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프로야구] 프로다운 '현대'의 예고된 우승

11/04(수) 11:27

8개 구단이 7개월여동안 각축했던 98프로야구는 현대가 페넌트레이스와 함께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신흥강호 현대의 부상, 용병시대, 급감한 관중 등으로 요약되는 98프로야구를 되돌아본다.

지난 10월 30일 아토스배 98프로야구 한국시리즈 6차전 현대-LG전이 벌어진 인천구장. 현대의 마무리 투수로 등판한 정민태는 5-2로 앞서던 9회초 2사후 LG 유지현의 타구가 하늘높이 솟아오르자 두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공은 중견수 이숭용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덕아웃에서 이를 잔뜩 노려보고 있던 현대 선수단은 전원 환호와 함께 구장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96년 프로야구에 뛰어든지 3년만에 현대가 한국시리즈 정상에 등극하는 것과 동시에 삼미-청보-태평양으로 이어지는 인천지역 연고팀이 처음으로 프로야구를 제패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기자실에서는 “이제야 프로야구가 프로야구다워지는구나” 는 말이 나왔다. 현대우승이 국내 프로야구사에서 갖는 의미를 함축하는 한마디였다. 그동안 자타가 공인하던 프로야구 최강은 해태. 투자에서 비롯됐다기 보다는 선동렬, 이종범 등 끊이지 않고 나타났던 불세출의 스타와 독특한 팀 컬러 등이 바탕이었다. 때문에 해태의 독주는 투자와 성적은 별개라는, 프로스포츠에서는 색다른 등식을 심어왔다.

하지만 현대의 우승은 국내프로야구에서도 더이상 이같은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었다.

타의 추종 불허하는 투자, 성적으로 나타나

창단 3년만의 우승을 선언한 올 시즌, 현대는 일단 투자라는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IMF 한파탓에 각 구단이 해외전지훈련을 꺼려했지만 현대는 과감하게 미국, 일본전지훈련을 실시했고 선수들에 관한한 ‘누구든 필요하면 데려온다’ 는 주의였다. 다른 구단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9억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포수 박경완을 쌍방울에서 모셔왔고, 빼어난 좌타자가 많은 LG와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할 경우를 대비, 시즌 중 6억원을 들여 역시 쌍방울에서 좌완 조규제를 영입했다. 용병도 거리낌없이 2명을 모두 뽑아왔다. 여기에 OB가 방출한 걸출한 2루수 이명수를 기민하게 뽑아올 수 있었던 행운도 따랐다. 또 경기력 향상을 위해 일본에서 3억원짜리 투구분석시스템을 도입한 것을 비롯, 근력강화기및 치료기를 사오는데 2억원을 들였다.

이같은 적공의 결과는 페넌트레이스때부터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막강이었다. 4월 하순부터 선두에 나서 역대 최단경기인 111경기만에 페넌트레이스 1위를 확정지은뒤 시즌 최다승타이기록(81승)을 세우며 정규시즌을 끝냈다. 한국시리즈서도 사실상 투타에서 LG를 압도했다.

반면 해태의 올 시즌 성적은 5위. 현격하게 저하된 전력탓에 하위권으로 분류되던 것과는 달리 김응룡 감독의 용병술과 특유의 끈끈한 응집력을 앞세워 비교적 선전한 결과였다. 하지만 앞으로도 올해와 같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는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2위 LG, 3위 삼성, 4위 OB 등 해태앞에 섰던 구단들이 모두 투자에 적극적이었던 팀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옛날의 영광만 반추하는 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밖에 OB는 좋은 재목들을 보유, 개막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으나 구슬을 제대로 꿰지 못해 시즌 내내 고전하다 준플레이오프에 턱걸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한화와 롯데는 시즌 중 사령탑을 교체하는 진통과 함께 7, 8위에 그치는 수모를 당했다는 점도 눈 여겨 볼만한 대목이었다.

최고 스타는 우즈, 박재흥 등 토종들도 분발

프로야구 최고의 상품은 스타다. 스타의 명도에 따라 관중수도, 수입도 달라진다. 박찬호, 선동렬, 이종범, 이상훈 등 해외파 스타들과 밝기를 경합해야하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98시즌 국내 프로야구에도 그들에 못지 않은 별들이 빛을 발했다. 그리고 그들은 기록을 남겼다.

올 시즌 최고의 스타는 뜻밖에 외국인이었다. 타이론 우즈(29). 메이저리그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던 그였지만 42개의 홈런을 기록, 92년 장종훈이 세운 한시즌 최다홈런기록(41개)을 경신하면서 페넌트레이스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완벽한 ‘코리안 드림’ 이었다. 특히 삼성의 이승엽과 벌였던 홈런경쟁은 미국의 마크 맥과이어(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새미 소사(시카고 커브스)의 그것과 비교되면서 프로야구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았다.

이승엽은 막판 부진으로 홈런왕자리와 기록경신을 우즈에게 넘겼지만 최소경기 20, 30홈런 달성, 월간 최다홈런기록(6월·13개)등을 수립하며 국내 타자의 자존심을 지켰다.

현대를 우승으로 이끈 박재홍은 96년에 이어 두번째로 ‘30(홈런)-30(도루)클럽’ 에 가입한 것은 물론 3년연속 ‘20(홈런)-20(도루)클럽’ 의 정회원으로 등록하면서 변함없는 호타준족을 과시했다.

투수쪽에서는 노장들이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현역 최고령인 LG의 김용수(38)가 철저한 자기관리로 다승왕(18승)에 등극, 후배들의 귀감이 됐고 해태의 이강철(32)은 10년 연속 두자리 승수, 10년연속 세자리수 탈삼진을 올리는 금자탑을 세웠다.

이와함께 해태의 이대진은 10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솎아내는 신기록을 세우면서 한경기 최다탈삼진타이기록(16삼진)에 빛났고 ‘무서운 10대’ 김수경(19·현대)은 팀의 김시진투수코치가 83년 삼성시절 세운 신인최다 탈삼진기록(154개)을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이밖에 ‘영원한 해태 사령탑’ 김응룡 감독은 6월7일 광주 삼성전에서 프로 최초로 1,000승을 달성, 프로 최고의 감독이라는 명성을 재확인했다.

흥행 ‘최악의 흉년’, 근본해결책 서둘러야

기록에선 예년에 비해 떨어지진 않았지만 흥행면에선 최악의 흉년이었다.

당초 98프로야구는 △IMF 한파 △해외파 스타들의 활약 △98프랑스월드컵 등의 요인으로 어느정도의 위축은 예상됐으나 그 정도는 심했다. 입장관중수가 10년전 수준으로 후퇴했을 정도였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집계에 따르면 올 시즌 페넌트레이스 총 입장관중은 263만9,119명으로 지난해(390만2,966명)대비, 32%나 감소했고 한 경기 평균관중도 지난해(7,744명)에 비해 2,500여명이 줄어든 5,236명이었다. 입장수입또한 119억7.980만원으로 역시 지난해보다 34%나 떨어졌다.

시즌 총관중이 300만명을 밑돌기는 91년 팀당 126경기를 치르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자 89년이후 9년만이었고 평균관중이 6,000명아래로 떨어진 것은 88년 이후 10년만이었다.

시즌 내내 감돌았던 ‘위기감’ 이 느낌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더욱이 올 시즌 ‘신세대스타’ 들의 부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프로축구의 약진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형국이었다. 98년은 프로야구도 제도개선과 함께 경기의 질, 팬서비스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한 출범이후 누렸던 국내최고 인기스포츠자리를 더이상 향유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절감한 한해이기도 했다.

김삼우·체육부기자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