 꽤 알려진 작가.‘애인’은 토니 모리슨이 87년 출간한 작품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노예의 혹독한 생활을 다룬 이 작품이 마치 자신의 아픈 과거를 다룬 듯, 이 책을 접하자마자 영화화에 강한 집착을 보여왔다. 인종과 성을 다룬 작품에 독자로서, 흑인으로서, 또 겨우 14살에 아이(이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었다)를 낳았던 한 여자로서 큰 감동을 받았던 것이다.

“비록 영화제작에 문외한이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를 영화화해야한다는 의무감같은 것을 느꼈다. ”모리슨을 만나자마자 윈프리는 자신이 여주인공 세드역을 맡고 싶다고 간절히 요청했다. 이제까지 그녀의 영화출연은 딱 2번. 스티븐 스틸버그 감독의‘컬러 퍼플’이 그녀의 첫 출연작품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쟁취하는 여자, 오프라 윈프리.‘애인’을 읽은지 11년만에 그녀는 이 작품의 영화제작자로 나섰다. 물론 세드역도 따냈다. 윈프리는 16일부터 미국서 개봉될 이 영화의 흥행여부에는 관심을 두지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 될 것으로 자부하고 있다. 그녀는 “이 영화는 토크쇼를 통해 내가 하려고 했던 일- 사람들을 소개하는 일을 가장 큰 규모로 알리게 될 것”이라고 여기고있다. /송영주·주간한국부차장 지구촌 골칫거리 밀로세비치

슬라브족의 후예답게 발칸반도의 맹주로 군림하며 ‘대세르비아주의’의 기치를 치켜세워온 슬로보단 밀로셰비치(56) 신유고연방 대통령. 3년에 걸친 보스니아 내전으로 ‘화약고 발칸’을 만들었던 그가 이제 전세계를 상대로 일전불사의 모험을 걸었다.

밀로셰비치는 티토집권 구유고의 인텔리 공산당 출신. 동구가 몰락하기 직전인 87년 구유고연방의 공산당 제1서기에 올랐고 동구몰락 와중에는 세르비아민족주의자로 변신해 권좌를 유지했다. 91년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연방에서 이탈하고 92년 마케도니아와 보스니아까지 독립하자 세르비아대통령 자격으로 연방 잔류멤버인 몬테네그로, 세르비아와 세르비아내 보이다니아, 코소보자치주를 신유고연방으로 묶었다.

대세르비아 건설이라는 그의 과욕은 89년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함으로써 코소보 사태의 불을 지폈고 독립을 향한 보스니아를 가로막아 내전의 재앙을 불렀다. 그러나 95년 보스니아내전의 전범을 국제전범재판소로 넘긴다는 데이턴평화협정을 이끌면서 평화의 사도로 위장하는 재주도 부렸다.

코소보의 독립을 요구하며 세르비아에 맞서는 코소보해방군(UCK)을 진압하기 위한 8개월여간의 작전은 1,000여명의 양민희생자와 수만명의 방랑자를 낳았고 그는 ‘피의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서방측의 코소보사태 중지 요구에 “모든 보안군을 철수시켰다”고 연막을 쳤지만 실제로는 연방 정규군과 특수경찰병력 등 2만여명을 여전히 주둔시켰다. 또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에 간섭하는 것은 과정을 어렵게 만들 뿐”이라며 은근한 공격적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아직 보스니아내전의 배후라는 서방측의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라도반 카라지치등 거물 전범의 체포에 강한 반발을 보이는 것도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의 전쟁모험은 코소보문제와 함께 신유고연방의 일원인 몬테네그로마저 독립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대세르비아주의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일 지도 모른다. /국제부·이장훈차장

훌리오 이글레시아스 만학도로 변신

스페인 방송들은 최근 축구선수에서 세계적 팝스타로 변신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55)가 이번에는 학창시절 못다한 법학공부를 끝내겠다며 대학으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이글레시아스는 17세때 법학공부를 시작했으나 축구때문에 중도 하차했는데 교통사고로 발을 쓸 수 없게 되자 가수로 변신해 2억장이 넘는 음반 판매 기록을 보유한 세계적인 톱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 방송들은 스페인 동부 무르시아대학에 등록한 이글레시아스는 시험 하나만 통과하면 변호사 자격증을 따게 된다고 전했다. /정진황·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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