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미국 유족들도 "두번 운다"

12/09(수) 15:47

가족의 사망을 맞은 유족들의 슬픔을 볼모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 장의업체들과 이들의 횡포를 막기위한 시민단체들의 대결이 미국에서도 불꽃을 튀기고 있다. 대규모 영업망과 독점력을 무기로 한 미국 장의업체들의 전횡은 바가지요금에 그치지 않고 시신을 인수받기 위해 병원에 뇌물을 주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단체등에 방화와 협박을 일삼는 등 항상 언론의 시비거리를 제공했던 국내장의업체의 횡포를 오히려 능가할 정도다.

장의업체들의 독점과 횡포

올 9월 로스앤젤레스 가톨릭 대교구는 미국의 3대 장례업체인 스튜어트 엔터프라이즈와 의미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400만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의 고향이기도 한 LA대교구가 공동묘지에 업체의 시체안치소 건설을 허락한다는 것이었다. 가톨릭 의례로 장의를 치르려는 LA시민들은 결국 선택의 여지가 좁아진 것이다.

문제는 장의업체들이 독점을 형성, 바가지 요금을 씌운다는 데 있다. 현재 25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장의시장은 서비스 인터내셔널(SCI)과 로웬그룹, 스튜어트 등의 빅3가 전체의 15%를 잠식하고 있다. 관(棺) 공급은 요크와 바테스빌 2개사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다. 독점은 지난 5년간 장례비 상승속도를 생활비의 3배가까이 촉진시켰다. 유족들은 일을 당했을 때 장의업체를 고르지 않는다는 것에 착안, 업체들은 손쉽게 바가지 요금을 씌운다. 실제로 텍사스의 한 스튜어트 장의체인은 도매로 675달러짜리 바테스빌 관을 3,495달러에 팔고있다. 또 대다수 시체안치소에서는 두시간의 입관비용으로 통상 25달러의 10배가까운 200달러를 요구한다. 결국, 화환이나 묘비 등을 포함, 미국인들은 장례비용으로 평균 8,000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장의업체들은 유족들에게 먼저 마분지 관을 선보이는 전략을 쓴다. 십중팔구 유족들은 더 나은 관을 찾는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병원 간호사에게 공공연히 뇌물을 건네고 대가로 환자 사망시 연락을 요구하기도 한다. 또 시체안치소와 공동묘지 등을 확보한 독점업체들은 각종 시설을 공유하면서 영업전략을 강화하고있다. 미국인 가운데 화장을 원하는 비율이 21%로 점점 증가하는 위협감 때문이다.

업체들의 성장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지난해 스튜어트와 SCI의 순이익률은 25%에 이르고 91년 상장된 스튜어트사의 주가는 거의 400%이상 뛰었다. 노령인구의 증가로 현재 1,000명당 8.7명의 사망비율이 2050년에는 13.6명으로 증가한다는 통계는 업체들에게 장미빛 미래다. 이미 SCI는 지난해 32억달러의 장례식을 예약받아 놓을 수 있었다. 장의사의 연봉은 10만달러를 육박하고 국립장의학 아카데미에는 입학생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까지 낳았다.

시민단체의 대응

아리조나주 템페시의 가톨릭 신부 헨리 바실레프스키(68)는 이들 장의업체들을 빈자와 유족을 등쳐먹는 ‘거짓말쟁이 도둑’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바실레프스키는 LA대교구의 계약을 ‘죄악’으로 규정했다. 그는 각 지역의 장의업체들을 조사, 합리적인 가격을 책정하는 독립 장의업체들의 목록을 원하는 유족들에게 전화로 알려주거나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 89년 범종교장례위원회를 설립해 장례비에 관한 정보지를 발행한 그는 한때 장의업체의 항의에 떼밀린 주교에 의해 교구를 맡지도 못하고 신부관에서 겨나기도 했다.

50만 회원을 가진 미 장의추도협회(FAMSA)도 바실레프스키와 비슷한 활동을 한다. 협회는 가정 장례운동도 펼치고 있다. 장의사 없이도 시신을 수습하고 장지를 확보하거나 화장하는 방법을 교육시켜준다.

쟁점과 추세

장의업체들은 시체수습이나 매장같은 일을 보통사람들은 피하기 때문에 자신들은 어려운 일을 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욱이 유족들은 더 나은 시설과 묘지를 택할 권리가 있고 실제로 값싼 장례용품에는 고객들이 눈길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체들은 미국내에서도 가톨릭 신도나 히스패닉계, 동양인들을 주타깃으로 삼고있다. 이들은 아직까지 성대한 장례식을 주저하지 않고 화장보다는 매장풍습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조상들의 유골을 수습해 미국으로 가져와 재매장하려는 중국이민자들이나 성대한 장례식을 즐기는 아프리카계도 주요 고객이다. 95년 흑인교회 연합회인 침례교도 총회에서는 로웬사를 공식 장의업체로 선정하기도 했다. 물론 교회가 일정한 커미션을 받는 대가다. 이후 총회 지도자가 사기 등의 혐의로 체포된 이후 계약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같은 커넥션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독점업체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독립 장의업체는 방화를 당하거나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한다. 또 밤늦게 “차라리 당신의 관이나 준비하시지”라는 협박전화를 받기도 한다.

이에대한 정부의 대응은 미미하다는 것이 반대론자들의 불평이다. 실제로 정부는 84년 장례에 관한 규칙을 제정한 이후 정가를 받지 않는 위반업체에 대해 몇시간씩의 교육만을 시키고 있다. 법정은 그러나 공정한 룰을 유지하고 있다. 95년 독립 장의사 한사람이 로웬의 약탈적 영업전략을 고발해 1억7,000만달러의 합의금을 받아냈다. 법정은 로웬사의 직원으로부터 신규로 인수한 장의체인에서 급격히 가격을 올려받는다는 증언을 듣고 독립장의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바실레프스키의 최근 관심은 독점업체가 판매하는 봉인관의 문제. 업체는 관을 물에 넣어도 괜찮다며 비싼 가격을 받고 있지만 사실은 봉인된 상태에서는 가스폭발의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동(銅)으로 만든 관을 이용한 고객들이 묘지에서 타르냄새의 액체가 흘러나온다는 제보도 확보했다.

바실레프스키는 이제 봉인관의 문제점을 폭로하기 위한 마지막 작업을 진행중이다. 봉인관에 죽은 돼지를 넣고 비디오카메라를 달아 매장한 뒤 실제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 지를 증거물로 잡는다는 계획이다.

시민단체들은 그의 발상이 예상대로 맞아떨어져 ‘장례는 교회가 권능을 가지는 신성한 의식이기 때문에 관을 덮는 휘장처럼 간소하고 죽음에 있어 만인이 평등함을 확인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이 이루어지기를 고대하고 있다.

김정곤·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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