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운명이 그들을 동교동으로 불렀다"

10/14(수) 14:58

김대중대통령이 5공시절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정권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 미국망명,복권등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겪을 당시 7년간의 뒷이야기가 ‘동교동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87년 10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소설가 이영옥(李永玉)씨가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 남궁진 이협 배기선 설훈등 7명의 동교동비서들의 입을 빌어 도피, 체포, 구금, 고문당했던 이야기들을 논픽션형식으로 엮어냈었으나 정치적 상황때문에 사장됐던 책이다.

‘동교동’과 ‘상도동’은 한국현대사에서는 행정지명이 아니다. 서슬퍼렇던 5공의 폭압통치하에서 야당 지도자 김대중, 김영삼씨를 일컫는 고유명사였다. 영어의 이니셜인 DJ나 YS라는 호칭보다도 더 은밀한 시대적‘은어’였다. 당시 언론들은 사형선고를 받았던 DJ를, 또한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던 YS를 부를때 유폐된 자택의 동네명을 따서 이렇게 불렀다. 이들의 이름조차 함부로 거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경찰에 의해 연금당하고 출입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때 공보비서, 수행비서,경호원, 운전수등은 울분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DJ와 YS의 분신들이었다. 93년 김영삼대통령이 취임한뒤 소위 ‘가신’이라고 불렸던 인물들이다. 시중에서는 이들을‘동교동 사람들’‘상도동사람들’로 불렀다. 이들은 자문교수, 재야인사등 밖에서 조언을 해주던 인물들과는 성격이 달랐다. 자신들의 지도자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지도자의‘실수’나‘약점’까지도 좋게 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YS맨인 홍인길씨나 DJ맨인 권노갑씨가 97년초 ‘한보비리’에 연루돼 감옥살이를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양 캠프전체의 멍에를 뒤집어썼던 셈이다. 본인들로서는 억울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깃털론’이 나왔다. 97년대선직전 동교동 비서출신들은‘YS가신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감안해“집권해도 공직을 맡지 않겠다”는 선언을 해야했다.

이들은 두 지도자가 말을‘번복’한 것도 비상사태하에서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어내기위한 전술적 선택정도로 양해했다. 이 때문에 87년 대선에서 ‘후보단일화’를 이루지 못해 노태우씨에게 정권을 내주고 말았던 쓰라림도 맛보았다. 86년11월 DJ가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한다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YS도 서독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대중씨가 사면 복권되면 그를 대통령후보로 지지하겠다”고 맞받았다. 직선제쟁취후 양 진영은 87년 대통령선거전 이 발언을 빌미로 서로 자기측으로 ‘후보단일화’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다가 둘다 출마해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그러나 이들의 충성심과 끈기로 양 진영은 92년,97년 대선에서 각각 승리했다.

80년‘서울의 봄’이후 있었던 동교동내 사정은 그간 몇번 책으로 나왔다. 대표적인 책이 DJ 전 경호원이었던 함윤식씨가 87년 대선전에 펴냈던 ‘동교동 24시’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대부분 야당후보를 흠집내기위한 흑색선전 책자로 이용되기도 했다.‘동교동사람들’도 이런 여권의 파상공세와 김대중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성 음해공작을 막아내기 위한 방어용 책자였을 것이다. 김대중씨의 전 경호실차장이었던 이수동씨가 쓴 ‘함윤식에게 보내는 편지’가 부록에 들어있는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5.18전후의 동교동 비서들과 안기부요원들의 머리싸움, 고문을 이겨내는 끈기, 각자의 도피행각과 외신기자들과의 숨바꼭질등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실화’가 들어있다. 예비역 장성으로 김대중씨를 끝까지 지지하다 85년 다방 화장실에서 사망한 박성철씨, 끈질기고 끈질긴 잡초 김옥두, 동교동의 협객 이협, 키신저 외교를 능가한 한화갑, 곱슬머리 풍운아 설훈, 구치소를 밥먹듯이 드나든 권노갑, 원숭이 철학자 배기선등 제목만으로도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저자는 이들을 ‘동교동의 파수꾼들’이라고 명명하고 “운명이 그들을 동교동으로 불렀다”고 결론짓고 있다. 남영진·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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