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과 면담, 각종 대북사업 추진에 합의함에 따라 한동안 잠잠했던 국내기업들의 대북경협 관련부서가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우, LG 등 그동안 경협사업에 적극 참여했던 대기업들은 특히 정 명예회장의 ‘방북(訪北) 보따리’가 예상외로 큰데다 경협사업을 바라보는 북한측의 자세가 전향적으로 변했다는데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존사업 확대를 적극 추진하는 동시에 신규 사업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북한 중앙방송과 로동신문등 북한의 주요 언론들이 정 명예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동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북한의 자세변화는 그동안 ‘폐쇄’정책에서 ‘개방’으로 선회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며 “북한의 자세변화에 따라 경협을 향한 기업들의 발걸음이 보다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명예회장과 김 위원장간의 만남은 경협사업의 지속성과 성공가능성을 둘러싸고 제기돼왔던 의혹과 불신이 상당부분 해소시켜 앞으로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경제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최초로 북한 남포에서 셔츠·가방·재킷등을 생산·판매하는 ‘민족산업총회사’를 운영하며 그동안 경협사업을 주도해왔던 대우는 이미 통일부로부터 설립승인을 받은 가전공장 설립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대우는 또 지난 연말 김우중회장 방북때 논의됐던 나진·선봉지역내 한국 기업 전용공단 조성과 합작호텔 건립도 구체화할 예정이다.

컬러TV임가공 사업을 벌이고 있는 LG도 기존 단순조립생산에서 한차원 수준을 높여 북한에 컬러TV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합영공장 설립을 가속화할 계획이다. LG는 또 지난해 정부로부터 협력사업자 승인을 받은 자전거공장과 가리비양식사업에 이어 장기적으로 통신·에너지·자원개발분야까지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다.

삼성은 그동안 물밑작업을 벌였던 나진·선봉 통신센터 운영사업에 다시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계열사들의 북한경협창구를 하나로 모은 특수지역전략위원회를 중심으로 각종 사업을 위한 타당성 조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견·중소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현대의 대북사업 투자규모가 워낙 크고 범위가 넓어 순조롭게 질행될 경우 그동안 소규모로 분산돼 진행되어온 경협사업이 대규모로 조직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금강산 샘물’개발을 위한 경협사업승인을 받은 태창은 현대가 북한과 광천수 개발을 합의함에 따라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사업이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부품 업체들도 상당히 고무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의 북한 자동차조립공장 설립은 그동안 불황의 몸살을 앓아왔던 자동차부품업계에게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며 “현대와 손잡고 북한에 진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こ코오롱(섬유및 섬유제품 가공·생산) こ신일피혁(피혁가공 및 의류제조판매) こ고합물산(의류·봉제·직물 제조판매) こ신원(의류·봉제사업) 등도 현대의 경협사업을 계기로 그동안 캐비넷속에 넣어 두었던 대북사업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이밖에 신발, 의류, 봉제, 주방용품, 플라스틱 등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도 현대가 추진하는 서해안공단사업이 본격화될 경우 북한에 적극 진출한다는 계획아래 사업타당성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중소업계 관계자는 “IMF이후 남아돌고 있는 중소기업의 노동집약적 사양산업 설비를 북한으로 이전시키면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현대의 서해안공단 조성사업에 대한 중소기업의 관심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경제단체와 공기업들의 움직임도 가속화되고 있다.

전경련은 북한산업인력 양성을 위한 직업훈련소 개소, 과잉·유휴시설 이전 등을 위해 조만간 방북키로 했으며, 기협중앙회도 박상희 회장을 비롯한 대표단 20명을 이르면 이달안에 북한에 파견, 전용공단 조성사업의 타당성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또 담배인삼공사는 북한 조선담배총회사와 잎담배 계약경작및 합영담배공장 설립을 위해 이미 사장등이 극비리에 방북해 이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도 10개사의 중소업체 대표를 이끌고 이달중에 중국 단둥이나 베이징에서 북한측 합작파트너와 남북임가공 상담회 개최를 추진중이다.

하지만 한켠에서는 대북사업을 보다 신중히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고 있다. 사업을 위한 분위기는 조성됐지만 그동안 진행상황을 볼 때 북한과의 사업은 정치적인 변수로 인해 좌절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의 방북성과를 계기로 그동안 수면아래 잠겼던 경협사업이 힘찬 날개 짓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으나 이 사업은 워낙 정치적인 변수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이를 신중히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진갑·서울경제 산업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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