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조선업계의 판도가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 만든 배들이 세계의 5대양 6대주를 누비게 됐다.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던 일본조선의 절대우위가 흔들리면서 세계 조선산업의 재편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일본조선의 추락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것은 ‘준비된 1위’ 인 한국조선의 급부상. 한국조선은 최근 환율상승에 따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한데다 눈에 보이는 생산성 향상으로 일본조선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98년 사상 최대인 800만톤을 건조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98년 11월말현재 726만4,000톤을 건조,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서 건조량이 11.6% 늘어났다. 이는 90년대들어 건조량이 적었던 93년도의 338만톤의 2배가 넘는 규모이다.

국내 조선업계의 건조량이 이처럼 크게 늘어난 것은 신기술 개발 등으로 생산성이 10~20% 가량 높아진데다 노사분규가 없어 생산차질을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잇따른 대형프로젝트 수주, 일본 앞질러

한국의 조선업계는 특히 연말로 들어서면서 대형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하는 등 활기를 띠고 있는데 반해 일본은 가격경쟁력 약화로 영업이 침체에 빠져 있다. 이에 따라 남은 일감인 수주잔량도 한국조선이 1,993만톤으로 일본의 1,823만톤에 비해 170여만톤 더 많이 확보하고 있다.

단일조선소로는 세계 최대규모인 현대중공업이 일본조선의 퇴조를 겨냥해 오는 2005년까지 건조량을 지금보다 50% 정도 늘린 100척 약 450만톤 건조체제를 갖춘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도 일본조선에 대한 경쟁력 우위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선은 지난 93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조선 선두에 올라선 이후 지난해 다시 정상에 올라설 기회를 맞았으나 예기치 못한 외환위기로 아쉽게 2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조선의 위상 변화는 그동안 세계 조선시장에서 정상을 지키고 있던 일본을 밀어낼 강력한 대체세력으로 세계시장에 각인시키고 있다.

일본조선업은 지난 50년대 중반부터 세계 최강의 조선국이던 영국을 누르고 정상에 올라선후 지난40여년간 세계 조선시장을 선두에서 이끌어 왔다. 한때 세계시장의 70%를 점유했으며, 마음만 먹으면 시장점유율을 90% 이상으로 올릴 수 있다고 호언했다. 그렇지만 세계 조선산업의 균형발전을 위해 더 이상 수주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무적함대’ 였던 일본조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이상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물론 일본조선업이 완전히 경쟁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98년도에도(11월말 현재)세계 2위인 우리나라보다 70여톤 더 많은 288척 924만톤을 수주했다. 금액으로도 일본(74억9,000만달러)이 한국(69억5,000만달러) 보다 5억달러 이상 많다. 연말까지 수주량이 1,000만톤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세계 조선시장에서 40% 가까운 점유율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한때 세계시장 점유율 70% 까지

일본조선은 겉으로는 여전히 넘보기 힘든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이후 일본조선업의 거대한 ‘둑’ 아래에 구멍이 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조선 위기설의 근원은 일본경제의 추락으로 그동안 수주안전판 역할을 해 오던 일본선사의 발주능력이 상실됐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행들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을 맞추기 위해 신규대출을 꺼리고 있는데다 건조금융의 금리가 대폭 올라 신규발주가 자취를 감추자 자국선사로부터 전체 수주량의 60% 이상을 수주하던 일본조선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것. 98년 단 1척의 국내선 수주도 없는 한국조선과 대비가 된다.

아직은 2년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큰 문제가 안되지만 이런 상태라면 1~2년안에 일감난으로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일본조선업계는 이에 따라 올들어 해외수주를 늘리면서 내수중심에서 수출중심으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수출비중을 높이고 있지만 해외 수주량은 (98년 10월말 현재) 116척 566만1,000톤으로 한국조선의 145척 851만2,000톤에 비해 300만톤 모자란다.

일본조선업 붕괴의 조짐은 어렵지 않게 또 찾을 수 있다.

90년대 중반부터 하락세, 설계·관리능력도 떨어져

일본조선은 노동집약산업인 조선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그동안 자동화 등으로 현장인력을 축소해 왔으나 이미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선지 오래여서 더 이상 경쟁력 유지가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조선소들은 이에 따라 현장직에 이어 설계 등 핵심 관리직까지 대폭 감축하면서 경쟁력을 유지하려 애를 쓰고 있지만 오히려 선주들의 설계대응능력이 떨어지면서 선사들의 외면을 자초하고 있다.

이같이 설계·관리능력이 떨어지면서 일본 최대조선소인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이 고장력강을 사용해 건조한 초대형 유조선에 균열이 가는 사고를 냈으며 미쓰이(三井) 조선은 노르웨이 스메드릭사에서 수주해 건조한 부유식 원유채취·저장선(FPSO)의 납기를 6개월 이상 지연하다 선주로부터 인도를 거부 당했다. IHI도 영국 P&O네들로이드사의 6,6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의 납기를 맞추지 못하는 등 설계인력 축소에 따른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같은 연이은 사고는 세계 최고의 품질과 납기를 자랑하던 일본조선의 신뢰도를 크게 흔들고 있으며 일본에서 만든 선박은 중고선 시장에서 한국선박보다 5~10% 값을 더 받던 일본프레미엄이 사라지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조선은 이같은 내우(內憂)에다 동남아 경제 침체라는 외환(外患)까지 겹쳐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일본의 대형조선업체들은 대부분 매출에서 조선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인 조선전업도가 15% 내외로 조선보다는 플랜트나 디젤엔진(50~60%)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다. 그러나 동남아 경기 침체로 주력시장이 흔들리고 있어 조선부문에대해 더 이상 지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선부문에서 한국 등 경쟁국을 견제하기 위해 낮은 가격으로 선박을 수주하는 이른 바 ‘정책적 수주’ 를 할 수 없게 됐다. 경쟁조선소들을 견제하는 기능이 없어진 것이다.

업친데 덥친 격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유럽이나 중국 등에서 부품을 구입하는 아웃소싱을 늘려온 것이 환율상승으로 목줄을 죄고 있다.

채수종·서울경제신문 산업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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