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얘기도 아니다. 얼핏보면 러시아의 타르코프스키나 대만의 후샤오시엔을 닮아았다. 한국전쟁속의 삶들. 한국영화, 특히 해외를 겨냥한 우리의 가장 보편적이고 설득력있는 소재다. 롱테이크, 롱쇼트로 느리게 찍은 화면속에 담긴 인간들의 역사와 삶.

이광모 감독의‘아름다운 시절’은 우리 얘기방식이다. 같은 방식과 소재를 선택해도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구하기’처럼 오락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할리우드와는 분명 다르다. 노년에 접어든 아버지가 마치 “옛날에, 그때 아버지가 열살이었던가”하며 담담하게 느릿느릿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영화는 한국전쟁이 계속되던 1952년 연풍리라는 한 작은 마을을 찾아간다.

많은 사람들의 많은 얘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마을에서도 카메라는 더 들어가 성민(이인)과 창희(김정우)의 가족에게 고정시킨다. 그들은 다름아닌 이제는 낡은 일기장이나 빛바랜 사진첩 속에서나 찾을 수 있는 감독의 아버지와 친구의 어린시절이다. 그들의 눈에 잡힌 작은 가난과 상처, 불안과 연민, 희망과 죽음들의 풍경들.

성민의 아버지 최씨(안성기)는 딸 영숙(명순미)이 미군장교와 사귀는 덕분에 미군부대에서 일하면서 형편이 좋아진다. 반면 남편이 의용군에게 끌려가 아들 창희와 둘이 사는 안성댁(배유정)은 최씨의 주선으로 미국에게 몸을 팔아야 한다. 그 현장을 목격하고는 방앗간에 불을 지르고는 사라져 버리는 창희. 불구로 돌아와 창희의 실종이유를 알고 괴로워하는 창희 아버지. 부대 물건을 빼돌리다 들켜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 가족과 야밤에 마을을 떠나는 최씨. 그런 그를 용서하는 성민. 임신한 영숙은 미군에게 버림받고, 초등학교 교사 경옥(오지혜)은 자기 가족을 몰살시킨 바로 그 원수의 아들을 가르치는 고통에 눈물을 흘린다. 아무리 고통이 가슴을 찢어도 누구 하나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시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들에게서 한걸음 물러서 있다. 그리고는 구석구석 빠뜨리지 않고 응시한다. 카메라는 움직이지 않고, 언제나 거대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관찰한다. 어떤 사건, 인물도 영화를 끌고가는 주제나 주인공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성민에게 미군의 망원경을 훔치게 하지만, 그것조차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엄격한 이 ‘거리두기’는 감정과잉과 자기몰입에 빠지는 것을 막아준다.

결코 역사에 빠져 객관성을 잃어버리지 않는 이 새로운 리얼리즘. 가족의 얘기를 하는 감독으로서는 최선의 선택인지 모른다. 그 고집스런 눈으로 잡은 작은 풍경 하나하나가 관객에게 역사와 인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삶과 희망의 근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아름다운 시절’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후 우리에게는 가장 낯설고 새로운 영화다. 우리가 얼마나 할리우드식 오락영화에 익숙해져 있는지 깨닫게 해주는 영화다. 영화의 힘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는, 우리가 영화로 무엇을, 어떻게 얘기할 때 세계영화계가 주목을 하는지 확인시켜주는 작품이다.

/김민지·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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