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돈 751억원을 들여 지난해 4월 개항한 청주공항. 연간 250만명이 이용하는 국제공항을 만들겠다고 공사를 벌였으나 현재 국내 노선 2편만 뜨고 내리는 시골공항으로 전락해 있다.

2기 서울지하철 6, 7, 8호선은 9차례 이상 사업계획이 바뀌면서 공사비가 설계 때보다 배에 가까운 4조3,274억원으로 늘어났고 공사기간도 당초 계획보다 평균 2년이상 늦어졌다. 1조2,312억원의 손실발생.

건교부 산하 지방청 등은 95년부터 10억원이상 공사 218건을 발주한 후 설계를 917회나 바꾸었다. 결과는 2조300억에서 2조9,000억원으로 43% 공사비증가.’

건설교통부가 최근 공개한 공공사업의 실상이다. 온통 부실과 부조리 비효율 등으로 얼룩져있다. 자아비판도 했다. 한해 50조원에 이르는 공공사업을 ‘주먹구구식 나눠먹기식 밀어붙이기식’으로 졸속 추진, 국민의 혈세를 축내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자책이다. “공공사업만 제대로 벌였어도 지금의 경제위기를 어느정도 비켜갈 수 있었을 겁니다” 건교부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일종의 고해성사인 셈이다.

비효율 인정, 2002년까지 20% 절감 계획

건교부가 이처럼 스스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낸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 건교부는 공공사업 효율화 방안을 마련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2002년까지 공공사업비를 20%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20%라면 한해 공공사업예산이 50조원에 이른다고 볼때 10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금액이다. 결국 건교부가 20% 공공사업 절감방안을 발표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10조원의 나랏돈을 어떤 식으로 까먹었는지 스스로 밝히지 않을수 없었던 셈이다.

모든 공공사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사업착수 이전에 타당성 조사부터 한다. 타당성 조사를 통해 수요를 예측하고 경제성을 판단, 사업시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타당성 조사부터 엉터리 투성이다.

1조원 이상이 투입된 광양항의 당초 수요예측은 96만TEU. 그러나 실제 실적은 4만TEU에 불과하다. 앞으로 이용자가 늘어날 지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수요를 2,400%나 뻥튀기한 셈이다. 하루 이용객이 214만명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던 서울시 지하철 5호선의 경우 실제 이용객수는 52만5,000여명으로 4분의 1에 그치고 있다.

이쯤되면 수요예측이라는 것이 조사하는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여의봉처럼 줄이거나 늘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업실시를 정당화 하기 위해 각종 지표와 기준을 아전인수격으로 적용한 결과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타당성조사 자체가 무의미해질수 밖에 없다. 94년부터 98년까지 이루어진 33건의 타당성조사중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하다. 사업실시가 무산돼도 별 탈이 없을 것같은 울릉공항이었다. 현재 전주공항등 공공사업에 대한 11건의 타당성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관행대로라면 이들 사업 역시 무사통과가 확실시된다.

절차·합리성 무시한 공사, 부실로 이어져

절차나 합리성을 무시한 공사강행은 공사비만 눈덩이처럼 불리는 결과를 낳았다. 일단 삽부터 뜨고 보자는 것이 우리 공공사업의 해묵은 실태다.

단군이래 최대 부실공사라는 경부고속철도도 예외가 아니다. 충분한 사업검토도 이루어지지않은 것은 물론 노선이나 차량선정등 종합적인 사업계획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논리에 떠밀려 착공테이프부터 끊었다.

이에 따른 결과는 참담하다. 갱도가 묻힌줄도 모르고 터널을 뚫다 뒤늦게 노선을 바꾼 상리터널구간, 대전·대구의 지하·지상화 논쟁, 경주노선 및 중앙역사입지의 혼선등으로 공사는 엿가락처럼 늘어지기만 했다. 이에따라 5조8,000억원에 이르는 사업비는 18조4,000억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났고 사업기간은 6년이나 지연, 계획기간(11년)보다 공사기간(12년)이 더 길어지게 됐다. 일본(동해선)은 약 20년의 계획 끝에 5.5년의 공사로 사업을 끝냈고 프랑스(동남선)도 약 21년 계획에 5.5년의 공사기간이 걸린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다.

2기 지하철도 마찬가지. 2기 지하철 대부분이 기본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기본설계가 이루어지고 기본설계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실시설계에 들어가는등

뒤죽박죽이었다. 일정에 쫓긴 현실성없는 사업계획은 중복 과다투자와 엄청난 사업비증가를 불러왔다.

잦은 설계변경도 문제다. 서울시 지하철 2단계 2차사업의 경우만 설계변경건수가 95년 29회, 96년 47회, 97년 27회등 103회나 된다. 설계도면이 이처럼 걸레조각이 되는동안 1조6,895억원에 이르는 사업비가 증액됐다.

이에 대해 건교부는 설계비요율이 외국의 약 85~90% 수준인데 그나마 실제로는 요율의 60% 수준만 지급해 부실설계와 잦은 설계변경을 낳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공공사업에서 ‘정치거품’ 걷어내겠다”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지하철 사업, 전국을 공사판으로 바꿔버리는 마구잡이식 도로건설…. 건교부는 여기에 대해서도 메스를 들었다. 무분별한 분산투자로 국민들에게 당장 생활의 편익을 가져다주기보다는 공기지연에 따른 생활불편과 총 공사비의 15%에 이르는 공사비증가등 경제적 손실만 입혔다는 설명이다. 부분 완공이 가능한 도로 철도 지하철 하수도매립사업등은 조기 완공의 우선 순위가 높은 구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것이 건교부 방침.

“정치권에서 해달라고 하는데 누가 거부할수 있겠습니까” 건교부는 무엇보다 공공사업이 공공의 이익보다는 정치권의 이익을 위한 정략(政略)사업 차원에서 추진됐다는 점을 솔직하게 시인했다. 공공사업의 우선순위나 경제성보다 정치권의 민원해소에 더 신경을 썼다는 자성이다. 건교부는 정치바람에 흔들리는 무소신행정 풍토부터 제도적으로 바꿔나갈 방침이다. 정치적 요구에 의해 추진되는 지역건의 사업은 종합기본계획단계에서부터 경제성 분석등을 통해 우선순위를 결정하는등 공공사업에서 ‘정치거품’을 걷어내겠다고 한다. 과연 건교부의 각오가 지켜질지 지켜볼 일이다.

김병주·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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