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아름다운 '불륜'이 아줌마들 움직였다

10/28(수) 15:00

성인 관객을 끌어들이는 신호탄인가. 반짝 현상인가.

추석 개봉영화 ‘정사’에 30~40대 주부관객이 몰리고 있다. 아무리 들쑤셔도 꿈쩍도 않던 그들이 움직이자 충무로에서는 “아줌마 관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흥분하는 분위기도 감지되는 반면 “반짝 움직이는 것 뿐이다. 지속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10월20일 오후 종로 3가 단성사 앞. 극장 앞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부터 주부관객들로 북적거렸다. 30~40대 주부들, 이른바 ‘아줌마 부대’가 뜬 것이다. 최근 극장가에서 이런 광경은 분명 흔치 않은 현상이다.

이런 모습은 단성사 뿐이 아니었다. ‘정사’를 상영하는 강남의 시네플러스, 씨티 극장도 비슷했다. 젊은이들로 붐비기 시작하는 저녁시간 이전에는 아예 아줌마 부대가 극장을 접수하는 듯 했다.

60~70년대에만 해도 아줌마 부대는 극장의 주 관객층이었다. 하지만 80년대 말부터 아줌마 부대는 자취를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최근에는 영화제작때 관객층 타깃에서 30~40대 주부들은 아예 제쳐두고 있는 실정이다.

관객 대부분이 여성, 아줌마 부대 비중 커

단성사에서는 ‘정사’에 유난히 많은 주부관객이 몰리자 이례적으로 관객을 연령별로 분류해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11일 관객을 20~30대와 40대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 3회(오후 4시께)의 경우 20~30대가 109명, 40대는 79명이었다. 4회(오후6시께)의 경우 20~30대는 95명, 40대는 103명이었다. 이날 관객의 대부분은 여성이었고 20~30대중에서도 30대 주부가 떼를 이뤘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줌마 부대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영화 제작사인 나인필림에는 이 영화 티켓을 300장에서 500장까지 단체로 구입하겠다는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보험 외판원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유를 물어보면 판촉용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성인들, 특히 ‘아줌마’들에게 ‘정사’가 판촉용으로 인기가 있다는 뜻이다. 아줌마 부대 중에는 계모임을 가진 후 단체로 오는 경우도 상당수라는 것이 극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사’에 왜 아줌마 부대가 몰리는 것일까. 최근의 성인대상 영화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실락원’과 비교해보면 어느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국내 대표적인 흥행감독인 강우석씨가 안성기 문성근 황신혜 심혜진 등 호화캐스팅으로 맘 먹고 주부관객을 잡겠다며 덤빈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은 아줌마 부대를 끌어들이는데 실패했다. 출연 배우는 물론 영화의 내용 자체가 성인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별 신통치 않았다.

파격적인 라스트 정사신으로 기대를 모았던 ‘실락원’ 역시 실패.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은 기대에 못미친다는 반응을 보였다.

두 영화가 아줌마 부대를 끌어들이는데 실패한 이유는 영화 자체의 문제도 있겠지만 기획 홍보에서 ‘아줌마’들의 생리를 몰랐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영화사는 물론 공연사, 음반관계자들 사이에 ‘아줌마들의 엉덩이를 들쑤시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말이 있다. 아줌마 관객들의 특징은 ‘아줌마 영화’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점과 엉덩이가 무겁다는 점.

영화사의 아줌마 관객 향한 ‘우회홍보 전략’

주부들은 ‘성인영화’라고 하면 이 말을 곧 싸구려 영화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국내영화중에 제대로 만들어진 성인대상 영화가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성인대상 영화는 대체로 허술하고 싸구려같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젊은이 대상 영화 중에서 그나마 자신들과 정서가 통하는 영화를 즐겨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아줌마들은 엉덩이가 무거워 영화 개봉 초반에는 잘 몰리지 않는다. 영화가 어느 정도 흥행 분위기를 타야 그제서야 몰리기 시작한다. 그때 쯤이면 어느정도 작품성이 입증된 상태이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적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젊은 관객들이 한물 지나갔기 때문에 영화보기가 한결 수월하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나인필름에서는 의도적으로 ‘정사’를 20대 젊은 관객들을 대상으로 한 영화라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나인필름 이유진 실장은 “‘정사’는 결국 아줌마 관객이 움직여줘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는 영화다. 하지만 내놓고 아줌마를 타깃으로 한다면 중년주부들은 물론이고 젊은 관객들도 외면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홍보 컨셉트를 젊은 관객 위주로 맞췄다. 그랬더니 결국 아줌마 관객들이 찌를 문 셈이 됐다”고 한다.

여기에다 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일고 있는 ‘연상여자 연하남자’의 사랑(또는 불륜)이야기가 중년여성들에게 먹히고 있다는 점도 한몫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극중 이미숙과 이정재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인가 불륜인가를 가지고 논쟁이 벌어지는 것도 흥행에 도움이 되고 있다. ‘정사’의 인터넷 홈페이지(www.jungsa.co.kr)에는 이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도덕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하지만 진실한 사랑이라면 아름다운 것이다. 육체적 탐닉이 아닌 진실한 사랑이길 바란다’(6070CJ)라는 의견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사랑을 위해 다른 사람은 상관치 않겠다는 생각은 어딘지 개운치 않다. 그들의 사랑이 진실된 사랑일까?’(인터네)라는 의견도 있었다.

아프고 안타까운 사랑이 아줌마들 끌어들여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글을 올린 한 관객은 “결혼 10년에 아이 둘 둔 엄마로서 많은 것을 동감하고 이미숙이 저를 대변하는것 같군요. 하지만 인생에서는 해서는 안될 것이 있는데…. 그래서 ‘정사’의 사랑을 아름다운 불륜이라 부르고 싶습니다”라며 애매한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영화 관객 분포는 상당히 기형적이다. 20대에서 30대 초반이 거의 대부분이다. 30대 중후반부터는 찾아보기가 힘들 지경이다. 이들이 극장에 와야지만 관객층을 넓힐 수 있는 것은 물론 다양한 소재의 영화를 만들 수 있다. 아줌마들을 무시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영화사에서는 이런 현실을 알면서도 당장 급해 제대로 된 성인 영화를 만들 엄두를 못낸다. 따라서 성인 관객들은 영화를 외면하고, 점점 더 그들이 볼 영화는 없어진다.

그런점에서 ‘정사’에 성인 관객이 몰리는 것은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많다. 이들을 지속적으로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된 성인 대상 영화가 나와줘야 한다.

이상목·일간스포츠 연예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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