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이유있는 열광'

10/28(수) 14:56

96년 10월 서울 S대학 소강당. 300여명의 대학생들이 숨 죽인채 스크린에 투사되는 한편의 영화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바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왕국’. 영화가 끝난뒤 열띤 토론이 진행된다.

98년 9월 부산영화제 기간 수천명의 표를 구입하지 못해 발길을 돌린 곳은 다름아닌 일본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PC통신 대화방에 들어가면 서슴없이 이와이 순지의 ‘러브 레터’ 의 애틋한 사랑이 대화의 주제를 선점한다. 영화동호회에선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숏’ 미학정도는 기본이 되버렸다.

물론 이때까지 일본영화가 법적으로 상영이 금지된 상황이었다. 이제 금지의 벽은 무너지고 일본영화의 문은 열렸다.

1910년대 왕성한 제작, 90년대 들어 제2전성기

일본영화, 그무엇이 우리관객에게 이처럼 상상을 초월한 관심을 유발하는 것일까. 단순히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인가, 아니면 일본영화의 독창성 내지는 우리 영화가 갖지 못한 요인들이 있는 것일까. 일본영화의 역사, 현주소 그리고 영화산업은 이 물음에 어렴풋하게나마 답할 것이다.

일본영화는 우리 어른들에게는 변사의 구성진 목소리가 곁들어진 신파비극과 폭력, 섹스가 난무한 영화의 모습으로, 젊은이들에게는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다가선다. 일본영화는 100년 긴역사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1896년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를 수입, 상영한 것을 시작으로 일본영화의 장은 전개됐다. 1899년 게이샤의 춤추는 모습을 단순히 촬영한 ‘단풍놀이’ 가 효시를 기록하면서 일본 영화의 무대는 열렸다. 할리우드의 영향으로 니카츠, 쇼치쿠 등 메이저 시스템이 도입된 1910년대부터 왕성한 영화제작이 진행됐고 1930~50년대에는 일본영화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50년대에는 연간 500여편이라는 엄청난 영화가 만들어져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국가로 부상했다.

1960~70년대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침체기에 빠져들었던 일본 영화계는 80년대 메이저사의 붕괴와 함께 등장한 독립프로덕션이나 독립영화 감독이 주도가 돼 90년대들어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100년의 일본 영화역사를 수놓았던 감독들은 일본영화의 본질을 읽는데 중요한 단초이며 우리가 일본영화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준거가 된다. 일본에는 1차로 상영이 허용된 4대영화제 수상 감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라쇼몽’ 의 구로자와 아키라, ‘지옥문’ 의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하나비’ 의 기타노 다케시 등 유수 영화제 수상감독의 역량은 우수하다. 그러나 이들이 일본감독을 대표한다는 생각은 빙산의 일각만을 보게되는 오류를 범하게 한다.

일본미학 구현, 끊임없는 정체성 찾기

일본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작가주의와 정체성 찾기에 평생을 거는 감독들이다. 막강한 미국영화의 영향아래에서도 일본영화의 제 1전성기를 수놓았던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구로자와 아키라 등 3인거장들은 일본미학을 구현하는 자신들만의 작품을 쏟아냈다. 일본전통미학을 다다미 숏으로 승화시킨 오즈, 일본여성의 현실을 평생 그린 미조구치, 서양의 영화기법에 사무라이 정신 등 일본적 주제를 녹여낸 구로자와 는 진정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영화감독들은 텔레비전등장으로 침체기에 들어선 상황에서도 탈출구로 선택한 섹스·포르노영화에서 자신들의 작가적 역량을 발휘했다. 감독들은 포르노 영화속에서도 전위적인 실험을 계속했다. ‘게이샤의 세계’ 의 구마시로 다쓰미, ‘아베 사다의 실화’ 의 다나카 노보루는 포르노 영화를 통해 독창적인 영화세계를 그려나갔다.

제2의 전성기라는 90년대는 다양한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독립영화감독들이 90년대 방식으로 일본 풍경을 그리고 있다. 많은 신인감독들이 메이저사의 붕괴로 탄생한 프로덕션사를 통해 데뷔했다. 1989년 한해만도 30여명의 신인감독이 데뷔했고 90년대들어서는 매년 10여명의 젊은 감독들이 메가폰을 잡고 있다.

요즘 일본 최고의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지고이네르바이젠’ 의 스즈키 세이쥰, 빈약한 진실보다 화려한 허위를 그리겠다는 ‘러브 레터’ ‘불꽃놀이 앞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의 이와이 순지, 산업사회의 절정속에서 일본 사랑의 풍속도를 그리는 ‘하루’ ‘실락원’ 의 모리타 요시미쓰, 악랄한 상업주의 속에서 만화같은 삶의 방식으로 살아남기를 주장하는 ‘비밀의 화원’ 의 야구치 시노부 등은 90년대의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진정한 작가주의 표방이 일본영화의 원동력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일본의 상당수 감독들은 일본미학과 정체성을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그려나가는 진정한 작가주의를 표방하며 일본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이것이 일본영화의 원동력인 것이다.

일본영화를 보는데 놓쳐서는 안될 부분이 영화의 산업구조이다. 일본영화시장 규모는 15억달러(96년말 현재)로 미국(57억달러) 다음이며 세계에서 두번째로 활성화해있다. 극장도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자주상영관, 포르노전용관, 일반 개봉관 등으로 세분화해 있다. 시장규모가 크고 다양한 영화관의 존립은 갖가지 영화장르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도에이, 도호, 쇼치쿠 등 메이저사와 프로덕션사·독립영화감독의 역할분담이 잘 돼있다. 메이저사는 영화제작을 하고 있지만 프로덕션사나 독립영화감독들의 영화들을 배급 상영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90년대 들어 제작되는 영화는 연간 260편정도로 메이저 3사가 50여편, 독립영화감독이나 프로덕션사가 210여편을 만든다.

또한 위성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유무선 텔레비전 방송 역시 일본영화 발전의 동인이다. 쇼치쿠사의 소유사인 위성채널인 ‘위성극장’ 은 매일 여러편의 일본영화를 상영함과 동시에 극장 개봉전 영화를 방영해 일반인들의 영화의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많은 텔레비전 방송이 일본영화를 방영하거나 신인감독들의 데뷔무대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실험과 작품성을 모색하는 감독들이 존립할 수 있는 것은 이같은 영화산업환경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영화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우리는 일본영화 상영 허용을 계기로 진정한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배국남·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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