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안락사, 지구촌 뜨거운 이슈로

12/09(수) 15:41

당신은 완치 불가능한 말기암으로 매일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는 자식을 위해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는가?.

누구도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 국민은 최근 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이질문에 대해 고민해야했다. CBS가 11월22일 방영한 ‘60분’. 아픔으로 일그러진 루 게릭병 말기환자 토머스 유크에게 잭 케보키언박사가 수면제 주사를 놓는다. 그리고 “깨어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졌다. 케보키언은 환자가 아무 말이 없음을 확인한 후 근육이완제를 놓은 후 염화칼륨을 주사, 심장을 멎게했다. 유크는 입을 벌린채 서서히 죽어갔다.

또 한번 안락사 문제가 지구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나는 비록 환자가 요청하더라도 독약을 결코 주지 않을 것이며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상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장애인 딸이 고통을 무한정 지켜보는 것보다도 저 세상에서라도 아픔없이 지내도록 그를 죽였다. 딸로부터 고통에 찬 비명을 듣는 것보다 감옥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전자는 인간의 생명을 천부의 권리로 규정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한귀절이고 뒤의 것은 지난 5년간 캐나다 국민들을 가슴 아프게 했던 장애인 딸을 안락사 시킨 뒤 10년형을 선고받은 한 아버지의 말이다.

이처럼 안락사 만큼 당위와 현실의 차이가 크게 나는 문제는 없을 것이다. 종교·인권단체, 의학계, 장애인모임 등은 오랜동안 인간에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 논쟁해왔다.

현재 세계적으로 안락사법을 공식 입법화해 시행하고 있는 곳은 미국 오리건주뿐. 3년간 논란끝에 오리건주는 97년 11월 주민투표를 통해 인간에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규정한 ‘존엄사법’을 제정했다. 법제정 4개월뒤인 올 3월 80대 중반의 말기 유방암 여성환자가 “어차피 두달밖에 남지 않은 기간 비참한 삶을 더 이상 연명하고 싶지 않다”며 안락사를 선택해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바르비투르산염을 떨어뜨린 한잔의 브랜디를 마신후 30분만에 조용히 사망한 이 여성이 오리건주의 합법적인 첫 안락사로 기록됐다.

오리건주를 제외한 미국의 다른 주는 안락사를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으나 40개주에서는 환자가족의 동의아래 생명보조장치를 제거하는 수준의 소극적인 안락사 행위는 허용하고 있다.

최근 미국내에서 안락사를 허용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면서 뉴욕주와 워싱턴주,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대법원에 안락사를 금지시키는 법에 대한 위헌제청을 해놓고 있다. 안락사 금지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의 선택 자유권을 침해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말기환자에 대한 생명연장장치 거부를 허용한다면 당연히 말기환자들의 안락사도 허용되야한다는 것이 위헌제청의 이유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노던주는 미국 오리건주보다 먼저 안락사법을 제정했던 곳이다. 노던주는 96년 9월 주민투표를 통해 안락사법을 제정, 6개월동안 시행했다. 그러나 말기임 환자인 제닛 밀즈라는 사람이 안락사를 하면서 다시 찬반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라 국론분열 조짐까지 보였다. 안락사를 반대하는 시위가 연일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서 일어났고 안락사를 택했던 환자의 아들이 “정부가 내 아버지를 죽였다”며 안락사 반대운동 전면에 나서면서 반대여론은 극에 달했다. 급기야 오스트레일리아 의회는 97년 3월 이법을 전격 무효화해 폐기시켜 버렸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유럽에서는 안락사를 원천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뇌사 상태라도 심장박동이 완전히 멈추지 않는한 안락사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 정부가 말기환자들에게 편안하게 삶을 마감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키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시행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베르나르 쿠슈네보건장관은 9월 르몽드와의 회견에서 “환자들은 자신의 삶을 존엄성을 지키면서 마칠 권리가 있다”며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환자들이 임종을 편안하게 맞을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를 조만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법으로 안락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만약 안락사를 주선했을 경우 5년에서 종신형까지 선고하고 있다.

유럽국가중 부분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는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선 안락사 자체는 불법이지만 의학적으로 소생이 불가능 한 환자가 자신의 자유의사로 ‘반복적이고 명시적인 요구’를 하면 의사는 안락사를 시키고 사후 안락사 실시과정을 당국에 보고하면 된다. 이러한 조치에 따라 3,500여명의 말기환자들이 안락사를 선택, 편안한 죽음을 맞고 있다. 요즘 네덜란드 의회에선 안락사를 전면 허용하는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도 안락사를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안락사 행위의 유죄여부에 관한 법원 판례들이 안락사의 기준이 되고 있다. 95년 요코하마법원은 가족의 부탁을 받고 골수종 환자를 안락사시킨 도카이 의과대학 의사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면서 ‘적극적인 안락사’를 허용하기 위한 4가지 조건을 명시했다. 이조건들은 △환자의 참을 수 없는 고통 △죽음의 임박성 △본인의 의사표시 △고통제거수단 유무이다. 안락사의 유죄여부를 이 조건들에 근거해 판단한다. 일본에서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생명연장 치료를 거부해 자연사를 선택하는 소극적인 안락사는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각국에게 안락사를 허용하자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 제정을 반대하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특히 종교계 인권·장애인단체는 어떠한 이유로도 안락사는 허용되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대법원에서 안락사금지법에 대한 위헌 심의가 있는 날이면 장애인단체는 어김없이 안락사 허용 반대 시위를 한다. 이중 ‘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Not Dead Yet)’그룹은 지금도 사회의 냉대와 무관심속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데 안락사까지 합법화 할 경우 장애인들과 영세민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그룹 회원들은 “정상인이 자살을 원한다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장애인이 자살을 생각했다면 좋은 생각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이세상에서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으며 생명을 대체할 귀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안락사 허용에 반대하고 있다.

“나는 울고 또 울고 흐느끼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면서 나는 딸의 동맥으로 조금씩 극약을 흘러 넣었다. 죽음 건너 저편에서는 다시는 이런 고통을 겪지 말라고 기도하면서”라고 절규하며 말기암으로 고통을 겪고 있던 딸을 안락사 시킨 미국의 한 아버지의 말은 이제 남의 일이 아니다.

배국남·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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