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간은 미디어조작으로 길들일 수 없다"

10/21(수) 15:45

영화가 미디어에 대한 다양한 가설과 비판을 늘어놓는 이유는 뭘까. 미디어의 발달은 곧 의사소통과 정보전달의 혁명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인간은 자기가 아는 만큼 생각하고 행동한다. 미디어는 인간을 길들이는 무서운 도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두려움이 미디어의 폐단과 부작용을 끝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만약에 한 인간이 태어나자마자 완벽한 미디어의 통제와 조작을 길러진다면.

‘트루먼 쇼’는 바로 그 ‘만약’이다. 일종의 실험과 같다. 한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조작속에 놓였다. 그의 이름은 트루먼(짐 캐리). TV방송국은 그를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큰 스튜디오를 짓고 최다 연기자를 투입시켰다. 거대한 돔안에 300가구가 사는 작은 도시를 건설했다. 바로‘씨헤븐’이다. 어느 도시와 다르지 않다. 완벽한 컴퓨터 조작으로 아침이면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진다. 이따금 비도 온다. 마을 외곽은 해변이다. 여름이면 사람들은 해수욕을 즐긴다. 거리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가짜다. 마을사람은 모두 연기자들이다. 아내, 죽마고우, 물에 빠져 죽은 아버지까지. 보험사 직원인 트루먼이 출근할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인사를 나누는 이웃 노파도, 그가 길을 건널때 인사하며 바쁘게 지나가는 직장 동료도 모두 각본에 따른 연기다. 5,000대의 카메라가 마을 구석구석, 심지어 침실과 화장실까지 설치돼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한다. 단지 감시가 아니라 그 카메라에 잡히는 그의 모습은 곧바로 전세계에 ‘트루먼 쇼’란 프로그램으로 방영된다.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트루먼 뿐이다. 영화는 일찌감치 원형화면을 통해 관객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주고는 편안한 엿보기를 유도한다.

TV는 “24시간, 365일 편집되지 않고 전세계로 생중계합니다. 자신이 스타임을 전혀 모르는 전세계인의 스타, 트루먼 버뱅크…. 다큐멘터리 사상 가장 오랜 방영시간인 30년을 기록한 우리의 영웅 ‘트루먼 쇼’(감독 피터 위어)시간입니다” 라는 인사로 방송을 시작한다. 엿보기의 심리를 이용한 이 살아있는 다큐멘터리는 당연히 시청률 1위. 쇼의 연출자 크리스토프(에드 해리스)는 인기를 위해 마치 드라마를 연출하듯 그에게 갖가지 상황을 만들어 시청자들의 즐거움과 스릴, 슬픔과 감동을 준다. 바다에 빠져 실종된 아버지가 슬쩍 나타나고, 새로운 여자를 등장시켜 접근하게 한다. 카메라에 잡힌 그가 먹고 쓰는 물건들은 모두 광고다.

트루먼의 세상엔 진실이라곤 없다. 어느날 그는 세상이 모두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조금씩 의심한다. 자신의 자유가 이상하게 통제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씨헤븐’에서 떠나, 피지섬에 있는 헤어진 애인을 만나려 한다. 당황한 방송국과 연기자인 마을사람들의 교묘하고 필사적인 차단작전이 전개되고, 그 장면으로 프로그램의 인기는 더욱 높아진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내기를 건다. 과연 트루먼이 씨헤븐을 떠날 수 있는지 숨죽이며 TV를 지켜본다. 폭풍우를 무릅쓰고 바다를 항해한 끝에 거대한 벽앞에 도착해 절망하는 트루먼에게 크리스토프는 “나와 함께 있자. 바깥 세상에는 진실이 없다”고 말한다. 그 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스튜디오 벽의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간다. 환호하는 시청자들. 그것은 아무리 길들여도 인간의 자유는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기쁨이자, 미디어조작에 관한 통쾌한 야유다.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때론 작은 얘기가 더 크고 감동적인 법이다.

/김민지 영화평론가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