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형극동아리 '노올자', 꿈을 가꾸며 "노~올자"

10/14(수) 11:55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은 ‘품 청소년 놀이문화연구소’. 3층의 넓은 작업실 테이블에는 종이컵과 철사, 호일, 도화지 등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하다.

인형극을 위해 저마다 만든 갖가지 인형들을 보며 품평회를 하는 중이다. 철사와 호일을 이용해 만든 허수아비, 종이컵으로 만든 인형, 옥빛 저고리의 종이 새색시도 눈에 띈다.

10월3일 열린 인형극 동아리 ‘노올자’ 회원들의 정기모임 광경이다. 노올자회원은 중1에서 고2 학년에 이르는 청소년들. 서울의 유일한 청소년 인형극 동아리이다.

“공부에 눌려 자기표현을 잊어가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미래의 꿈이 뭔지, 뭘 좋아하는지 등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생각을 표출하도록 도와주자는 생각에서 만들었습니다.”

청소년 인형극 동아리모임인 ‘노올자’ 를 지도하고 있는 최윤희씨(26·일암청소년육성재단 사회복지사)의 설명.

상대방을 배려해주는 ‘이해의 폭’ 넓어져

청소년 인형극 동아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지난 4월. 일암 청소년육성재단이 운영한 지난 겨울캠프에 참여한 중·고교생들의 놀이공간마련을 위해 처음 시작됐다. 이 동아리에 참여한 학생은 모두 12명. 당시 유익한 놀이공간을 마련하자는 합의만 있었을 뿐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해지않았다. 영화나 연극 등 다양한 놀이장르가 논의됐지만 거수를 통해 인형극으로 최종 결정됐다. 어린이들이 같이 놀자며 대문앞에서 친구를 불러내는 말에서 따온 동아리이름 ‘노올자’ 는 서로를 도와가며 더불어 살자는 의미.

모임규칙을 정했다. 모임은 한달에 두번꼴. 공부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별명을 지었다. ‘사랑이’ ‘맑음이’ ‘푸르매’ ‘자유’ ‘단순이’ ‘나래’ ‘별빛’ 등등. 모임에서는 이름대신 별명을 부르기로 했다.

지난 1학기 동안엔 인형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 진지하기 이를 데없는 학습태도를 보였다. 호기심도 대단했다.

모든 인형극을 스스로의 힘으로 아이디어를 짜내 주제를 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형극을 구현한다는데 청소년들은 큰 흥미를 나타냈다.

직접 아이디어를 낼 뿐 아니라 청소년들은 연출과 제작, 조명 등을 직접 맡아한다. 때문에 주제잡기나 대본을 짜는 과정에서 불꽃튀는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청소년들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수렴하는 훈련과정이다. 고집불통인 한 아이는 불과 몇개월 사이에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줄 아는 성숙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고 한다. 자기 고집만으로 인형극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건전한 놀이문화, 청소년 인성교육에 도움

노올자 회원들이 지난 학기동안 인형극 지도를 바탕으로 제작한 실험작은 부모의 갈등과 자녀의 방황, 그리고 가족의 사랑을 그린 ‘가위가족 이야기’, 백두대간 기행을 통해 민족의 얼을 배우는 ‘손가락 인형의 백두대간 캠프가기’ 등 여러 편.

지난달 20일에는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5분 인형극을 만들었는데 학교생활에 대한 불만과 체벌을 당했을 때의 느낌 등 청소년들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표출됐다.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마음 속 상처였던 때문인지 인형극을 마친 후 청소년들의 표정은 전과 달랐다. 한결 밝아진 것이다.

노올자 회원들은 청소년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생활주변의 이야기를 주제를 잡아 올 크리스마스엔 또래 아이들이 있는 고아원이나 병원에서 공연할 계획이다.

인형극 강의를 맡았던 권혁기씨(36·연극연출가)는 “인형은 아이들이 즐겁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도구” 라며 “일상생활을 소재로 인형극을 만드니까 아이들이 대단히 재미있어 한다” 고 말했다.

오늘의 청소년문화에는 올바른 인성과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는 놀이문화를 발견하기 어렵다. 물론 이는 청소년들의 잘못만이 아니라 경쟁을 지향하는 사회와 기성세대들의 책임이 크다.

인형극 동아리는 공부에 찌들리고 폭력적 환경에 휩싸여 있는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놀이문화가 인성과 사회성에 어떤 효과를 가지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정진황·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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